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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힘]세계를 들어올린 젓가락

[한국의 힘] 2부-1 세계를 들어올린 젓가락


 

40대 이상이면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빠지지 않던 콩자반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너무 자주 싸주는 통에 신물을 내면서도 너나없이 젓가락만으로 검은 콩을 날름날름 잘도 집어 먹었다. 콩자반을 그렇게 능숙하게 집어내던 젓가락질이 바야흐로 한국의 경쟁력으로 활짝 피고 있다. 최근 국내 과학자들의 논문이 네이처 등 세계적 학술지에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외국 과학자들은 연구 성과는 물론 연구 진행 속도에 놀란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실험을 거쳐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속에는 우리만의 손재주에 대한 부러움이 자리하고 있다. 젓가락질로 상징되는 손재주가 우리의 과학까지 세계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으로 난치병 치료의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는 황우석 박사팀도 세계 과학계에서 ‘신의 손’으로 통한다. 얼마나 빨리 난자의 핵을 빼내고 그 자리에 다른 체세포의 핵을 집어넣느냐가 실험의 성패를 좌우한다.

크기가 10분의 1㎜에 불과한 데다 풀이 묻은 것처럼 끈적끈적한 사람의 난자는 잘못 건드리면 터지기 일쑤다. 여기에서 핵을 꺼내고 다시 다른 핵을 집어넣는 것은 신기(神技)다. 난자 10개에서 핵을 꺼내는 데 미국 연구진이 1시간 걸리는 동안 황교수팀은 5~10분이면 끝낸다. 같은 조건이라면 속도에서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기계보다 빠르고 정교-

침팬지 유전체 국제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국생명과학연구원의 박홍석 박사는 “게놈을 연구하려면 아주 적은 양의 시약을 채취해 투여하는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손으로, 외국에서는 자동화기기로 한다”면서 “기계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손재주 때문에 비싼 시약을 아끼는 것은 물론 연구 속도도 더 빠르다”고 밝혔다.

이 연구팀은 외국에서라면 22억원이 들어야 할 연구를 10억원으로 끝냈다.

한국인의 손재주는 과거에도 화려했다.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이 대표적이다.

현대 정밀공학으로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거울의 뒷면이 미세한 선과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하다. 지름 21㎝에 1만3천개의 줄이 가지런히 그어져 있다. 다보탑,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금속활자도 우리 선조의 정교한 솜씨를 대변하고 있다.

-패스트푸드가 ‘무딘 손’ 만들어-

1970년대까지 해외이민 수단으로 각광을 받은 병아리 감별사도 우리 손끝의 정밀함을 말해준다. 현재 세계에서 활약하는 병아리 감별사의 60%는 한국인이다. 달걀에서 부화한 지 하루밖에 안된 병아리의 암수를 손의 감각과 눈을 이용해 가려내는 감별은 아직까지 일본과 한국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기능올림픽이 우리나라의 전유물처럼 된 지는 오래다. 1978년 24회 이래 1993년(32회) 단 한번만 빼고 우승을 독차지했다.

여성들의 매운 솜씨는 한국이 수출로 일어서는 데 선두주자였던 가발과 봉제산업의 경쟁력에 크게 이바지했다. 비록 OEM(주문자부착상표)이라지만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든 것도 꼼꼼한 손재주 덕이었다.

이제는 완전자동화됐지만 반도체가 단순조립을 거쳐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정밀 작업에 적합한 손재주가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의 성공 요인으로 ‘손재주의 젓가락 문화’ ‘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청결 문화’ ‘팀워크의 대가족 문화’를 들었다.

세계의 천연가스 운반선 시장을 장악한 조선산업의 경쟁력에도 머리카락만큼의 미세한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용접 손기술이 들어 있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에서 바이오테크(BT)와 나노테크가 주역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탁월한 손재주가 무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음식문화의 빠른 변화와 손을 이용한 일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위기다. 손재주를 지키고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문화가 이어져야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윤순기자 ky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