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보기

TV 가 안 나오는데 어찌 된 일이죠?

TV 가 안 나오는데 어찌 된 일이죠?
[오마이뉴스 전진한 기자]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입니다. 올 한해는 큰 사건이 많아서 그런지 유달리 빨리 지나갔습니다. 요즘 송년회를 겸한 수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1년 동안 각자 삶터에서 지내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유쾌한 일입니다.

저도 지난 주 토요일(18일) 중학교 동창들과 송년회를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서부터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을 나누다 보니 술자리는 끝날 줄을 모릅니다. 새벽까지 모임을 지속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모임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다음날 정오가 다 되서야 과음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보니 밖에서는 공사하는 소리가 고요한 주말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 친구와 모임이 있어 외출한 상태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리모컨을 잡은 채 TV를 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TV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직거리는 화면만 번쩍일 뿐 방송을 볼 수 없었습니다. 유선 연결고리가 빠졌나 싶어 살펴보아도 멀쩡한 상태입니다.

안절부절하다 밖에서 나는 공사소리가 의심스러워 나가보았습니다. 전주 2개를 교체하는 대형 공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구경하다 조심스럽게 아저씨에게 여쭤봅니다.

"아저씨 TV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아, 유선 전원이 내려가서 그래요."
"언제 끝나죠? "
"아마 저녁 6시는 되어야 마칠 겁니다."

휴일 날 멍하니 누워 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휴식 방법인데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멍하니 누워 있다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저씨 인터넷도 안 되는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
"아, 죄송해요. 인터넷 케이블이 빠진 것 같네요."
"다시 연결하시면 안 되요?"
"저희는 전기공사 직원이라 안 됩니다. 인터넷 기사를 부르셔야 합니다."

난감했습니다. 인터넷 통신사에 전화를 하니 내일 설비기사를 보내준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날 먹은 술 탓에 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멍하니 누워 있다 보니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외출이라도 하겠지만 몸 상태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점점 참을 수 없는 심심함이 밀려왔습니다.

집안은 어색한 고요 속에 시계 소리만 들립니다. 꾹 참고 책을 읽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괜히 아내한테 전화를 합니다.

"여보, 언제 들어와?"
"어, 놀다 갈테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

아내도 빨리 들어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고요한 상태가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따분함이 온몸으로 밀려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밖으로 나가 공사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습니다.

공사는 빨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 예전 결혼식 때 찍은 비디오를 봅니다. 2년 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아내 모습을 보니 잠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다시 멍한 상태가 옵니다.

이리저리 뒤척거리고 괜히 방안을 서성이다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난생 처음 느끼는 무력감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녁 6시가 지나니 TV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날 고쳐준다는 인터넷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화되자 아내도 외출을 마치고 들어옵니다.

모든 것은 정상으로 들어왔지만 저의 상태를 면밀히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잠깐 정보와 차단되었을 뿐인데 그 허탈감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중독 증세입니다.

고요한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내게 실망 할 수밖에 없던 하루였습니다.

정보의 바다 속에 피곤한 삶을 살아가지만 잠시라도 그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가끔 외부의 모든 정보를 끊고 자신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야겠습니다.

아무 것도 못한 하루였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휴일이었습니다.

/전진한 기자

덧붙이는 글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했습니다


-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