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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사람잡는 모기향


사람잡는 모기향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 환경과건강 2005-06-14-08:47:45]

모기만큼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혀온 해충이 또 있을까? 모기는 말라리아, 웨스트 나일 (West Nile) 바이러스, 뇌염, 뎅기열(dengue fever) 등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전파시키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기를 쫓는 과정에서 또 한번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방법은 모기의 종류 만큼이나 다양한데, 그 중에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것은 ‘모기향(mosquito coils)’이 아닐까 싶다. 국화과 다년초인 ‘제충국(pyrethrins)’을 주 원료로 한 모기향은 값이 저렴하고 효과가 좋아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 모기향이 모기만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말레이지아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코일형식의 모기향 한 개를 실내에서 다 태웠을 경우 담배 75~137개비를 피웠을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양의 ‘미세분진’과 51개비 담배 분량의 ‘포름알데하이드’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에 사용된 모기향의 원산지는 중국과 몇몇 열대지방 아시아 국가들이었는데,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모기향의 원료인 ‘제충국’이라는 물질은 모기와 같은 냉혈동물에게는 독성이 강하지만, 인간에게는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 식물 살충제이다. 문제는 모기향이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탈 수 있도록 첨가된 보조 성분들 연소 되는 과정에서, 매우 자극적이고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 다량 배출된다는 점이다.

모기향 근처에 있는 사람은 ‘비스클로로메틸에테르(BCME)’라는 매우 강력한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되는 것과 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모기향 연소과정에서 배출된 미세분진(PM2.5)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침투하여 단기적으로는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암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염려가 되는 것은 아이가 자는 방에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문을 닫아 놓은 채 밤새도록 모기향을 피워 놓는 경우이다. 아이들은 동일한 오염수준에 놓였을 때 성인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장기간 모기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천식과 지속적 기침 현상이 유의하게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서 버젓이 팔리는 모기향이 미국에서는 판매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연간 수 백만 명이 모기향을 사용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70억 개가 팔려나간다고 한다. 모기는 지난 수 십년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지구 온난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모기는 더욱 살기 좋은 환경에 놓이기 때문이다. 비록 모기는 인간에게는 혐오스러운 존재지만,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모기를 박멸하기보다 모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최근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기존의 모기향에 저항력이 생긴 모기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다른 연구는 미국에서 시판되는 모기 퇴치제의 성능을 비교시험 한 결과를 발표했다. 1등은 1946년 미군이 사용하기 시작하여, 1957년에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디트(DEET)’라는 성분이 차지했다. 미국의 질병관리센터(CDC)가 모기전파 질병 예방을 위해 유일하게 추천하는 이 성분은 인체에 매우 안전하여, 미국 소아과 협회는 생후 두 달이 지난 아기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모기향은 모기를 쫓는 최후의 수단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끝.

글/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nh21.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