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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隨에 2번이나 항복"

"고구려는 隨에 2번이나 항복"
(::신형준씨 '한국고대사에 대한 반역'서 이색주장::)

고구려와 석굴암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말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대상이다. 동북아시아의 패자, 나아가 동아시아의 패자로까지 표현되는 고구려와 ?의 비례미가 구현돼 있다는 석굴암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표상이다. 그 러나 고구려와 석굴암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모두 사 실일까.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문화재를 담당해오다 현재 사회부 기자로 재직 중인 신형준(38)씨는 최근 출간한 ‘한국고대사에 대한 반역’(조선일보사·사진)에서 고구려와 석굴암에 대한 일 반의 생각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와 석굴암만 문제된 게 아니다. 충성심의 표상인 신라 박 제상도 마찬가지다. 신라 왕자를 볼모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5세 기 초반 신라와 왜와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게 저 자의 지적이다.

‘고구려, 동북아시아의 패자인가, 요동동쪽의 패자인가’ ‘고 구려는 수나라에 항복했다’ ‘박제상이 왜나라에서 죽은 까닭은 ?’ ‘석굴암에는 수학적 비례미가 없다’등 4편의 글로 구성된 책은 제목만 봐도 저자가 주장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와 전호태 울산대 교수 등 고구려 연구자들이 주장해왔고, 학계는 물론 일반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고구려 의 동북아시아 패자론이 합당한 근거가 없음을 저자는 다양한 예 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 로버트 커너 교수가 1930년대초 만든 동북아시아란 개념은 한·중·일 동아시 아 3국과 몽골은 물론, 연해주를 영토로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까 지 포함되는 것으로 고구려가 지배한 랴오허(遼河) 강 동쪽 지역 으로 국한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을지문덕살수대첩만 떠올려 고구려가 수나라 대군을 항상 대파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4차례에 걸친 고구려와 수 나라의 싸움에서 두차례(1·4차 침입)는 고구려가 명백히 수나라 에 항복했으며 수나라 양제의 3차 침입 때는 국내 반란 때문에 철군한 것임을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중국 본토를 공격할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고구려와 수나라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석굴암의 수학적 비례미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건 축가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의 주장 이후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와 유홍준(현 문화재청장) 명지대 교수 등 국내의 쟁쟁한 미 술사학자들이 석굴암이 ?의 비례미에 따라 건축됐다고 주장해왔 다.

그러나 석굴암 실측치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석굴암에서 ?의 비 례미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통일신라시대 √라는 무리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식민지 시절을 통해 근대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거나, 아니면 보상받고 싶은 20세기 후반기 한국 지식인들의 콤플렉스 때문에 고대사 해석에서 이 같은 과장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최영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