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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한민국 싱글 프런티어"

[600만 싱글의 힘] "우리는 대한민국 싱글 프런티어"

"싱글이 이상해? 당신이 이상해!"
가족없어 몰입·집중의 즐거움 맘껏 누려
싱글문화 초보수준… 솔직히 미래가 불안


[조선일보 허인정, 박민선, 김미리 기자]

숫자로 볼 때 2005년 대한민국은 분명 ‘싱글 전성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조선일보와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도 싱글 중 59%가 ‘가족·친지를 만날 때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싱글의 해외 여행기인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를 쓴 전지영(35·만화작가)씨,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저자 김용환(34·프리랜서)씨, ‘금융지식이 돈이다’를 쓴 김의경(36·회사원)씨,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펴낸 김민정(29·시인)씨는 “예전보다 싱글을 보는 눈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전지영씨의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이들의 ‘좌충우돌 싱글담‘을 들어봤다.


1. 결혼, 안 하나 못 하나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3명과 달리 10여년 동안 벤처캐피털·철강회사 등 딱딱한 업무를 해 온 의경씨. ‘결혼 안 해’(혹은 못해) 당한 설움을 좌르르 쏟아낸다.

“요즘엔 ‘액면가(얼굴)’만 보고 아예 애가 몇이냐고 묻습니다. 얼버무리면 딸이냐, 아들이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결국 싱글이라고 밝히면, ‘저 사람 문제 있냐’ ‘이혼했냐’며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도 적잖단다. 의경씨는 “내용 연수(쓸 수 있는 기간) 줄어들고 잔존가치(감가상각 통해 남은 가치) 떨어지니 더 결혼하기 힘들어진다”며 “젊은 친구들한테 빨리 결혼하라 그런다”고 털어놓는다.

여성 싱글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독신 선언으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해외 가출’을 감행했던 지영씨.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세계가 확실해 결혼하지 않은 게 흠이 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며칠 전 결혼을 준비하던 친구가 고부 갈등으로 목숨을 끊었어요. 결혼 제도가 나와는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죠.” 민정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남·여 싱글들의 결혼관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결혼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여성싱글은 56%가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지만, 남성 싱글은 ‘결혼하겠다’라는 대답이 71.1%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결혼’이라고 말한 남성 싱글은 9.4%인 반면, 여성 싱글은 절반도 되지 않는 4.1%에 그쳤다.

2. 고맙다! 싱글

월세가 없어 선배의 지하 작업실을 전전하며 만들었던 초간단 요리들을 묶은 책이 무려 40만부나 팔려나가 인생역전에 성공한 용환씨. “싱글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일”이라며 웃는다. 책에 실린 노하우가 5년여의 백수 생활에서 나온 비법인데, 부양가족이 있었다면 가능했겠느냐는 반문이다. ‘비자발적 독신’인 의경씨도 이 부분엔 동의한다.

“친구들 모두 주말엔 가족들과 있으니까 함께 놀 사람이 없더라고요. 비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금융책을 냈어요.”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 싱글의 특권이다. 민정씨는 “똑같은 다시다도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바라본 다시다와 혼자 살 때 보는 다시다가 다르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3. 우리는 대한민국 싱글 프런티어

“싱글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싱글의 롤(role) 모델이 많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노인들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요. 한국은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니 솔직히 미래가 불안해요.(김의경)”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싱글족’이 등장하기 시작해 1990년대에 이르러 싱글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싱글족’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의경씨는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 싱글 1세대’, ‘싱글 프런티어’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전지영씨는 “사회에서 싱글을 ‘불안정한 존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독신세’를 거둬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하루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절감해요. 때론 겁나지만 그 긴장이 활력이 되기도 하죠. 꼭 후세대 싱글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열심히 살 겁니다.”

(허인정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njung.chosun.com])
(박민선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unrise.chosun.com])
(김미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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