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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디지털에 안성맞춤

한글은 디지털에 안성맞춤
미디어다음 / 조혜은 기자
한글은 디지털 문자?

한글은 1443년 만들어져 1446년에 반포됐다. 약 560년 전 만들어진 글자가 ‘디지털 문자’ 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요즘 우리 삶을 잘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너무 익숙해져 한글이 디지털에 얼마나 적합한 글자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글이 디지털에 적합하다는 것은 디지털화 하기 위해 입력하는 방식이 쉽고 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글 입력 방법을 중국어나 일본어 입력방법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글은 디지털에 적합한 과학적인 문자”
중고생들에게 문자메시지는 입력은 이제 생활이다. 그만큼 입력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무제한 문자요금제를 신청한 학생들 [사진=연합뉴스]
한글 컴퓨터 자판을 보면 한글 자음과 모음이 자판 가운데 3줄 안에 모두 배열돼 있다. 왼쪽에는 자음이 오른 쪽에는 모음이 배치된다. 한글은 자음 다음에 모음이 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자음을 치게 되면 오른 손으로 모음을 치게 되어 있다. 양 손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다. 또 별도의 발음 표시가 필요가 없고 한 버튼에 여러 글자가 함께 올라와 있지도 않다. 그만큼 입력이 정확하고 쉽다.

디지털화의 필수는 입력 방식이다. 입력이 쉬우면 당연히 한글로 더 많은 정보를 디지털화 할 수 있다. 한글이 디지털에 적합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표음 문자이고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으로 수 많은 글자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디지털에 적합한 글자라는 것은 중국어와 일본어 입력방식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어를 입력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병음을 영문표기로 쳐서 한자로 바꾸는 방법이다. 병음은 영문으로 된 중국어의 발음기호라고 할 수 있는데 58년 ‘한자병음방안’이 확정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입력방법은 ‘中’ 을 입력하고 싶다면 이에 해당하는 발음기호인 ‘zhong’를 쳐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이 발음에 해당되는 글자 ‘重’, ‘衆’, ‘中’ 등이 뜬다. 이 중 자신이 원하는 글자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한자 병음을 모르는 사람은 쓸 수 없다. 알고 있다고 해도 모든 글자의 병음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영어 철자가 틀리면 원하는 글자를 찾을 수 없다. 또 한자는 하나의 발음에 해당되는 글자가 여러 개다. ‘zhong’ 과 같은 경우에도 이 발음에 해당되는 한자가 17개나 된다. 일일이 한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속도에도 한계가 있다.

“중국어는 병음을 입력해 한자로 바꿔서 입력, 같은 음의 한자 많아 불편”
한자를 직접 입력하는 방법도 있다. 오필자형(五筆子型)이 대표적이다. 이 방식은 모든 한자는 다섯 가지 필획으로 이뤄져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름도 오필자(五筆子)다. 이 오필자를 기준으로 한자를 크게 125개로 나눠 25개의 키보드에 나누어 배열한 것이다. 그래서 한자를 입력할 때는 한자를 쓰듯이 모양에 따라 입력하면 된다. 예를 들어 ‘好’ 자를 입력하고 싶다면 한자를 써나가는 것처럼 ‘女’와 ‘子’가 들어있는 자판인 V와 B를 순서대로 입력하면 된다.

단국대학교 중국어과 안희진 교수는 “오필자형은 익숙해지면 병음 입력 방법보다 훨씬 빠르게 한자를 입력할 수 있고 병음을 모르는 사람도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복잡한 자판을 외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고 설명했다. 125개의 한자를 25개에 배치하다 보니 한 자판에 3개에서 12개까지의 한자가 배정된 것이다. 자판에 모두 표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자판에 표시도 없는 복잡한 배열을 모두 외워야 한다. 자판을 익힌 후에도 일정기간 훈련을 받아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 보다는 대량의 자료를 입력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쓴다.

일본어도 한자를 많이 사용하는 문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입력방법은 중국어와 유사하다. 역시 일본어 발음을 영어로 입력한 뒤 한자어로 바꾸는 방법과 직접 가나를 입력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나를 직접 입력하는 경우에는 자판 위에 가나가 배열되어 있는데 50여 개의 가까운 글자를 33개 정도에 불과한 기본 줄 자판(키보드 중간의 3줄)에 배치할 수 없어 숫자가 위치하는 줄 까지 글자를 배열하고 있다. 당연히 입력시간이 길어지고, 타자 입력 리듬도 깨지기 쉽다.

산업자원부 산하 국가컴퓨터자판 전문위원회장을 맡고 있는 평택대학교 조석환 교수는 “자판 표준화 연구를 진행하며 한글이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입력 방법이 훨씬 쉽고 편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며 “한글은 적은 자음과 모음으로 많은 글자를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인데 이는 마치 0과 1로 많은 정보를 조직해 내는 디지털과 닮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한글이 우리나라가 디지털 선진국이 되는데 일조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본 휴대전화 입력방식은 히라가나를 직접 입력, 타수가 많다는 것이 단점”
 
히라가나를 입력하는 일본 휴대폰의 모습, 타수가 많아지는 단점이 있다. [사진=아마사소프트]
한글 입력방식이 손쉬운 것은 컴퓨터 자판 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문자입력 방식 역시 만찬가지. ‘엄지족’이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기에 능숙한 젊은 층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입력이 쉽고 편하다. 대표적인 예가 ‘천지인’ 방식이다. 이는 모음의 생성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한글의 모음은 ‘·(天)’ , ‘ㅡ(地)’ , ‘ㅣ(人)’ 이 기본이 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휴대전화 입력방식에 도입해 손쉽게 한글을 입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속도도 빠르다.

휴대전화에 중국어를 입력하는 방식은 컴퓨터 자판을 입력하는 방법과 같다. 병음을 입력해 한자로 바꿔주는 것이다. 병음을 입력하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자가 순서대로 뜨는데 이 중 원하는 글자를 고르면 된다. 필획을 직접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복잡해서 잘 쓰지 않는다. 일본어는 히라가나를 직접 입력하는 방식을 쓴다. 히라가나의 기본 글자들이 휴대폰 버튼 위에 배열되는데 모든 히라가나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한 버튼을 여러 번 눌러야 하기 때문에 타수가 늘어가는 단점이 있다.

휴대폰 문자 입력 솔루션 개발 업체 아마사소프트 김병훈 대표는 “한글 입력 방식을 개발할 때는 자음과 모음의 효율적인 배열만 고민하면 되는데 중국어와 일본어 입력방식을 개발할 때는 글자 배열도 더 복잡하고 자주 쓰이는 단어를 분석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며 “한글 개발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국어정보화를 담당하고 있는 이승재 학예연구관은 “기본적으로 표음문자가 표의문자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표기가 쉬워 디지털에 적합하다” 며 “또 영어처럼 알파벳을 길게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한 음절의 글자를 세트 형식으로 입력하는 것이라 입력할 때 리듬을 탈 수도 있고 또 오타를 쉽게 발견 할 수 도 있다” 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