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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뇌 젊게 하려면 과도한 행동 피하라

뇌 젊게 하려면 과도한 행동 피하라

‘나’는 ‘뇌’고, ‘뇌’는 ‘나’다. 따라서 내가 늙는다는 것은 뇌가 늙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젊게 살고 싶어 한다. 뇌를 젊고 활기차게 유지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젊고 활기찬 뇌를 갖고 있다는 것은 뇌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기관을 젊고 활기차게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뇌가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최고사령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심장병을 갖고 있다면 병에 관한 책을 읽거나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심장병을 치료하고 악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런 행동은 바로 뇌가 작동하여 이루어지는 일인 만큼 우리의 사령관이 건강해야 말단의 병졸까지 잘 지휘하여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높은 수준으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숨은 쉬고 있으되 그 ‘인간’ 앞에는 ‘식물’이라는 말이 붙게 되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오묘한 기능을 하면서 최고의 효율성을 갖고 작동되고 있는 것을 들라하면 주저없이 뇌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뇌도 점차 나이가 먹으면서 노화(老化)를 겪는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음 몇 가지 설명은 가능하다.
우선 세포가 나이를 먹거나 손상되어 수명을 다하면 새로운 세포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유전자 안에 프라이머라는 복제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 복제기를 받치고 있는 부분을 텔로미어라고 하는데 텔로미어는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는 만큼 짧아진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이 텔로미어의 길이는 정해져 있는데 새로운 세포를 많이 만들수록, 즉 나이가 들수록 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노화로 나타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노화에 대한 가설은 산소에 관한 것인데, 바로 ‘활성산소’라는 나쁜 물질에 관한 것이다. 활성산소는 일반적인 산소분자에 에너지가 가해져서 생성된 것으로, 스모그 등 나쁜 공기에 많이 섞여 있다. 문제는 젊었을 때는 이 활성산소를 분해하는 효소가 많이 나오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양이 적어진다는 점이다. 몸안에 활성산소가 많아지면서 이로 인해 세포가 손상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새로운 세포를 많이 만들려고 하고 그럴수록 더 빨리 텔로미어를 소진하게 되어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설로 볼 때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활성산소를 적게 만들거나 분해효소의 활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우선 활성산소의 생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따라서 과식과 과도한 운동, 과도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나 분노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는 일군의 호르몬을 촉진시켜서 갑자기 극도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하고 이 때 과도하게 사용되는 산소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생성된다. 중용과 절제, 이해, 용서, 관용의 미덕이 품위 있는 노년의 덕목임은 물론 건강한 뇌를 유지하고 건강한 노년을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또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제가 풍부한 음식이 있는데 비타민 C, E나 색깔 있는 야채, 붉은 포도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방과 염분을 줄이고 육류보다는 콩, 생선, 유제품을 많이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V 시청보다 독서가 좋아
노년기에 생기는 주요 뇌질환으로 치매를 들 수 있다. 치매란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독일 의사의 이름을 붙인 알츠하이머병이 제일 유명하다. 70대에서는 대개 10명 중 1명, 85세 이상에서는 4명 중 1명이 이 병에 걸린다.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국가, 아니 인류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치매는 사소한 기억력 저하에서 시작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이다. 뇌에서 비정상 단백질인 아미로이드를 이상(異常)생산해서 생긴다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발병 초기에 빨리 발견하여 치료하면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즘은 4~5가지 정도의 알츠하이머 치료약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기억력과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기억력을 유지하고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면서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약물들이다. 이 외에 비타민 E, 호르몬 제제(에스트로겐 등), 니코틴 등 다양한 치료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이외에 뇌의 혈관성 질환(뇌졸중 등)에 의한 치매도 아주 많은데 이는 악화요인을 조절하여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치료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노년기의 우울증은 과거에는 치매와 별개의 것으로 여겼으나 서로 동반하거나 서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치매의 치료와도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노년의 우울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우울증은 생물학적인 뇌의 병이고 미흡한 인식과 편견 때문에 높은 치료율에도 불구하고 홀대를 받는 질환이다.
노년기의 우울증은 신체증상으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내과적 검사로 발견되지 않는 신체증상이 생길 때는 우울증을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노년기에 신체질환을 가진 사람의 25~40%가 우울증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병으로, 노인기에서는 무기력과 이로 인한 기력저하, 자살 등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고 날카로워진 감정 때문에 가족과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80대에 자살한 노인 5명 중 1명은 자살 당일에 의사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우울증을 인지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문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10명 중 7~8명에게 효과가 있다.
이 외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모든 증상이 뇌와 관련된 문제이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낮잠은 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며, 쉽게 노여움을 타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떨어져 주위 사람이 자신을 피하게 하고 스스로를 짜증스러워 하는 등의 성격변화 등이 모두 뇌의 노화와 관련돼 있다. 뇌의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나 이를 지연시키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년의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우선 적당한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의 힘과 균형, 비만 예방, 심장과 폐의 기능 유지에 필수적이다. 이런 일반적인 이득 이외에 운동은 기억력을 유지시켜 주고 우울증을 치료하며 치매의 예방에도 아주 중요한 대책이 될 수 있다. 운동은 기억력과 가장 밀접한 뇌 부위인 해마를 강화시키고 항우울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 뇌를 활발히 사용하고 뇌에 자극을 주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TV를 보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대신 독서, 게임, 강연회, 음악회 등에 참석해보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만나 수다도 떨고 적당히 조언도 해보자.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빠질 수 없는 노년기의 핵심 사업이다. 자손에게 꼭 필요한 일이지만 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면 뇌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그야말로 존중받는 노년이 될 수 있다.
전성일 전성일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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