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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성격과 상관있나?

[과학]B형남자는 변덕스럽다? 과연 진실일까
‘혈액형 열풍’이다. 요즘 모임에서는 ‘혈액형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성격이 변덕스럽다고 잘못 알려진 ‘B형 남자’들은 때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화계에서도 혈액형 열풍은 뜨겁다. 영화 ‘B형 남자친구’가 제작되고 있고, 한 여가수가 부른 ‘B형 남자’라는 노래도 인기를 얻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혈액형을 알면 아이의 재능 100% 살린다’, ‘혈액형 사랑학’, ‘내 혈액형에 꼭 맞는 즐거운 다이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혈액형 관련 서적들이 서가를 점령중이다. 이러한 유행은 ‘각각의 혈액형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혈액형과 성격 혹은 기질 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혈액형이 뭐기에=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BO식 혈액형은 1901년 수혈시 피가 엉기는 것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란트 슈타이너가 만든 것이다. 그는 이 공로로 30년 후 노벨상을 수상했다.

혈액 중 적혈구의 표면에는 수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어떤 구조물은 단백(protein) 성분으로 이루어져 막단백(membrane protein)을 형성하고 있고, 또 어떤 구조물은 당사슬(sugar chain)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조물들 때문에 ABO 혈액형을 비롯하여 Rh, MNSs 등 수많은 혈액형 분류가 이뤄진다. ABO 항원은 당사슬 구조로 이뤄졌다.

혈액형은 부모의 혈액형에 따라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ABO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9번 염색체(9q34)에 위치하고 있다. ABO 유전자와 Hh 유전자, 그리고 Se 유전자에 의해 적혈구를 비롯한 우리 몸의 각 장기와 조직 그리고 타액 등에 ABO 혈액형이 표현된다.

ABO 혈액형이 중요한 이유는 수혈 때문이다. A형인 사람은 anti-B 항체를, B형인 사람은 anti-A 항체를, 그리고 O형인 사람은 anti-A, B 항체를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 때문에 B형에게 A형 피를 수혈하거나 A형에게 B형 피를 수혈해서는 안 된다.



◆혈액형, 성격과 상관있나=이렇듯 수혈을 위해 구분짓기 시작한 혈액형이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과 연관돼 해석된 것은 70년대 일본의 언론인 출신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에 관한 책을 내놓은 뒤부터다. 70년대 일본을 강타한 ‘혈액형 열풍’에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지으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최근 그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현재까지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관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A형이 다른 혈액형을 가진 사람보다 위암에 걸리는 빈도가 높다’거나 ‘O형은 위궤양 발병률이 높다’와 같은 연구결과가 드문드문 발표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혈액형은 성격과 무관하다”고 잘라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권석운 박사는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인자와 인간 성격을 결정하는 유전인자간의 상관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성격은 유전적인 요인 외에도 환경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며, 현재까지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유전자도 없으며, 만약 유전적인 요인에 따라 성격이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유전자는 한두 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질병과의 연관에 대해서도 권 박사는 “환자 시술시에도 혈액형은 수혈할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만여개나 되는 사람의 염기서열 가운데 혈액형을 결정하는 염기서열의 차이가 1000여개 안팎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을 부정하는 근거다. A형과 B형의 경우 염기서열이 고작 7개밖에 틀리지 않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A형과 B형 등으로 단순하게 분류해 성격을 정의하는 방식도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진단의학과 한규섭 교수는 “흔히 A형 성격과 O형 성격을 구분하고 있지만 A형의 경우 AA형과 AO형이 있으며, 한국인의 경우 AO형이 전체 A형의 80%가 넘는데 어떻게 두 혈액형간 성격 차이를 따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남대 임상의학과 양동욱 교수도 “인종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혈액형 비율도 혈액형과 성격이 연관관계가 없음을 방증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단순히 ‘재미삼아’ 혈액형으로 성격을 따져보는 것은 좋지만 이런 비과학적인 내용이 상술로 포장돼 소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진우기자/dawnst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