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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단식100일째..왜 극한까지 왔나

“환경 재평가” 귀닫자 목숨건 ‘고투’
[한겨레]

[지율스님 단식100일째]
왜 극한까지 왔나



서울 서초동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관 염화실에 머물고 있는 지율 스님의 생명이 얼마나 더 버틸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 약자들이 항거할 수단이 없던 권위주위 정권 때와는 달리 생명을 담보로 한 단식투쟁 자체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천성산 사태를 둘러싼 정부와 환경운동진영, 지율 스님 쪽의 미숙한 대처, 그리고 서로간의 오해가 증폭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환경부 “법적불가” 내세워 요구 묵살
노대통령 ‘공사 백지화’ 공약 미뤄
스님 뺀 노선재검토위 동의 명분만
정부-환경단체 따돌리기 사태 키워


◇ 발주처도 인정한 환경영향평가 부실=환경부(당시 환경처)가 1994년 11월 경부고속철도 공사 시행자인 고속철도건설공단에 협의해 준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는 무제치늪 등 천성산을 관통할 13㎞의 터널 위에 있는 습지들에 대한 조사와 주요 보호동식물에 대한 조사가 빠지는 등 여러 부분에서 부실하게 이뤄졌다. 이는 2002년 공단이 대한지질공학회에 용역을 맡겨 벌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원효터널) 통과 자연변화 정밀조사’를 통해 스스로 인정했고, 이른바 ‘도롱뇽 소송’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또,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이뤄진 뒤 7년이 지나도록 천성산 구간 공사가 착공되지 않아 환경영향평가법 규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재협의해야 한다는 지율 스님 쪽 요구에 대한 환경부의 거부 이유도 법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상식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환경부는 천성산 구간의 환경영향평가가 전체 부산·경남 구간 환경영향평가의 일부라는 점과, 부산역사 착공 신고가 7년이 되기 전인 2000년 12월에 이뤄졌다는 점을 내세웠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영향 재평가나 재협의는 법을 고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청와대·환경운동 쪽의 지율 비켜가기=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 과정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 백지화 및 전면 재검토’를 공약하고 당선됐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미루다, 지율 스님이 단식에 들어가는 등 반발하자 천성산 고속철 문제를 가장 앞장서 제기해 온 지율 스님 쪽의 천성산대책위원회를 빼놓고 노선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노선재검토위원회는 불과 한달반의 논의 끝에 기존 노선을 재확인했다.

이 재검토위원회에 부산환경연합이 참여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지율 스님과 환경연합을 중심으로 한 환경단체 사이에는 깊은 갈등의 골이 파이게 됐다. 이는 결국 천성산 고속철 반대운동을 ‘지율 스님의 싸움’으로 만들었다.

환경비상시국회의가 지난달 전국의 주요 환경파괴 현장을 순례하는 일정을 짜면서 지율 스님이 4차 단식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천성산 고속철 공사 현장을 제외한 것은 그 갈등의 단적인 예다. 비상시국회의 순례단이 비판 여론을 뒤늦게 수용해 순례 마지막날 천성산 현장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환경단체들은 지율 스님에게 다시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 뒤얽힌 오해와 환경부의 서툰 대응=많은 사람들은 지율 스님을 타협이라고는 모르고, 현실감이 없는 ‘고집불통의 비구니’로 보고 있지만, 그의 요구 수준은 단식을 거듭하면서 계속 낮아져 왔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부분만 봐도 영향평가를 4계절 동안 하라고 한 데서, 영향조사를 6개월간 하자는 것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다시 기간을 3개월로 줄였다.

지율 스님도 오해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27일 4차 단식에 들어가면서 “환경부가 환경단체와 함께 천성산의 환경을 재조사하기로 했던 합의를 깨고 일방적 조사 결과를 법원에 통보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가 일방적 조사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를 깼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8월26일 환경부와 ‘도롱뇽소송 시민행동 대표단’이 합의한 내용은 “사업자가 제시한 천성산 정밀조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 검토를 하며, (환경부는) 사업자 쪽과 협의해 9월 중에 전문가 검토작업이 착수되도록 노력한다”이다.

환경부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와 별개로, 독자조사에 들어가면서 지율 스님 쪽에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빠뜨린 실책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환경부가 지난달 천성산 구간의 환경영향평가 이행 실태 점검팀을 구성하겠다면서 지율 스님 쪽 참여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지율 스님이 불신하는 부산환경연합 등을 참여시키려고 한 것도 감정의 골을 깊게 한 부분이다. 지율 스님은 그 뒤 “환경부가 천성산의 수의를 짜려 한다”며 더욱 마음을 닫았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굴삭기 소리에 눈물 주르르…살려달란 외침 들렸다
지율 스님은 지난해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최고의 시민운동가’로 뽑혔다. 그는 이렇게 운동가이자 승려이지만 실은 그의 ‘지독한’ 운동방식(단식)에 운동가들과 승려들이 가장 ‘불편’해하고 있다.

왜일까. 그는 통상적인 ‘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이 현재 머물고 있는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의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통상 ‘운동’이란 현실적인 타협을 해가며 자신의 동조자를 규합하고 세를 불려나가는 것이라고 할 때, 주위의 동조 여부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지율 스님을 통상적인 ‘운동가’로서 이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92년 출가…98년부터 산지기 실제 지율 스님은 초미의 관심인물이 되어왔지만, 얼마 전까지도 새만금을 새의 이름으로 알 정도로 세상 일에 캄캄했다. 누군가 노동운동가 전태일과 자신을 비교할 때도 전태일이 누구인지, 운동가들이 관심갖는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율 스님은 경남 산청군 색동면 지리산 기슭에서 태어난 ‘타고난 산사람’이다. 1992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청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94년부터 줄곧 산사의 선방에서 참선한 선승이었다.

그가 천성산 내원사로 들어간 것은 98년. 참선하며 2000년부터 맡은 소임이 산을 지키는 ‘산감’이었다. 고찰에서 산감은 산신령을 대신해 산을 지키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천본阮仄璲?된 것이다. 그는 2001년 4월 산 정상부위까지 굴삭기가 올라오는 현장을 보았다. 그는 그 때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살려달라고 하는 애원의 소리를 들었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고 고백했다.

그 뒤 그가 천성산을 오르내린 것만도 무려 400여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대승불교 보살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화현이다. 그는 이미 도룡뇽, 산개구리, 나비, 고란초, 일엽초 등 천성산의 수많은 생명들과 한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몸짓에 ‘운동’과 ‘타협’이 어울릴 수 없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성산 개발의 방조자가 된 양심 때문에 지율 스님의 단식 중단을 호소했지만, 여전히 지율 스님은 “말라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의 산과 샘, 개울”이라며, 자신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반인은 한 사람의 목숨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억의 생명인 셈이다.

조연현 기자cho@hani.co.kr



■ 천성산터널 반대 일지
○ 1990년 6월=고속철도 노선 발표(서울~천안~대전~대구~경주~부산)
○ 1991~1994=환경영향평가 실시
○ 2002년 6월1일=경부고속철 2단계 대구~부산 착공
○ 〃7월=천성산 대책위 구성
○ 〃12월4일=노무현 후보 천성산 터널 백지화 공약
○ 2003년 2월5일=지율 스님 부산시청 앞 1차 단식(38일간)
○ 〃5월12일=노선재검토위원회 구성
○ 〃10월5일=지율 부산시청 앞 2차 단식(45일간)
○ 〃10월20일=천성산대책위, 도롱뇽 원고로 터널공사 금지 가처분신청
○ 〃12월2일=천성산 구간 공사착공
○ 2004년 4월9일=울산지법,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각하 및 기각
○ 〃6월30일=지율 청와대 앞 3차 단식(58일간)
○ 〃10월19일=환경부, 천성산 터널공사 습지 영향 없다고 발표
○ 〃10월27일=지율 4차 단식(100일째 계속)
○ 〃11월29일=부산고법, 가처분신청 항고심 각하 및 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