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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을 제대로 취급하는 방법

일본인을 제대로 취급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문정신 기자]
▲ <일본인취급설명서> 표지
ⓒ2005 북스넛
일본의 망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150년 된 우동 국물처럼 대를 이어 지속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전통을 고수하는 일본인들의 근성이다. 망언-사과-망언의 고리는 그래서 되풀이된다.

우리는 일본인들의 망언이 나올 때마다 일장기를 불태우고 대사관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인다. 그리고 사과를 얻어낸다.

그러나 며칠 있으면 다시 망언이 튀어나온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시위와 반발은 조금씩 무뎌진다. 웬만한 망발은 보도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망언이 나올 때마다 설전을 벌이거나 감정싸움을 지속하면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우리에게 있고, 약간 익숙해지기도 했으며 일일이 대꾸하는 게 귀찮기도 하다.

독도문제와 교과서왜곡도 같은 패턴이다. 일본은 우기고 우리는 흥분하고, 일본이 다시 우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왜곡교과서를 채택했고, 독도는 국제사법재판으로 가리겠다는 심산을 품고 있다.

이러한 일본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우선 우리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해 보자.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할 사명과 단순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 사안이 분명히 다르게 존재한다. 독도와 역사적 진실, 위안부 피해 보상은 충무공의 정신을 받들어 지키고 받아내야 할 우리의 사명이자 책무다.

그런데 망언에 일일이 대꾸하고 수정해 주기엔 우리의 소모가 너무 많다. 대개 말싸움이나 감정싸움에서 말을 심하게 하는 쪽은 열등의식이 큰 쪽이다. 일본에는 섬나라에서 발원되는 골 깊은 열등의식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사명은 지켜야 하고 소모는 버려야 한다.

이 책 <일본인 취급설명서>에서 저자는 일본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집단성'을 지적한다. 우리도 그들의 기질을 웬만큼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의 한일관계를 실리적으로 풀어가는 데 활용할 만한 특징임은 분명하다. 일본인들은 집단을 벗어나면 도무지 힘을 못 쓴다.

그래서 어떻게든 집단 안에서 공생하려고 노력한다. 집단이 유지되려면 리더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리더에게 카리스마가 있든 없든 순종하고 따라야 자기 소속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구성원들로부터의 따돌림도 피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집단 속에서의 개인적인 돌출은 허용될 리 만무하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 집단성으로 뭉쳐진 조직은 리더를 제외한 누구도 그 집단을 대변하거나 좌지우지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리더가 아닌 개인의 행동과 발언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마네 현의 조례통과와 왜곡교과서 채택, 외무부 직원의 건방진 발언 등이 그들에겐 일 잘하는 구성원의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한 사람, 바로 일본의 리더만 움직이면 된다. 일본에서 리더는 항상 두 사람이다. 하나는 정치적 리더인 수상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 리더인 천황이다. 천황의 권력은 제한되어 있으니, 지금 가장 실질적인 리더는 수상인 고이즈미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무리 시위를 하고 대사를 불러들여 경고를 해도 그들에겐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주한 일본대사는 집단성으로 뭉쳐져 돌출이 허용되지 않는 조직의 힘없는 일개 구성원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일본 수상을 철저하게 휘어잡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약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태의 악화이다. 그들은 사태가 악화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일본인들은 예상을 벗어나 사태가 악화되면 어떻게든 그것을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스스로의 주장을 접고 상대방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과 중국인들은 일본인과 협상을 벌일 때 전략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면서 결국에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적고 있다.

지난번 중국의 우이 부총리가 고이즈미와의 회담을 돌연 취소하고 급거 귀국한 배경으로는 중국 내 강경파의 쿠데타 가능성과 일본·대만 간의 군사연대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라는 등의 추측이 무성하지만, 사태를 적당히 악화시켜 일본과의 관계를 주도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짙게 깔려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인들은 더 노골적이다. "일본인과 협상을 벌일 땐 지각을 하라", "일본인에겐 무조건 NO!라고 말하고 협상을 시작하라" 등의 취급설명서를 갖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쯤 되면 우리의 대 일본 전략은 분명해진다. 먼저 고이즈미에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조건을 미리 제시해야 한다. ▲독도 영유권 주장 완전 취소 및 대내외에 한국영토로 천명 ▲왜곡된 역사교사서 전량 수거 및 폐기 ▲위안부에 대한 확실한 금전적 보상 약속 등.

이에 대한 확답을 회담을 통해 받으려면 너무 늦다. 일본이 원하는 한일정상회담은 유엔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이웃 국가들의 동의 절차이다. 회담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국제사회에 나가 떠들 명분을 갖게 된다. 한국도 일본의 유엔 진출을 어느 정도 수긍하기에 회담까지 열렸던 것 아니냐고 말이다.

정부는 회담이 성사되기 위한 조건으로 이 세 가지를 내걸기 바란다. 사태를 악화시켜라. 일본인들의 집단성을 활용하라. 그래서 충무공이 피로써 지킨 이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제대로 지켜내는 떳떳한 후손의 모습을 보여라. 이것이 내가 읽은 <일본인 취급설명서>의 가르침이다.

/문정신 기자

덧붙이는 글
문정신 기자는 도서출판 북스넛에서 <일본인 취급 설명서>를 편집한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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