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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기어나오지 않고‥악취 안납니다”

“기어나오지 않고‥악취 안납니다”
[한겨레] 지렁이 박사 최훈근씨
음식물 쓰레기를 지렁이가 잔뜩 들어 있는 화분에 넣어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우선 떠올리는 것은 화분 밖으로 기어나오는 징그러운 모습과 악취다.

하지만 지렁이를 이용한 폐기물 처리 연구로 국내에서 처음 박사 학위를 받아 ‘지렁이 박사’로 불리는 최훈근(50·사진) 국립환경연구원 폐기물자원과장은 “혐오감은 그렇다고 쳐도 기어 나오고 악취가 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관리 요령만 잘 지키면 기어 나오는 일은 없으며, 지렁이가 배설한 분변토에는 탈취 효과가 있어 음식물 쓰레기를 잘 묻어주기만 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혐오감만 떨어버리고 설겆이통에서 나오는 음식물과 과일 껍질 정도만 처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다면, 실제로 지렁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 만큼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특히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도시농업·옥상녹화의 연계다. 지렁이 화분 4~5개와 스티로폼이나 나무 상자 2~3개 놓을 공간만 있으면,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야채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렁이를 활용한 퇴비화와 지렁이 분변토를 활용한 도시농업 등에 대한 시범단지가 조성돼,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얻고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만 갖춰진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무공해 야채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렁이는 소리없이 대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 온 고마운 존재”라며 “징그럽더라도 키우다 보면 점차 혐오감이 사라지면서 자연을 대하는 자신의 시선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숲에서 컴퓨터 오락에 매달려 사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시끄러운 강아지 보다 지렁이를 키워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