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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양념

[명상강론]다이나믹 명상의 메커니즘

[ 나의 다이나믹 명상은 호흡에서 시작한다 ]
호흡이야말로 존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호흡을 관찰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흡을 바꿀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주의깊게 호흡을 관찰해보면 화가 나 있을 때는 호흡에 특정한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는 또 전혀 다른 호흡의 리듬이 그대를 찾아온다. 편안할 때의 호흡이 다르고 긴장되어 있을 때의 호흡이 다르다. 릴랙스되어 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호흡하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호흡이 달라진다. 만일 호흡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성욕은 자동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이것은 호흡이 그대의 심리상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뜻한다. 호흡을 바꾸면 마음의 상태 또한 바꿀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의 상태가 바뀌면 호흡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호흡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명상법의 첫 단계에 10분간의 혼란된 호흡(chaotic breathing)을 도입했다. 내가 말하는 혼란된 호흡이란 깊고 빠르고 격렬한 호흡이다. 규칙적인 리듬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가능한 한 힘차고 강렬하게 깊이 들이마시고 다시 내뿜는다. 한껏 들이마시고 내뿜는다.
이 혼란된 호흡은 그대의 억눌린 내면에 하나의 카오스(chaos)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대는 어떤 일을 하든 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호흡한다. 어린아이는 특정한 방식으로 호흡한다. 만일 그대가 성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 경우에 해당하는 호흡방식이 있다. 그대는 깊이 호흡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깊은 호흡은 섹스 센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 깊은 호흡을 할 수 없다. 두려움은 호흡을 얕게 만든다.
이 혼란된 호흡은 지금까지 그대가 유지해온 과거의 패턴(pattern)들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그대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을 이 혼란된 호흡이 파괴하는 것이다. 혼란된 호흡은 그대 안에 카오스(chaos) 상태를 만들어낸다. 카오스 상태가 창조되지 않으면 그대의 억눌린 감정들을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억눌린 감정들은 신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는 육체와 마음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 둘이 결합된 것이 그대이다. 그대는 육체마음이며 정신신체이다. 그러므로 육체에 행해진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영향을 미치며, 마음에 행해진 것은 무엇이든지 육체에 영향을 미친다. 육체와 마음은 동일한 실체의 양 극단이다.
10분간의 혼란된 호흡은 훌륭하다! 그러나 반드시 혼란된 호흡이어야 한다. 이것은 프라나야마(pranayama), 즉 요가의 조식법(調息法)이 아니다. 다만 호흡을 통해 카오스 상태를 창조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카오스 상태를 만들어내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깊고 빠른 호흡은 더 많은 산소를 제공한다. 그리고 신체 안에 더 많은 산소가 공급될수록 그대는 더 생생한 활력으로 넘치게 되며 더 동물적이 된다. 동물들이 생기발랄하게 살아있는데 반해 인간은 반쯤 죽어있다. 그대는 다시 동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대의 내면에 더 고차운적인 것이 전개될 수 있다.
반쯤 죽어있는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혼란된 호흡은 그대를 생기발랄하고 활력에 넘지는 동물로 만들 것이다. 혈액 속에 더 많은 산소가 공급되고 세포에 더 많은 에너지가 제공된다. 육체의 새포들이 더 활기차게 될 것이다. 이 산소는 신체 내에 전기를 발생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이 신체 내의 전기를 생체 에너지(bio-energy)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신체 내에 전기가 생성되면 그대는 자기자신을 초월하여 내면 깊숙히 들어갈 수 있다. 이 전기가 그대의 내부에서 작용할 것이다.
육체 내에는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원(電源)들이 있다. 그러므로 더 많은 호흡과 산소량으로 그 전원을 자극하면 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생생하게 살아있게 되면 그대는 더 이상 육체가 아니다. 더 생생하게 살아날수록 더많은 에너지가 흐르게되고 그대는 육체를 느끼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대는 자기자신을 물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에너지로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면 그대는 육체 지향적인 성향에서 벗어난다. 섹스가 강한 흡인력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대가 진정으로 행위에 몰입해 있을 때, 전체적으로 행동하고 완벽하게 살아있을 때 그대는 더 이상 육체가 아니다. 그대는 에너지이다. 저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 에너지를 느껴야 한다. 이 에너지와 더불어 생기발랄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다이나믹 명상법의 두번째 단계는 정화(catharsis)이다. 나는 그대에게 의식적으로 미치라고 말한다. 마음 속에 무엇이 떠오르든 간에 그것이 자기자신을 표현하도록 허용하라. 저항하지 말고 그에 협력하라. 감정의 흐름과 하나가 되라.
비명을 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거기에 협조하라. 내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비명, 그대의 존재 전체가 몰입된 비명소리는 대단한 치료효과가 있다. 비명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많은 질병이 치유된다. 그 비명이 전체적이라면 그대의 존재 전체가 거기에 몰입될 것이다.
그러므로 10분 간의 두번째 단계에서는 울고,웃고, 춤추고 비명지르고, 점프하면서 그대 자신이 밖으로 표현되도록 허용하라. 이른바 완전히 취한 상태가 되라. 며칠 안에 그대는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인위적인 노력이 개입되거나 연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나 가식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진정하고 진실한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며 비명을 비르지도 못한다. 모든 것이 가식이고 가면이다. 그러므로 이 기법을 실행에 옮길 때 처음에는 다소 강제적인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연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하지 말고 계속 하라. 곧 그대는 많은 것이 억눌려있는 근원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억눌려있는 것들을 토해내고 나면 그대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것처럼 홀가분함을 느낄 것이다. 새로운 삶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새로운 탄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는 기본적인 과정이다. 이런 작업이 없으면 현상태의 인간에게 명상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여기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예외적인 경우를 들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두번째 단계에서 모든 것을 내던짐으로써 그대는 텅빈 상태가 된다. 이렇게 억압된 모든 것을 비워버리는 것, 이것이 공(空)의 의미이다. 이 공 안에서 무엇인가 행해질 수 있다. 변형이 일어난다. 명상이 일어난다.
그 다음 세번째 단계에서 나는 '후!'라는 소리를 이용한다. 과거부터 많은 소리들이 사용되어왔으며,그 소리들은 저마다 특별한 작용을 일으킨다. 가령, 힌두교인들은 '옴(aum)'이라는 소리를 이용한다. 그대는 이 소리에 친숙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옴'이라는 소리를 권장하지 않는다. '옴'은 가슴의 센터를 자극하는데,이제 인간은 더 이상 가슴의 센터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옴'이라는 소리는 아무도 살지않는 집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수피(Sufi)들은 '후'라는 소리를 사용해왔다. 큰 소리로 '후'하고 내뱉으면 그 소리는 섹스 센터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따라서 이 소리는 내면을 두드리는 망치처럼 이용된다. 그대가 모든 것을 비워내고 텅빈 상태가 되면 이 소리는 그대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가 텅 비어있어야만 가능하다. 억눌린 것들로 가득차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억압된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떤 만트라(mantra)나 소리를 잉요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다. 억압되어 있는 각각의 층(層)이 그 소리의 경로를 바꿔놓을 것이고 원하지도 않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음을 터 비워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만트라를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현상태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만트라는 권장하지 않. 먼저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초반의 두 단계를 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후'라는 만트라를 사용하면 안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세번째 단계에 으르러서야 비로소 '후'라는 만트라를 이용할 수 있다. 가능한 큰 소리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대는 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에너지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대가 텅 비었을 때, 두번째 단계의 정화과정에 의해 텅비게 되었을 때 이 '후'소리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섹스 센터를 자극한다.
섹스 센터를 자극하는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자연적인 방법이다. 이성에게 이끌릴 때는 언제나 섹스 센터가 외부로부터 자극된다. 그 자극은 미묘한 파동이기도 하다. 남성은 여성에게 이끌리고 여성은 남성에게 이끌린다. 무슨 이유일까? 도대체 남성 속에 또는 여성 속에 무엇이 있길래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플러스 전기 또는 마이너스 전기가 미묘한 진동으로 그들을 자극한다. 사실 그 진동은 소리이다. 그대는 새들이 구애하기 위해 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성적이다. 그들은 특정한 소리를 이용해 계속 서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이성의 섹스 센터를 자극한다.
전기의 미묘한 진동이 외부로부터 그대를 자극한다. 그리고 섹스 센터가 외부로부터 자극받으면 그대의 에너지가 바깥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에너지가 상대방을 향해 흐르고 그 결과로 재생산이 이루어진다. 그대를 통해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할 것이다.
'후'라는 만트라 또한 똑같은 에너지의 센터를 자극하지만 이것은 내부로부터의 자극이다. 그리고 섹스센터가 내부로부터 자극받으면 에너지 또한 내부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에너지의 내적인 흐름은 그대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그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형되어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지금은 외부로 흐르고 있지만 섹스 센터에 내적인 자극이 가해지면 그 흐름의 방향이 바뀐다. 에너지가 내부로 흐르기 시작한다. 지금은 에너지가 아래로 흐르고 있지만 그 때에는 위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상승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쿤달리니(kundalini)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대는 실제로 에너지가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상승할수록 그대 또한 그와 더불어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가 이 에너지가 브라흐마란드라(brahmarandhra), 즉 정수리에 위치한 일곱번째 센터에 도달하면 그대는 지고(至高)의 인간이 된다.
다이나믹 명상의 세번째 단계에서 나는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수단으로 '후'라는 만트라를 사용한다. 이 세번째 단계까지는 정화의 과정이다. 이 단계들은 명상이 아니다. 다만 명상을 위한 준비작업일 뿐이다. 이 단계들은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 도약 그 자체는 아니다.
도약은 네번째 단계에 이루어진다. 네번째 단계에서 나는 "정지!"하고 명한다. 내가 "정지!"하고 명하면 완전히 멈추어라. 절대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어떤 동작도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그대는 핵심을 놓칠 것이다. 재채기나 기침 등의 사소한 행위만으로도 모든 것을 망치게 될 소지가 있다.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승하던 에너지의 흐름이 즉각 멈추고 만다. 주의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그렇게 얼어붙은 듯이 멈춘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10분 동안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기침이 나오려고 하거나 목구멍이 간지럽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그까짓 것쯤 참는다고 해서 생명이 위태롭지는 않을 것이다. 육체를 시체처럼 얼어붙은 상태로 유지하라. 그래야 에너지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상승할 수 있다.
에너지가 상승할 때 그대는 더 고요해진다. 이 고요함은 상승하는 에너지의 부산물이다. 반면에 긴장은 하강하는 에너지의 부산물이다. 이제 그대의 몸 전체가 고요해질 것이다. 얼마나 고요한지 마치 육체가 사라진 것 같다. 그대는 육체를 느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대는 육체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대가 고요해지면 존재계 전체가 고요해진다. 존재계는 하나의 거울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계는 그대를 비춘다. 존재계 안의 수 많은 거울이 그대를 비춘다. 그대가 고요하면 존재계 전체가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 속에 다만 주시자로 존재하라.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말고 깨어 있어라.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다만 주시자로 존재하라. 그대자신으로 존재하라. 움직임도 없고, 욕망도 없고, 어떤 것이 되려는 마음도 없이 그냥 그때 그 장소에 존재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요하고 주시하라.
이렇게 중심 안에, 그대자신 안에 머무는 것은 전반부의 세 단계로 인해 가능해진다. 이 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그대자신으로 머물 수 없다. 이런 일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생각하고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반부의 세 단계를 거치지 않는 한 그대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는 그대로 하여금 순간 속에 존재하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그 단계들이 그대를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명상이다. 이 명상 안에서 언어를 초월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일단 그 일이 일어나면 그대는 예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일은 하나의 성장이다. 단순히 경험이 아니라 성장인 것이다.

* 출처 : 명상나라(내용:Os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