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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재테크 안해도 잘사는 비결은?

자산방어가 최우선…내집마련 대신 '생활이민' 택했다
일본인들의 초저금리 극복


[조선일보]
'수퍼'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본의 1년짜리 정기예금은 이자가 연 0.03%이다.
3%만 해도 저금리라고 야단인데, 0.03%다. 100만엔(약 1000만원)을 복리로 맡겨놓고 200만엔을 만들려면 약 24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저금리의 일본인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재테크를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눈만 멀뚱멀뚱하고,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테크란 단어가 예전에 있었죠”라고 대답하는 사람조차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재테크에 무심하다. 그럼 도대체 일본인들이 이런 초저금리를 살아가는 방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에는 나름대로의 ‘그럴 만한 상황’이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버틸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안전장치와 특수한 환경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초저금리의 환경에서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재테크 전문가들은 “재테크는 부수적인 것으로, 재테크로 크게 재산을 불리거나 재테크 없이는 안정적인 생활이 힘든 한국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반응들이다.
일본인들이 오랫동안의 초저금리를 버텨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다섯 가지 포인트를 소개한다.



[포인트 1] 일본인들은 재테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저금리 시대가 오기 전에도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재테크를 ‘부수입’ 정도로 생각했지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이다. 굳이 재테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회사에 다닐 경우 노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 일본 정부가 정책 결정에서 일본인들의 평균으로서 참고로 하고 있는 노후의 ‘모델 세대’는 부부 중 남성만이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퇴직한 세대이다. 자기 집은 젊을 때 모기지론(장기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마련했으며, 퇴직 전에 대출을 다 갚은 상태다.
이 세대가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월 23만엔(약 230만원)이다. 보통 일본에서 2인 가족의 순수한 생활비는 평균 약 30만엔 정도 든다. 월 7만엔 정도 부족한데, 보통 샐러리맨들이 회사에서 받는 퇴직금은 3000만엔 정도이다. 게다가 기업연금 역시 나온다. 기업이 연금 적립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과 합해 40만엔 정도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돼도 일본은 ‘간병보험’으로 싼 값에 간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예기치 못하게 큰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적다. 일본의 정치 슬로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안심(安心)하고 살 수 있는 사회’이다.

[포인트 2] 물가가 떨어지면 가만히 돈을 묵혀 놓아도 추가 이자가 붙는 것과 같다.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에서 최근 몇 년간 물가가 점점 떨어지는 ‘디플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디플레 현상이 일어날 경우 경제가 활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디플레를 벗어나서 물가를 올리는 것이 경제의 목표이다. 그러나 물가가 떨어지면 역시 소비자들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물가가 올라가는 한국에서는 돈을 놀려두면 물가가 올라가는 만큼 돈의 실질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목돈을 마련한다고 적금을 들었건만, 막상 찾고 보면 물가가 올라가는 바람에 푼돈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돈을 쓰지만 않는다면 그냥 놓아두기만 해도 오히려 돈이 불어나는 셈이다.
일본은 중국산 제품이 밀려 들어오면서 예전보다 훨씬 싼 값에 쇼핑이 가능해졌다. 물론 비싼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60엔 햄버거니 85엔 햄버거 같은 상품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금리가 낮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포인트 3] 돈 굴리기보다 돈 지키기를 선호했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로 일확천금을 이룬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장래 생활에 큰 불안이 없다면, 자연히 공격적인 돈 굴리기 테크닉보다는 자기 돈을 지키려는 안전 지향의 방어적인 테크닉이 우선한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금융기관은 ‘우체국’이다. 현재 약 233조엔 정도의 돈이 우편저금에 몰려 있다. 우체국의 전국 지점은 2만개에 달하는데, 어떤 은행도 이 정도의 지점을 낼 수는 없다는 편의성도 크지만 국영이므로 무너질 염려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일본 은행의 금리가 1년치 정기예금이 0.03%로 낮은 반면, 한 번 송금을 하면 수수료가 525엔이나 붙는 등 여러 가지로 예금자에게 불리해도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은 전기·가스료 등 자동이체에 편하고, 또 집에 돈을 쌓아놓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포인트 4] 집값이 떨어지면 '평생 월세'라는 선택지도 생긴다.
한국의 경우 근본적으로 샐러리맨의 내집 마련이 대단히 힘들다. 간신히 절약해서 돈을 모아 놓으면 훌쩍 집값이 뛰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그 이전에 셋값 마련에조차 허리가 휘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역시 1980년대의 경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마이홈을 마련하기 위한 테크닉 등이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모기지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집을 사서 몇 년 후 전근을 갈 때 팔면 목돈이 생겼으며 별다른 테크닉은 필요없었다고 일본인들은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디플레이션으로 정반대로 바뀌었다. 집을 사놓으면 계속 집값이 떨어지고, 결국 큰 손해를 보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년이나 30년 동안 이를 악물고 돈을 갚아나가도 다 갚은 뒤에 남는 것은 이미 수명이 다한 집이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 월세 집에 살 경우 대출로 나갈 이자비용을 차근히 모으면 약 20년 동안에 집을 한 채 살 값을 모을 수 있다. 월세는 확실하게 안정된 자산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불리하다. 하지만 20년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비가 좋은 새 아파트로 옮겨다닐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것.
물론 지가가 다시 올라갈 경우는 별문제지만, 물가만 안정이 된다면 집을 장만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는 보여주는 셈이다.

[포인트 5] 소득의 절대수준이 높은 만큼 아예 외국에서 살아도 된다.
물론 일본에서는 금리가 낮은 국내보다는 해외의 채권 등에 투자하거나 외화예금을 들어 두는 재테크가 성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아예 물가가 싼 외국에서 생활하는 ‘해외 롱스테이(Long stay)’라는 대안이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다. 집을 마련해 둔 노부부의 경우, 동남아시아나 하와이에 집을 빌려서 사는 방법이다. 도쿄의 경우 집을 세놓으면 한 달에 최소한 10만엔 이상이 나온다. 여기에 연금 월 23만엔 정도를 얹어서 해외에 집을 빌려 생활한다. 하와이의 경우 월 21만~25만엔 정도면 집을 빌리는 가격까지 포함, 풍족한 생활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에 대해 국부 유출이라고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TV프로그램에서도 어느 곳이 살기에 적당한가를 알려주는 특집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후보지로는 동남아 각국과 스페인이 떠오르고 있다. 나라 전체가 그 정도로 여유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고려한 고차원의 재테크 전략인 셈이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도쿄=최흡 조선일보 특파원 [블로그 바로가기 po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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