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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다른 배낭여행, 한비야 대 김남희

한비야 vs 김남희



[한겨레]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두 개의 세계 배낭여행 따라가기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거의 매일을 새로운 곳에서 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떠돌이의 생활. …나는 어떻게 타고났는지 이 불확실성과 낯섦을 대단히 즐기는 편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한 발쯤 앞선다.”(한비야)

“일출이나 일몰보다는 해뜨기 전의 미명, 타는 듯 붉은 노을을 남기고 태양이 사라진 후의 잔영 이런 것들이 나를 사로잡고는 했다. 삶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고 난 뒤의 허망함, 패배 후의 씁쓸한 교훈 이런 것들이 아닐까.”(김남희)

뛰어들기, 빈둥거리기

1990년대부터 세계 배낭여행이라는 달콤한 꿈이 한국인들의 잠자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한비야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며 선지자이며 예언자다. 김남희는 한비야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다. 두 여자의 이야기는 신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 다 유학을 다녀와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삼십 대 중반에 배낭과 함께 사라졌다. 고난과 모험과 성장의 서사를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한비야는 ‘바람의 딸’이고, 김남희는 ‘까탈이’(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다. 이것이 두 여행의 차이다.

출발점부터 살펴보자. 한비야는 1993년 “한 3개월 휴가를 주면 그 바람기 잠재우고 올 수 있겠어?”라고 묻는 직속상관에게 사표를 내민다. 세계여행은 오래전부터 계획한 인생의 주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까지 대며 대학에 들어갔고, 그때 알게 된 미국인의 도움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느 순간에도 아버지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에게 삶은 최선을 다하는 것, 목표를 높게 잡고, 실천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통해 자기 한계의 지평선을 열었다고 말한다. 10년 뒤 김남희는 아시아부터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여행을 열흘 남짓 남겨놓고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친구에게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왜 소박한 일상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떠나는 거냐고 물을 때 그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한비야가 자신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김남희는 자신을 버리기 위해 떠난다.

한비야는 오지여행을 다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2·3·4권과 중국 여행기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국내 여행기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긴급구호 활동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을 펴냈다. 김남희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1·2·3권을 펴냈다. 두 사람의 행보가 겹치는 지역 중 라오스와 버마를 여행해보자. 한 번은 한비야와 함께, 한 번은 김남희와 함께.

1997년 4월 한비야는 타이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간다. 2003년, 김남희도 육로로 라오스에 들어온다. 한비야에게 라오스는 흥분되는 가슴을 안고 찾아가는 “오지여행가의 천국”이다. 김남희에게 라오스는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는, 하릴없이 빈둥거릴 수 있는” 나라다. 한비야는 태평스럽게 트럭 뒤칸을 빌려타고 신년 축제를 보기 위해 란상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으로 간다. 최신식 물기관총을 하나 사서, 행인들에게 물을 퍼부어대는 그곳의 축제를 흠뻑 즐긴다. 그는 억척스럽게 현지인의 삶 속에 뛰어든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정월 초하루 전통적인 가족행사인 바시에 참석한다. 악명 높은 라오스 화주로 속을 불태우면서 그곳의 가족들에게 정을 붙인다. 김남희는 숨이 턱턱 막히는 버스 속에서 짜증내고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수도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까지 이동한다. 매일 출근도장을 찍듯 야시장을 어슬렁거리기만 한다. 유일한 욕망은 바게트빵뿐. 유격훈련식 여행을 싫어하는 탓에 더디고 더디다.

종교와 현지인에 대한 다른 태도

루앙프라방에서 한비야는 겁도 없이 아편지대 ‘골든 트라이앵글’ 밀림이 기다리고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동행자가 “젊어서 무모하다”고 투덜대는 김남희와 달리, 한비야는 이스라엘 청년을 살살 꼬여서 아카족들이 사는 깡촌 마을들을 헤맨다. 소나기 속에 진흙탕 길을 헤매다가 운 좋게 경운기를 얻어타는 식이다. 아편을 피워대는 남자 대신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아줌마들과 친해지고, 아이들에게 색색의 풍선을 나눠준다. 김남희는 더위와 모기에 시달리며 천천히 라오스 남쪽을 종단한다. 소요하는 시간. 그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딸의 얼굴을 살피며 머리띠를 골라주는 어머니를 보며 괜스레 슬픔에 젖기도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밀림에서 비린 닭고기도 척척 삼키는 한비야와 달리, 김남희는 곤충 요리를 먹는 친구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그리고 버마. 한비야는 배낭여행족들에게 “버마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이 친절하고 유순하며, 물가는 믿을 수 없이 싸고, 날씨는 믿을 수 없이 덥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에겐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김남희는 버마에 대해 더 예민하다. 외국 여행자들이 버마의 민주화에 도움이 된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김남희는 버마에서 쓰는 돈이 군사독재 정권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적은 돈만 환전하고 정부 소유의 숙박·교통 시설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만달레이에서 제일 먼저 “농담 한마디 했다는 죄목으로 7년간 옥살이를 한” 코미디언 파파 레이의 공연장으로 간다.

랑군, 인레호수, 바간, 만달레이까지 한비야와 김남희의 일정은 대체로 겹친다. 시간차 때문에 한비야에게 생략된 경험이 있다면 김남희를 “은서와 준서를 아느냐”는 질문에 시달리게 한 한류(韓流)다. 수중 사원으로 유명한 인레호수와 불탑이 펼쳐져 있는 바간은 대표적인 불교 유적들이다. 둘 다 매일같이 버마 민중들의 종교 의식과 마주친다. 한비야는 그들이 정성스럽게 비는 모습이 눈물나게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위해 순수하게 염원하는 마음.” 김남희는 어떨까? “버마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이 의식이 조금도 성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돌이켜볼 때 이 의식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불교 유적들에 만족할 한비야가 아니다. 그는 만달레이 서쪽의 히시포라는 소도시로 달려가 조그만 국수가게를 하는 ‘살아 있는 천사’ 낸시 아줌마를 만난다. 한비야는 낸시에게 놀라운 여행 경험을 털어놓고, 낸시는 한비야에게 자신의 험난한 인생길을 고백한다. 떠나는 날, 새벽같이 찾아온 낸시는 커다란 망고 두 개와 재스민 목걸이를 건넨다. 시골마을 벵캉에서는 여선생의 집에 머물며 허드렛일과 요리를 도와준다. 한비야는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기회를 억척스럽게 찾아내고, 기어이 그들과 친구가 된다. 김남희는 훨씬 소심하고 조심스럽다. 그는 바간에서 타나카를 파는 아가씨, 지옌넷의 초대를 받는다. 온 식구가 반가워서 법석을 떠는데도 김남희는 “없는 살림에 민폐만 끼칠 것 같아” 지옌넷을 데리고 나와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한다.

버마 여행의 마지막. 한비야는 벵캉에서 1달러도 안 되는 등록금을 못 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통비를 털어준다. 돈이 모자라 랑군까지 현지인 버스를 타면서도, 옆자리 학생을 통해 버마 군사독재의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며 싱글벙글이다. 그는 버마를 떠나기 전 사원에서 “이 어진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김남희는 한국 역사의 비극인 ‘아웅산 국립묘지 폭발 사건’ 현장에 들어가려다가 무장 군인들에게 제지당한다. 그는 국립묘지 입구를 돌아보며 기원한다. “이 땅에 민주화의 봄이 빠른 걸음으로 찾아오기를….”

한비야는 답, 김남희는 의문

한비야는 세계 배낭여행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긴급구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여행 초기부터 난민구호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정확하게 실현됐다. 김남희는 지금 스페인에서 남미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헤매야 할 것이다. 그들의 현재는 여행의 자연스런 결말이다.

한비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쟁취한다. 김남희는 애초부터 목표가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한비야는 답을 얻어서 돌아오고, 김남희는 의문을 가지고 돌아온다. 한비야는 유쾌하지만, 김남희는 쓸쓸하다. 한비야는 세상으로 씩씩하게 나아가지만, 김남희는 계속 자신에게 돌아온다. 한비야는 여행의 모든 난관을 싱글벙글 뛰어넘지만, 김남희는 짜증내고 까탈을 부리고 자신에게 절망하다가 다시 반성한다. 그러므로 김남희는 항상 한비야보다 느리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비야는 아줌마고, 김남희는 소녀다.

세계 배낭여행은 지금 한국인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일탈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이적행위’다. 그러나 문제는 용기다. 배낭을 쌀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비야를 ‘앞’에 두고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한비야는 그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완벽하고, 그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김남희를 ‘옆’에 두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젠장, 내가 왜 이 짓을 하는지”라고 함께 투덜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삶은 늘 전진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이다.

역시 문제는 용기다. 기자의 경우는 글쎄,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등장하는 소시민에 속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벌떡 일어나 애국가를 듣는다. 화면에는 한비야와 김남희가 등장한다. 그들은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처럼,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나도 한 세상 떼어 메고 날아갔으면”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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