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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생리한다]1. 생리결석, 생리휴가를 달라...

“생리결석, 생리휴가를 달라!”
생리 고통, 사회적 문제로 인식돼야
미디어다음 / 심규진 기자
"생리휴가는 있는데 왜 생리결석은 없나요?"
 
[사진=연합뉴스]
“생리를 할 때마다 통증이 심해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리통을 드러내는 것을 쑥스러워 해요. 더군다나 남녀공학이라서 그런지 남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해 혼자 끙끙 앓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

충남 천안 성정중학교 교사 박덕준씨는 “하루에도 한 반에 여학생 한 두 명은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린다”면서 그러나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여건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월경을 하는 전체 여성 가운데 매일 평균 20%가량은 생리를 하고 거의 모든 여중생이 생리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학생 수가 1000여 명인 이 학교에서는 매일 150~200여명의 학생들은 생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생리통을 앓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학교 보건실에 비치된 침상은 단 두 개 뿐. 통증을 줄이기 위한 찜질팩도 없고, 화장실에는 온수도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아이들은 생리통을 앓더라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씨는 “학교 내에서 쉴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책상에 엎드려 있게 하거나 병조퇴를 하게 하곤 한다”고 실태를 전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병조퇴나 병결석을 ‘생리 결석’으로 공결(公結)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가 지난 4월 전국 초중고생 1265명을 대상으로 생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63.2%가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과반수가 넘는 여학생들이 생리통의 증상으로 복통과 요통, 두통, 어지럼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리 때 어떤 배려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36.7%가 “병결이 아닌 공결로 집에서 하루 쉴 수 있게 해달라”고 답했고 26.6%가 귀가 조치를, 21.7%가 “양호실에서 휴식”을 요구하는 등 90%가 넘는 여학생들이 안정적인 휴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어린 학생들이 남 몰래 겪고 있는 생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교조는 “여학생의 생리 문제는 인권 문제”로 규정하고 국가 인권위에 생리 결석 문제에 대해 진정을 냈다. 직장인들에게는 생리 휴가 제도가 있는데 정작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는 생리 문제를 개인적으로 참으라고 하는 것은 ‘연령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교육부는 ‘생리통은 질병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생리 결석을 공결로 할 경우 다른 질병으로 인한 결석과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생리 중이 아닌데도 생리를 핑계로 시험을 보지 않거나, 다른 일에 생리 결석을 이용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생리 결석을 둘러싼 쟁점은 ‘생리를 공결로 처리할 경우 개근상을 줄 것인가’와 ‘생리를 이유로 시험을 보지 않을 경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등이다. 병결일 경우 개근상을 받을 수 없지만 공결은 개근상을 탈 수 있다. 또 병결로 시험에 응시하지 않을 때는 그 전 학기 성적의 80%를 적용해 평가하지만 공결의 경우에는 그 전 시험 점수의 100%를 성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현영림 교사(남서울중학교)는 “중학교에서는 생리결석으로 인한 부작용이 거의 없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이 제도를 오용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말 몸이 아픈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우려하는 만큼 생리 결석이 오용될 가능성은 적다”며 “설사 일부의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여학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법정 전연병으로 인한 결석의 경우에도 출석으로 처리하는 관행을 감안하면 교육부의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진영옥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시행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부작용에 대한 예방책을 강구할 수 있는데도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생리의 질병 여부가 아니라 생리를 사회문제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주장이다. 생리를 하는 여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손쉬운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면 학교 보건실에 전기 패널, 찜질팩 등 생리통을 완화할 수 있는 장비와 생리중인 학생들이 쉴 수 있는 침대부터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 전교조는 또 화장실에 온수가 나오도록 하고,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생리대를 정부가 부담하는 등의 지원 방안도 주장했다.

지난 국감에서는 민주노동당 최영순 의원이 교육부에 생리결석 수용 여부를 따져 물었다. 교육부는 이 사안에 대한 즉답을 미룬 채 “검토해 추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학생들은 교육당국이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명무실 생리휴가?
 
ⓒ미디어다음
"남자들도 생리 해봐야 안다." 지난달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일부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생리휴가를 주지 않고 있다"며 던진 뼈있는 한 마디다. 노동부가 장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청과 울산시청 등 전국 23개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여직원들에게 생리휴가를 주지 않았다.

생리결석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교육현장에서도 생리휴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등교사 박덕준씨는 “공무원들의 생리 휴가는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교사들은 공무원인데도 정해진 수업을 소화하느라 생리휴가를 좀처럼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보건휴가 대상 여교사 가운데 70%가 보건휴가(생리휴가)를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학교 여교사는 불과 0.8%만 생리휴가를 사용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생리휴가가 유명무실한 셈이다. 사기업에서는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노조가 있는 작업장에서는 그나마 직원들이 생리휴가를 쓰고 있지만 노조가 없는 작업장에서는 생리휴가 제도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부가 최근 통신업과 숙박, 음식점업, 각급 학교 등 1192곳을 대상으로 성차별 및 모성보호 실태를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위반건수 905건 가운데 규정된 생리휴가를 주지 않은 경우는 263 곳이나 됐다.

생리휴가는 여성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매월 하루 생리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다. 생리휴가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제도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를 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 대상에는 정직원뿐만 아니라 일용직과 ·임시직 등도 포함된다.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실상 남성들과 경쟁하는 직업의 세계에서 생리휴가는 여성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제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IT 업체에 근무하는 이모(여, 30)씨는 “생리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직장에서 놀림감만 될 것”이라며 “진통제를 먹어가며 야근을 서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생리휴가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오용되는 것에 대한 남성 직원들의 불만도 제기된다. 여직원이 많은 금융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남, 31)씨는 “여직원들이 단체로 생리휴가를 써서 야유회를 가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며 “정작 생리 때는 진통제 먹으면서 일하는 걸 보니 생리 휴가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채 ‘여자들만의 특권’으로 변질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서민자 부장은 “생리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와 생리휴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며 “개인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권리’라는 측면에서 여성만 쓸 수 있는 보건 휴가보다는 남녀 모두 충분한 휴가를 쓸 수 있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용론에 시달리던 생리휴가제도는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유급에서 무급으로 바뀌었다. 종전에는 생리휴가를 쓰지 않으면 수당으로 보상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생리 휴가를 사용하지 못해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자 단체는 “모성보호와 여성의 건강권 측면에서 생리 휴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리휴가 사용 실태는 작업장마다 제각각이다. 한국노총 이인덕 여성국장은 “기업이 생리휴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측면이 많았다”며 “정규직 근로자는 생리휴가를 쓸 수 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는 쓸 수 없도록 한다거나 근로자가 생리휴가를 쓰려고 하면 실제 생리를 하고 있는지를 밝히겠다며 사실상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계 일부에서는 “여성 임금이 남성의 60%를 겨우 넘는 상황에서 생리수당을 없애는 것은 실질적인 임금하락을 부르며 산전후 휴가 90일은 선진국의 99일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여성의 건강권과 모성 보호를 위해서는 생리휴가가 필요하다”며 생리휴가 무급화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실제 생리휴가는 여성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임금보전용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며 “생리 휴가가 모성 보호와 여성의 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본래의 취지를 감안하면 임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 5일제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 생리휴가는 ‘유급’

"이젠 생리휴가를 못 쓰는 건가요?”“그럼 생리수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황현숙 소장은 요즘 생리휴가에 대한 규정을 문의하는 상담 전화를 자주 받는다. 법 개정을 아예 생리휴가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오해하거나, 주5일 근무제 여부와 관계없이 생리휴가가 무급화된 것으로 오해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리휴가가 무급이 된 것이지 제도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는 법에 의거해 생리휴가를 ‘의무적’으로 주어야 합니다. 달라진 것은 생리휴가를 사용하게 되면 그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물론 결근은 아니기 때문에 주휴, 월차, 연차, 상여금 같은 데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즉, 생리휴가를 쓸 수는 있지만, 휴가일의 임금이 지급되지 않을 수 있고, 생리휴가를 쓰지 않아도 생리수당이 지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죠”
황 소장은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주5일 근무, 즉 주 40시간제를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 주5일 근무제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주 5일제를 실시하지 않는 곳에서는 종전처럼 생리 휴가는 유급인 것이다.

황 소장은 “일반 여성의 보호는 완화하고 모성보호는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아직도 여성근로자들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선진국이나 남성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한 현실”이라며 “생리 휴가 마저 없앤다면 여성들의 노동 환경의 질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눈치가 보여 생리휴가를 쓸 수 없다고 호소한다”며 “여성호르몬으로 인한 생리현상을 자연스럽게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생리휴가를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