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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가치 얼마? 통계 '제각각'

가사노동 가치? 통계 '제각각'

전문가들 "표준화된 가치산정 방식 도입돼야"

미디어다음 / 이준수 기자

국내외 학계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경제가치로 평가하면서 국내에서도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매기고 있지만 평가 주체 및 추산 방법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손해배상, 재산분할, 사보험, 국민연금 등 국민생활의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적용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9년부터 5년 단위로 이뤄지는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를 통해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추산이 이뤄지거나 관련 기관들의 개별적인 연구결과물이 해마다 발표되고 있다.
조사별로 상이한 전업주부 가사노동 가치


[자료=각 연구결과 종합]
통계청, 여성가족부, 한국여성개발원은 최근 ‘생활시간 조사 종합분석 결과 학술세미나’에서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1인당 월 111만원, 연 1337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연구(총괄 김종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는 통계청의 ‘2004년 생활시간조사’ 에 바탕을 두었다. 가사노동의 가치 측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여성 스스로 가사를 해 절약되는 비용을 측정하는 ‘시장대체비용법’ △가사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소득을 통해 가사노동의 가치를 계산하는 ‘기회비용법’ 등의 추계방법으로 계산한 뒤 이를 가중평균했다. 방법별로 전업주부 1인당 연간 993만~1409만원, 월 83만~117만원 등의 분포가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결과는 4년전 발표와는 다르다. 지난 199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 발표된 전업주부 노동가치는 월 113만원(연 1360만원)이었다.

앞선 1997년 재경원은 무급가사노동에 대한 ‘여성의 무급가사 노동가치에 대한 평가방향’을 통해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를 139만4100원으로 추계했다. 이는 당시 취업여성의 시간당 평균임금 4647원을 적용, 하루평균 10시간씩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계산한 수치다. 하루 5~6시간 일하는 ‘취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78만696원이었다.

단순히 물가상승률만 감안해도 노동가치는 높아져야 하지만 되레 떨어졌다. 추계방법이 달라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가사의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데도 전업주부들의 경제적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종전에는 요리, 세탁, 청소 등 단순 노동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재테크를 포함한 가정경제 경영, 자녀교육 및 가정미래 설계 등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 중 한명이 전업주부 역할을 할 때 가져올 수 있는 가정의 안정과 같은 무형적 가치도 있다.

이 같은 점들을 감안했을 때 노동시간이나 측정 방법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제각각으로 통계가 잡히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계 여성계의 중론이다.

다른 조사에서도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당시 송호대학 교수)이 199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측정한 가사노동의 가치는 월 240만원(연 2880만원)이었다. 전업주부가 다른 일을 했을 때 벌 수 있는 잠재적 소득을 계산하는 ‘기회비용법’에 따른 결과다.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열린 ‘가사노동가치 평가 정책간담회’에서 김경희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은 “조사자와 평가 방법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최저 85만7000원에서 최고 132만3000원 정도로 추산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김 연구관은 △전업주부가 직업노동에 참여해 벌어들이는 잠재 수입으로 산출하면 월평균 111만3000원~132만3000원 △요리와 세탁 전문가가 대체할 경우 96만8000~119만8000원 △가사노동 전체를 가정부가 대체했을 경우 85만7000~109만2000원 △불의의 사고나 재난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액 산정 시 전업주부 배상금 73만원 등으로 분석했다.

지난 2001년 여성부와 한국여성개발원이 유엔개발계획(UNDP)과 공동으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평가한 결과는 월 평균 85만6000원~102만6000원이다.

별도의 계산식을 동원한 방법은 아니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에게 “주부들의 가사노동 가치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얼마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들은 “기존 환산법으로는 너무 낮다”며 140만원(한나라당)~150만원(민주당, 민노당)이라는 답변이 나오기도 했다.

표준화된 작업의 필요성 제기


현재의 가사노동 가치를 측정하는 기법은 다양하다. 가사노동 종류별로 유사한 직종의 임금률로 계산하는 ‘개별기능대체법’이나 가사노동을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그에 상응하는 직업인을 고용하는 ‘종합적대체법’이 있다. 계산이 용이하나 대체직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주부가 가사를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했을 때 벌 수 있는 잠재적 소득을 계산하는 ‘기회비용법’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계산하는 여러 방식 중 최고 수준을 뽑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법들에서 또 세부적으로 나뉘기도 한다.

또 어떤 임금률을 적용할 것인지, 노동일수를 어떻게 대입할지도 변수다. 재산분할 분쟁 등에 있어 가장 흔하게 준용되는 기준은 도시 보통인부 임금이다. 법원은 대개 여기에 통상적인 근무일인 22일을 곱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지난해 6월 서울 남부지법에서는 주부의 가사노동은 단순 육체노동이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작업하는 특별노동이라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 같은 판결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보험사의 경우 가사종사자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을 때 공사직종(5만5252원, 2006년 상반기 기준)과 제조직종(3만3504원)의 보통임금을 산술평균한 뒤 25일을 곱한 ‘평균임금’(한달 110만9450원)을 적용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주부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고 가사노동의 가치 측정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일수의 산정도 마찬가지다. 월 240만원이 나온 윤 책임연구원의 연구결과는 30.4일을 곱했다. 주말에도 가사노동이 계속된다고 전제한 것이다. 최고 월 132만원까지 추산한 김경희 연구관도 “월 근로일수는 22일, 25일을 기준으로 산정되고 있지만, 실제로 가사노동은 365일 행해지므로 월 30일 기준으로 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데이터상의 차이와 함께 학자나 연구자의 가치평가의 통일된 방법이 없고 혼용돼 있기 때문에 연구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며 표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윤 책임연구원은 “재산분할 청구나 보험, 연금 등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노동가치를 평가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종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전업주부의 노동가치 평가를 위한) 여러 적용방법이 있는데 이제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가사노동이 아이, 숙련도, 노동강도 등에 따라 동일하게 수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 등에서 통상 건설회사 노임을 적용하는 문제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 활성화도 중요


지난 2002년 대구에서 '명절 가사노동 분담'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명절 문화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통계청 관계자는 “현재 나온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연구결과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며 학술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며 “연구자들도 표준화된 연구방법의 권고안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놨고 상반기 포럼개최를 통해 심층적으로 정책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학계에서도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소수인데 손보업계, 법조계에서도 함께 논의가 이뤄지고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런 가운데 사회적 여건이 성숙돼야 가사노동의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도 “아시아권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사노동의 가치평가에 있어 선두적인 위치”라며 “정부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활용되는 자료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회적으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차제에 이를 정책화하기 위한 창도자그룹 있거나 누군가 확실한 정책적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가사노동의 편중을 우선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민우회 이현경씨는 “가사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하는 것보다 한쪽 성에만 일방적으로 부담되고 있는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가사노동의 임금산정에 대한 표준화된 방법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도 들고 가사노동의 범주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볼 것이고 혼자 사는 남자의 가사노동 같은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미일의 전업주부는 한국 주부보다 고액 연봉자?


산더미같은 가사일에 치이는 전업주부를 묘사한 삽화 [사진=연합뉴스]
미국이나 일본의 전업주부 가사노동 가치 추산결과는 국내와 큰 차이가 난다. 지난해 5월 미 구직 전문사이트 샐러리닷컴(salary.com)이 5400만명의 전업주부를 모집단으로 추출한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업주부 연봉은 13만1470달러에 이르렀다. 현재의 원화로 환산해도 1억3000만원 가량으로 월 평균 1000만원 이상이다.

표본집단은 최소 2명의 취학연령 자녀를 두고 주당 100시간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 노동가치 산정은 어린이집 교사, 승합차 운전사, 가정부, 요리사, 최고경영자(CEO), 간호사, 집 수리공 등의 평균 연봉을 고려해 전업주부가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노동을 대신한다는 가정 하에 이뤄졌다. 전문가 대체법을 활용했다.

이 결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4만3461달러가 산출됐으며 나머지 60시간은 초과근무를 적용, 8만8009달러의 수당이 합해졌다. 미국에서 초과 근무수당은 정상업무의 1.5배를 받는다.

샐러리닷컴은 “전업주부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 주기 위해 이번 조사를 실시했다”며 “경우에 따라 주부들의 가사노동은 값을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진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97년 경제기획청 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할 경우, 연간 276만엔에 달했다. 당시 취업여성의 평균연봉인 235만엔을 웃도는 수치였다.

그러나 이들 결과는 국가간 물가나 소득 수준 차이뿐 아니라 평가방법 등이 달라 단순비교가 불가능하고 노동의 질을 담보하지 못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