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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고조선 기원 차라리 푸젠서 찾으라"

북한의 '고조선 中동북지방 기원론' 일축
양국 공동 고고발굴 참여 中측 인사 증언
"일부 음식.생활 습관 푸젠과 동일" 주장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1963년 6월 일단의 북한 고고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는 고조선의 발원지를 중국 동북지방에서 찾겠다는 북한의 관점에는 분명하게 반대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1963년 8월부터 1965년 8월까지 3년 동안에 걸쳐 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 및 발해 유적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북.중 공동 고고 발굴작업은 당시 최용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저우언라이에게 간청해 실현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내용은 공동 고고 발굴 프로젝트에 깊이 참여했던 한 중국 고고학자가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 의해 2002년 2월 정식으로 시동된 동북공정 관련 회의에서 발표한 것으로 보이는 '중.조 공동 고고 발굴단의 몇 가지 상황에 관하여'라는 '회의 내부자료'에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가 25일 단독 입수한 이 문건에 따르면, 북한 정부 및 당.정 최고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 동북지방에서의 공동 고고 조사 및 발굴을 중국 정부에 요청했으며, 중국 정부는 두 당 및 두 나라 관계의 강화와 긴밀화를 위해 관련 부분 지도자들의 승인을 받아 이에 동의했다.

특히 최용건은 1962년 말과 1963년 봄 사이 저우언라이에게 "국제적으로 제국주의, 수정주의 및 반동파들이 우리 나라를 봉쇄, 고립시키고 우리를 작은 민족이네, 작은 나라네, 역사와 문화가 없는 나라네 하고 멸시해 국제적인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며 "중국 동북지방에서 고고 조사 및 발굴을 진행해 자기의 역사를 분명히 하고 고조선의 발원지를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는 북한의 이런 요청에는 동의하면서도 고조선의 발원지를 중국 동북지방에서 찾겠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완곡한 어조로 반대의 뜻을 표시하고 공동 발굴에 동의한 것과 중국 동북지방이 고조선의 발원지라는데 동의하는 것은 별개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고조선이 꼭 중국 동북지방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다. 푸젠(福建)성에서 기원했을 가능성도 있다...조선의 동지들이 벼를 심고, 쌀을 먹고, 나막신을 신는 것을 보면 음식 및 생활 습관이 푸젠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선말에서 일, 이, 삼...구, 십의 발음이 복건의 발음과 같은 걸 보면 푸젠의 고대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 조선반도로 갔을 수도 있다"면서 "내가 보기에 고조선은 우리 나라 동북지방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푸젠에서 기원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우언라이는 1963년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진행된 1차 발굴이 끝난 뒤 11월 조선사회과학원 원장 김석형을 비롯해 박시형, 주영원, 리지린, 채희국, 김용섬, 김기웅 등 10여명의 북한측 발굴단원 모두와 중국측 발굴단장 및 부단장과 면담했다.

중국은 동북지방 공동 고고 발굴과 함께 북한측과 국경협상을 진행, 조속히 국경 획정을 함으로써 이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문건은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당.정의 관련 부처 및 중국과학원(나중 중국사회과학원은 분리돼 별도 관이 됨) 등 연구기관으로 영도소조를 구성해 고고 발굴단 단원들에게 철저한 사상적 준비를 시켰다는 점, 양측이 발굴 자료를 놓고 현격한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 등도 밝혔다.

북한측은 고조선이 요하(遼河) 유역 동쪽 및 송화강(松花江) 남쪽 등지에서 기원했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목적에서 중국 고고학자들의 동의를 받으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문건은 강조했다.

3개 팀으로 구성됐던 북.중 고고 발굴단의 발굴보고서 초고는 중국측이 전부 또는 대부분을 집필한 후 토론을 거쳐 북한측의 동의를 받았으며, 1965년 공동 발굴 종료시 체결한 협의서를 통해 이 보고서가 초고임을 확인,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내부 연구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런 합의를 위반, 단독으로 '조.중 공동 고고학 발굴단'의 이름으로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왜곡한 상태로 공개 발표해 "고조선이 중국 동북지방에서 기원했고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잘못된 관점을 크게 선전했다"고 문건은 주장했다.

중국은 북한의 일방적인 보고서 공개 발표에 분노, 1990년대 초 보고서를 토대로 당시의 발굴 기록과 사진 등을 일일이 대조해 가며 조정과 수정, 보충을 거쳐 1996년 12월 '쌍타자(雙타<駝에서 馬 대신 石>子)와 강상(崗上) - 요동(遼東) 역사 이전 문화의 발견과 연구', 1997년 12월 '육정산(六頂山)과 발해진(渤海鎭) - 당(唐)대 발해국의 귀족묘지와 도성 유지'를 펴냈다.

d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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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