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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아이스크림 색소 범벅

아이스크림, 화려한 색소의 유혹?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점심시간 무렵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인근.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입에 물고 걷는다. 점차 더워지는 날씨,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때다.

그들의 입을 감미롭고 시원하게 통과하는 아이스크림 중에는 지난해 5월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 조사결과 식용색소인 ‘적색2호’가 들어있던 것도 있었다. 당시 소보원은 조사한 빙과류 6개 가운데 ‘A’회사 ‘ㅅ’제품과 ‘ㅈ’제품, ‘B’회사 ‘ㅊ’제품에서 적색2호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식용색소 ‘적색2호’는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발암물질로 규정해 사용을 금지한 색소다. 특히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1976년 동물실험 결과 암이 발생해 전면적으로 사용을 금지했다.

소보원의 발표 직후 ‘A’회사는 적색2호를 아예 빼거나 적색40호 등 다른 식용 색소로 대체했다. ‘B’회사도 올초부터 해당 제품의 식용색소를 천연색소로 바꿨다.

제품 제조사들이 소비자의 안전 의식을 감안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데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 측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 식약청 측은 “적색2호는 국제규격인 CODEX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색소다”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색2호 슬그머니 빠져…’
 
식용색소 '적색2호'는 미국 등지에서 발암성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합성착색료'라는 표기 안에 합법적으로 숨어 있다. 식용색소 '황색4호'는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표기를 밝혀야 하는 색소.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아이스크림의 주원료는 물엿, 백설탕, 액상과당이다.ⓒ미디어다음

지난해 빙과시장 점유율 38%를 차지한 ‘A’ 회사. 이 회사는 ‘ㅅ’제품이 최근 20주년을 맞아 22억개가 팔렸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1인당 50개씩 먹은 셈이다. 1985년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인기 가도를 달렸던 이 제품은 회사 매출의 1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며 지난해에도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같은 ‘ㅅ’제품의 포장지에는 주 원료 이외에 식품첨가물로 합성착색료를 사용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합성착색료라는 이름으로 지난해까지 위해성 논란이 여전히 진행됐던 식용색소 적색2호 2.07mg을 사용해 왔던 것.

‘A’회사는 ‘ㅅ’제품에 적색2호와 적색40호를 함께 사용해 오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색40호만 식품첨가물로 쓰고 있다. ‘ㅈ’제품에는 적색2호만 0.9095mg 정도 첨가해 사용했다가 비슷한 시기에 이를 제외시켰다.

‘A’회사 관계자는 “식약청에서 규정한 식품공전에서 적색2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없어서 사용했던 것이다”며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적색2호를 공정에서 빼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ㅁ’시리즈로 출시한 지 22개월만에 누적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B’회사. 이 회사는 올해에도 공장을 풀가동해 ‘ㅁ’시리즈의 인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그 시리즈 가운데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ㅊ’제품. 마찬가지로 소보원은 이 제품에서 0.24mg의 적색2호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에 ‘B’회사는 준비기간을 거쳐 올초부터 식용색소 대신 천연색소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B’회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규정상 문제가 없었지만 더 좋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ㅁ’시리즈에서 식용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적색2호 안전성, 계속되는 논란’

장재연 아주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이미 미국에서 사용 금지한 식용색소를 우리나라에서 굳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논란의 대상이라면 식약청이 전면 사용금지 조치를 하거나 적어도 어린이 기호식품에서는 제외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은 종류에 따라 많으면 4~5개의 식용색소를 다중섭취하게 된다”며 “식품첨가물로서 보존효과 등 긍정적 효과가 전혀 없는 식용색소를 사용해왔던 기업들 스스로가 자제하는 윤리의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유신 서울환경연합 간사도 “지난해 10월 공인기관 조사 결과 젤리와 사탕류 등 27개 제품 가운데 11개 제품에서 적색2호가 검출됐다”며 “식약청이 면류와 단무지, 두부, 김치류, 고춧가루, 카레 등 47개 품목에서 그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선호하는 기호식품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 식품첨가물과 관계자는 “미국과 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일본과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대부분 국가에서 적색2호를 허용하고 있다”며 “WHO와 FAO에서도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사용제한은 나쁜 원료를 좋은 것처럼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위화 방지 차원일 뿐 안전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면서도 “환경단체 등의 지적에 따라 국민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내년 예산에 식용색소 관련 연구계획이 잡혀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 아이스크림 = 물엿 + 식물성 경화유 + 식품첨가물 범벅’
 
전문가들은 아이스크림에 들어있는 각종 식용색소와 식품첨가물 등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황색4호' 등 알러지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용색소는 꼭 확인하도록 권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 황제와 귀족들은 기원전부터 얼음에 소금과 과일을 넣어 만든 ‘셔벗’ 형태의 빙과를 즐겼다. 본격적인 서양식 아이스크림의 역사가 시작된 것도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의 기술을 이탈리아에 소개하면서 부터다. 이 같은 아이스크림들은 그 자체가 웰빙 식품이었다. 눈 또는 얼음에 첨가하는 주 원료가 꿀이나 과일 등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아이스크림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당분과 식품첨가물 범벅이다. 정제된 수분에 주원료로 물엿과 백설탕, 액상과당을 더한다. 여기에 소비자들을 끌기 위한 식용색소와 착향료, 유화제 등이 기본으로 추가된다. 간혹 세계적으로도 안전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적색2호도 포함된다. 게다가 동종 타르계 색소 가운데 알레르기 유발 물질로 분류돼 우리나라에서도 의무표기 대상인 황색4호 색소는 흔히 제품의 겉봉지에서 쉽게 확인된다.

인공색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르계 색소는 석탄 타르에 함유된 벤젠이나 나프탈렌으로부터 합성한다. 원래는 섬유 염료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이에 타르계 색소는 소화효소의 작용을 저해하거나 간장과 신장 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타 식품과 마찬가지로 아이스크림에 포함된 식품첨가물도 제품의 겉봉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황색4호를 제외한 나머지 식용색소 등은 ‘합성책색료’로만 표기돼 소비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황색4호는 초콜릿, 젤리, 사탕, 과자 등에 폭 넓게 쓰이고 있다.

반면 미국 FDA는 황색4호와 함께 황색5호까지 알레르기 및 천식유발, 과민증 발생, 장기 투여시 체중감소, 설사 등의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상 주의를 요하고 있다. 특히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어린이에게는 섭취 자제를 권고한다. 적색2호는 발암성 때문에 전면 금지, 적색3호는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하고 있다.

유명제과사 중견 간부였던 A씨는 “대부분 아이스크림들의 주원료는 수분 이외에 물엿과 식물성경화유, 식품첨가물 등이다”며 “수분함량이 높은 아이스크림 특성상 물과 기름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이는 유화제도 필수적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주원료인 물엿도 조청과 같은 당류가 아닌 영양분이 거의 없는 정제당의 아류이고 식물성 경화유는 건강에 해로운 포화지방 종류라는 것.

그는 또 “아이스크림 제조회사들이 천연색소가 인공 식용색소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색깔이 다양하지 않으면서 금방 변색되는 한계 때문에 사용을 기피한다”며 “가공식품으로서 아이스크림은 유해물질 투성이일 뿐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