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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 이 부부가 사는 법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부부가 사는 법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고급 아파트도 없지만 우린 지금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구요!”

올 초 KBS-2TV ‘인간극장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방영 이후 박범준·장길연 부부는 뜻하지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잠시 친구 집에 머물기도 했던 지난 6개월 동안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만의  新행복록을 만나본다.

행복을 찾아 사는 곳을 옮겼을 뿐

박범준(32)·장길연씨(30) 부부를 만나기 하루 전, 부랴부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책 한 권 손에 쥐지 않고 지냈다. 팔랑팔랑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부부의 소꿉장난 같은 일상이 전해졌다. 때로는 ‘키득키득’ 낮은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을 때쯤 마음은 벌써 무주에 가 있었다.

지난 1월 박범준·장길연씨 부부의 생활은 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다. 출연을 결정할 당시 그들은 방송에 노출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 사람들은 젊은 부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 것 못지 않게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그들의 이력에 관심을 보냈다. 두 사람은 행복을 찾아 사는 곳을 옮겼을 뿐인데, 처음 방송이 나간 후 대중은 그들이 ‘기인열전’에 출연한 사람인 양 바라봤다. 특히나 방송 중 자막으로 주소가 소개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왔다. 대부분 애정을 갖고 찾아온 팬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미리 약속하지 않고 불쑥 찾아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어떤 이는 무작정 지프를 끌고 마당 앞까지 들어와 방송에 나왔던 곳에서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요즘 전원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잖아요. 전원 생활을 하기 위해 저희한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방송에서 보고 찾아왔는데, 좋은 땅 없냐?’며 땅 투기를 하러 오신 분도 있었구요. 한번은 아침에 기지개를 켜다 창 밖을 보니까 마당에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흔드는 거예요. 누구를 탓할 상황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 사실이었죠.”

범준·길연씨는 자신들이 사는 집을 ‘나무네 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난 겨울 나무네 집 앞마당에는 이들 부부를 보겠다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저희를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특별한 인물로 관심을 갖는 게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특히나 유명 연예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는 듯 찾아오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당황스러웠죠. 우린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방송 촬영은 작년 12월에 했다. 그때 범준·길연씨 부부는 익숙치 않은 시골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뭔가를 이뤘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예상 밖의 관심이 두 사람을 힘들게 했다. 범준·길연씨 부부는 방송을 통해 “시골이 좋으니 모두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가자”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건 서로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어요. 공해를 마시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개인적인 성공 욕구 때문이니까 괜찮아요. 저도 그렇게 살아 왔구요. 하지만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부부라는 끈으로 맺어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대화는커녕 서로 너무 바빠 오해가 생겨도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게 안쓰러웠어요.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함께 일하고 대화를 해요. 덕분에 부부라는 관계가 참 소중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꼈죠.”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귀농’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농사를 짓는 다른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오는 방식은 참 다양하죠. 저희는 많은 방법 중에 하나를 택했을 뿐이에요. 저희가 농사를 계속 짓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귀농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것들이 부각돼서 사실과 다른 관심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박범준씨의 이야기에 정길연씨도 맞장구를 친다.

“방송은 순간순간을 포착해서 상품을 만드는 거잖아요. 우리 안에 있던 어떤 트렌드 중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상품성을 골라 부각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좌충우돌하고 재미있는 부분만 부각시키다 보니 피해를 본 것도 많아요. 농사만 해도 잘 된 게 많았는데.(웃음)”

이들 부부는 사람들이 TV에 비친 모습만으로 자신들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어쩔 수 없다는 데는 공감한다. 지난달 출간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그런 오해들에서 자유롭고 싶은 이들 부부의 바람이 담긴 책이다.

“2년 정도 이곳에 살고 난 후에 책을 내려고 했는데, 출판사 쪽에서 서두르는 바람에 좀 앞당겨졌어요. 어떻게 보면 책도 수많은 오해를 나을 수 있는 매체인데, 그래도 제가 직접 원고를 썼기 때문에 TV보다는 제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잘 맞춰진 것 같아요.”

무주 생활 2년째
“용기나 포기란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자 박범준씨는 “아내가 사는 게 재미있다”며 아내 자랑(?)을 한다. 

“저는 잘 정리하는 재주밖에 없어요. 저보다는 아내가 사는 게 재미있어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괴짜가 됐죠.”

범준씨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란 배경이 자랑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의 아내는 자라면서 줄곧 손가락에 꼽히는 수재였다고. 그러나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공부만 하는 기계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럼에도 스무 해 넘게 도시에서 자랑 같지 않다고 여긴 것들을 갖기 위해서 노력한 게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 오면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했던 게 사실이죠. 그런데 ‘포기’라는 단어는 저희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정확히 표현하면 이곳에 올 때 저희는 아무것도 포기할 게 없었어요. 일은 쉬고 있었고, 전셋집에 살았으니 돈도 많지 않았고, 굳이 찾자면 전공과 학력 정도인데 그걸 팔아서 먹고 살아야 했죠. 그러자면 결국 돈이라는 방식으로 보상이 되는데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내의 이야기에 이번에는 박범준씨가 응수를 하며 두 사람이 이곳에 뿌리를 내린 동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용기나 포기라는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하세요. 하지만 저는 겁은 많은 사람이에요. 이곳에 올 때 어찌 될지 몰라 불안함도 있었죠. 그런데 확신은 있었어요. 당시에는 어느 정도 가능한 상황이었거든요. 저는 차남인데 분명히 장남과 차남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이도 없었구요. 특히 아내 성격이 이곳에 온다고 해서 날 원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만약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다면 그게 용기라면 용기겠죠.”

범준·길연씨 부부는 당분간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우려처럼 교육 시설 때문이 아니다.

“이 동네에 아이들이 참 많아요. 저희는 아직 자녀 계획은 없지만, 아이가 이곳에서 태어난다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지금의 환경에서 자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후에는 강요할 수 없겠죠.”

처음 범준·길연씨 부부가 무주에 왔을 때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전입신고를 할 때 만났던 면사무소의 직원까지도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뭘 할 거냐?”고 물었던 것. 사실 그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학교를 마쳤으며, 사회생활 역시 도시에서 시작했다. 어느 백과사전에도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으며, 이들 역시 시골살이의 모든 것을 무주에 와서야 하나씩 알아갔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 부부가 ‘나무네 집’에 적응하고 살기란 현실적으로 힘든 도전이었다.

“다들 이곳에 와서 뭘 할 수 있냐고 묻는데, 도시에서 갖고 있던 경쟁력이 이곳에서도 사용돼요. 최근에는 동네에서 컴퓨터 강의도 하고, 공공단체의 홈피도 만들어줬어요. 기업들은 입맛대로 원하는 사람을 골라서 쓰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사방을 뒤져봐야 저 하나밖에 없어요.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도 이곳에선 놀라운 기술이에요. 그런 일을 도와주면 고맙다고 팥도 주고 콩도 주세요. 제가 가진 것이 있고 못 가진 것이 있는데, 저는 여기 와서 많은 것을 주고받아요. 도시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이곳에서 잘 쓰고 있는 셈이죠.”

범준·길연씨 부부에게 특별히 해야 할 일이란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꼭 결혼이란 방식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동거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다. 특히 여자인 장길연씨는 이 부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저는 결혼 시장에서 별로 좋은 상품이 아니었어요. 몸도 약하고 사고방식 자체가 한국 남자들이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기대치를 채워줄 수 없었죠. 자칫 멀쩡한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동거를 생각해봤지만 사회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들이 많았어요. 모두 무시하고 결혼을 하기에는 제도적인 시스템의 무게도 무시할 수 없었구요. 그런 부분에서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죠. 그리고 이 사람이라면 날 이해해줄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
“사람들의 눈 때문에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죠”

사람들은 가끔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것 역시 종착점은 결국 행복이지만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언뜻 보면 이들 부부는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남의 눈을 의식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남의 눈이오? 전혀 의식을 안 할 수는 없죠. 다만 중심은 나라는 생각을 해요.”

범준·길연씨는 ‘나무네 집’으로 이사 오기 직전에도 부모님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주로 가야 하는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거기서도 할 일이 있잖아요’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됐던 것.

“부모님이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그렇지만 부모님은 ‘왜 이런 곳에 내려왔어’가 아니라 추운데 고생하는 저와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우셨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저희가 사회에서 밀려나 도피처로 이곳에 온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신나게 살고 있으니까 좋아들 하세요.”

박범준씨는 요즘도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무조건 의사나 검사가 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정길연씨도 마찬가지였다. 박범준씨가 처음 처가에 갔을 때 정길연씨 부모님은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다고. 사윗감이 왔으니 반가운 것이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에게 “산으로 갈 줄 알았던 딸을 데려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겉으로 봐도 유약한 체형의 길연씨에게 도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공간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전공과는 무관하게 문화·예술 쪽 일을 잠깐 했는데, 단 하나 박봉이라는 것만 빼면 너무 좋더라구요. 한 3년 동안 돈을 벌고 다시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다른 분야의 회사에 취직을 했죠.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몸이 고장 났어요. 병원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데 잘 먹지도 못하고 몸도 많이 안 좋았어요.”

길연씨는 어느 회사든 3개월을 못 넘기고 그만둬야 했다. 심지어 한 달 반만에 퇴사한 적도 있다. 체질적으로 몸이 약한 그녀는 직장생활 속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 사회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했어요. 봄이었는데 직장 생활이라는 게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와 지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밖에는 꽃도 피고 햇볕도 너무 좋더라구요. 돈은 많이 주는데 ‘와 신난다’ 그게 잘 안 됐어요. 더군다나 제가 하는 일이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내서 결국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좀더 소비하게 하고 안 사도 되는 것을 사게 만드는 일이었어요. 마케팅이란 게 학문적으로 공부할 때는 재미있는데 막상 밥벌이로 하려니까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더라구요.”

도시 생활을 벗어버리고 무주로 옮겨온 후 두 사람은 돈, 일 등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저는 유난히 자연과 가까운 곳을 좋아해요. 도심에서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 거예요.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투자해야 해요. 저녁에 잠깐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기 위해 매일 아침 도심 한가운데로 나아가 일을 해야죠. 그런 것들이 저와는 맞지 않아요. 솔직히 지금 생활이 육체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풍요로워졌어요. 건강도 좋아졌구요.”

박범준씨와 정길연시는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무주에서도 즐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처음 무주로 이사왔을 때만 해도 근사한 찻집에서 분위기 잡고 찻잔을 기울이고도 싶었고, 화려한 도시의 밤 분위기도 느끼고 싶었다. 그럴 때면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전주나 대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무주에서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그런 욕구들은 점점 사라졌다고.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님’을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서로 바라보고 대화하고 의지하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 사람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향기가 폴폴 피어났다. 그리고 황소걸음으로 ‘행복’의 종착역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여유로운 모습은 오랫동안 머릿 속에 남아 있었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최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