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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 단순언어장애? 황당한 '부시즘'

난독증? 단순언어장애? 황당한 '부시즘'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2004 민서각 제공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말실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문맥과 상황에 전혀 맞지않는 단어 사용, 미 초등학생도 틀리지 않는 기본적인 문법도 무시한 문장 구성 등등. 부시 대통령은 가끔 원래 자신의 뜻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도 서슴치않고 한다.

그의 '엉터리 영어'는 처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말실수로 이해됐다. 그러나 자꾸 반복되자 사람들은 그의 증세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dyslexia) 환자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독증'이란 지능은 정상인데 문자를 읽고 쓰는 데 이상이 있는 증세를 말한다. 운동신경 장애로 인한 언어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설도 있다.

부시 대통령의 증세가 단순언어장애(SLI)와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단순언어장애는 미 매서추세스공대(MIT) 제이콥 와이스버그 교수가 언급한 것으로,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유독 문법상 수의 일치를 지키지 못하는 유전성 장애를 말한다.

부시의 제멋대로 영어는 '부시즘'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조지 W.부시의 엉터리 영어>(민서각)은 부시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 언론 인터뷰 등에서 문장을 뽑아내 그의 민망한 영어실력을 파헤쳤다. 외신이나 국내 언론에 부시 대통령의 말 실수는 자주 소개됐다. 그러나 이 책처럼 총 집합해 한꺼번에 살펴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저자인 김명훈씨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때 미국으로 이민, 코넬대 영문과와 컬럼비아대 예술대학원 창작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뉴욕중앙일보에서 6년, 미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9년간 근무했고, 지난 2002년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현재 대표로 있다. 김씨는 그간 <프레시안>에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이라는 칼럼을 연재해 왔다.

무의식 중에 속 마음 드러내

부시 대통령의 어록은 황당함을 넘어 기발하기까지 하다.

"You disarm, or we will."
"네(사담 후세인)가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장해제할 것이다."
- 2002년 10월 5일,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에 있는 주방위군 본부에서


원래는 사담 후세인에게 "네가 무장해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너의 무장을 해제할 것이다"(You disarm, or we will disarm you")라고 말해야 한다. disarm은 자동사로도 타동사로도 쓰이는데, 문맥상 타동사로 써야한다. 그런데 부시는 자동사로 사용했다. 따라서 후세인이 무장 해제를 하지않으면 미국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겠다고 해석될만한 선언을 하고말았다.

"We need an energy bill that encourages consumption."
"우리는 소비를 조장하는 에너지 법안이 필요합니다."
- 2002년 9월 23일, 뉴저지 주 트렌턴에 있는 주 방위군 항공지원 기지에서


저자는 원래는 "We need an energy bill that encourages conservation."(우리는 (천연자원 등) 에너지의 보존을 장려하는 에너지 법안이 필요합니다)라고 해야 문맥상 맞다고 본다. 그런데 부시는 consumption(소비)과 conservation(보존)이라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의미는 거의 정 반대인 두 단어를 헷갈리고 말았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본다.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들과 연계되어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법안은 에너지 소비를 조장하는 법"이라고 맹비판했다. 따라서 위의 발언은 겉으로는 엉터리지만 실제로는 부시 대통령의 속내가 무의식 중에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시의 말 실수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백인 우월주의, 보수기독교적인 근본주의, 일방적인 대기업에 대한 편애, 힘에 대한 숭배, 형편없은 교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하고있다.

▲ 부시 미 대통령이 16일 플로리다 주 선라이즈의 오피스 데포 센터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2004 연합=AP

가난한 사람들이 꼭 살인자들은 아니다?

"Poor people aren't necessarily killers."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살인자들은 아닙니다."
- 2003년 5월 19일, 워싱턴 DC에서


이 발언은 당시 방미중이던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아로요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빈민층을 상대로 조직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필리핀의 빈곤 해소가 테러 문제 해결과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로요 대통령의 발언 뒤에 부시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문장의 오류가 아니라 사고의 오류다. 저자는 부시의 언어 문제는 병리학적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온 한량 인생, 철학적 사고나 고민은 일체없이 살아온 자의 교양 수준을 반영한다고 본다.

부시 대통령은 기본적인 영어 단어의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지 못하고, 어휘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며, 아프리카를 대륙이 아니라 국가로 발언하고 멕시코만 연안 국가와 페르시아만 국가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 가운데 하나인 대량살상무기(WMD:Weapons of Mass Destrucion)도 헷갈렸다. 부시는 지난 2002년 11월27일 미 의회연설에서는 WMD를 '대량생산무기'(weapons of mass production)로 부르기도했다.

<조지 W.부시의 엉터리 영어>는 영문법이나 영어 독해 책 또는 수험서는 아니다. 단, 부시 대통령의 엉터리 문장 100여개를 원문과 함께 틀린 곳, 어떻게 교정해야하는지 핵심적으로 설명하고있다. 상당수 문장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틀리는 경우가 많다.

부시 대통령에게 평소 심하게 스트레스를 느꼈던 독자들은 말로만 듣던 그의 엉터리 영어를 확인하면서 영어 공부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덤이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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