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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만못한 한국대사관"

<푸껫서 온 신혼부부 "대사관 여행객 보호 소홀">
(영종도=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대규모 지진해일이 엄습한 태국 푸껫 지역에서 재외공관 직원들이 여행객 안전 확인과 보호 조치에 소홀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9일 오전 8시25분께 방콕발 오리엔트타이항공 OX300편을 통해 입국한 신혼부부배영명(33).김민정(29.여)씨는 "해일이 리조트를 덮쳐서 모든 짐을 잃었다"며 "태국측이 현지에 마련한 임시 영사관에 한국만 직원들이 없어서 고생했다"고 주장했다.

태국 남부 푸껫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차량 기준)에 위치한 휴양지 카오락의 `묵다라 리조트'에 묵었다는 배씨는 "26일 오전 10시 아침을 먹은 뒤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해일이 덮쳤다"고 말했다.

그는 "1층에 있다가 20m 앞에서 순식간에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3층까지 온 힘을 다해 올라갔다"며 "물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무서워서 숙소 뒷산으로 피신했다가 4시간쯤 뒤에 돌아와 보니 제대로 남아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가 엄청났던 탓에 푸껫 현지에 각국이 영사업무를 볼 수 있도록 태국측이 임시 영사관을 개설해 각국 천막이 들어섰는데 우리나라만 직원이 자리에 없었다"며 "직원들은 푸껫 중심부 P여행사 인근 건물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했다.

배씨 부부는 26일 저녁 현지 가이드 제공업체 사장의 집에서 밤을 보낸 뒤 이튿날에는 이 회사가 마련해 준 숙박업소에 머물렀다.

부인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푸껫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27일 방콕대사관에 가려고 가이드를 통해 대사관에 연락하니 `푸껫에 피해가 많아서 직접 가겠다'고 통보받았다"며 "그러나 이후 아무 연락이 없어서 하루종일 숙소에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T여행사 패키지를 통해 함께 온 신혼부부 1쌍과 함께 28일 공관 직원들이 있는 P여행사 인근으로 가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알려줬다.

배씨는 "직원들이 이름과 주민번호만 확인한 뒤 임시 영사관에 가서 분실신고서에 도장을 받아오라고 시켰다"며 "영사관에 분실신고를 하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 있었으면 한번에 다 해결됐을 일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왜 다른 곳에 와서 업무를 보느냐고 항의하니 `거기는 피해자 가족들이 몰려와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며 "다른 나라는 숙소로 찾아와 생사를 확인하고 데려가는 판에 이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배씨 부부는 현지 가이드가 사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입국했다.

악몽같은 신혼여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들은 흙탕물에 젖은 잠옷 2벌과 장모님 선물로 마련한 빈 지갑만 든 손가방만 챙긴 채 "이번 일은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다"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