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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치매 치료, 방심하다 기회 놓쳐

치매도 조기에! … "건망증이겠지" 방심하다 잘 놓쳐

일찍 손 쓰면 15%는 예방 가능

 

영혼을 갉아먹는 병,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치매환자는 36만여 명. 그러나 10년 뒤엔 이 수치가 58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치매의 날'이다. 국내 최초로 치매 퇴치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보건소를 찾아 치매 조기 발견의 중요성과 지역사회의 역할을 조명해 봤다.


◆ 조기 발견하면 치매 피할 수 있어=지난 20일 경기도 광주시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100에서 7씩 뺀 숫자를 말씀해보세요." "93인가. 그 다음은 뭐지."

"(시계.열쇠.지갑.지우개.동전을 보여줬다가 감추면서) 방금 보신 것 중 기억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지갑은 생각나는데 나머진 뭐였더라." 보건소 전담팀이 지역 주민 중 60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치매 환자를 선별하고 있다.

보건소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치매 걱정 없는 광주시'. 올해 3월부터 60세 이상 고령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혈액검사 등을 통해 치매 고위험군을 골라내고 있다. 지금까지 1300여 명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를 끝냈다.

강정규 보건소장은 "조사대상 노인의 15%가 장래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추정된다"며 "정신과 전문의와 임상심리사의 심층면담을 통해 최종 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기 치매로 진단되면 인근 광주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과 연계해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심리치료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한다.

◆ 치매 조기 발견이 열쇠=조기 치매는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다가 치매로 진행된다. 조기 치매 노인은 정상 노인보다 치매로 악화할 가능성이 10배 가까이 높다. 최종적인 진단은 정신과 전문의의 심층면담 등을 통해 이뤄진다.

문제는 조기 치매가 노인들의 가벼운 건망증 정도로 경시된다는 것. 이 때문에 대부분 조기 발견의 기회를 놓친다.

광주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오병훈 원장은 "치매도 초기단계에서 발견해 치료하면 치매로 악화하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고 조기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치매에 걸리면 병원보다 바로 보호시설을 생각하는 일반인의 인식도 문제다.

오 원장은 "조기 또는 가벼운 치매의 경우 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15%에서 치매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나머지도 발병 시기를 수년 이상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의 역할 커=정부의 치매 대책도 과거 보호시설 확충에서 조기 발견.치료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시설 수용 이외의 대책이 없는 중증 환자보다 예방과 치료를 겸한 치매 조기발견이 훨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노인복지과 장병원 과장은 "치매 조기진단과 예방.치료.재활을 위한 지역 단위의 원스톱 통합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며 "현재 경기도 광주시 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시범실시 중인 치매 조기진단 사업의 평가가 끝나는 대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영선 보건사업계장은 "처음 설문조사 참여를 유도하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팸플릿을 돌릴 때만 해도 멀쩡한 노인을 치매로 만든다는 반감도 많았으나 지금은 보호자들이 나서서 부모들을 보건소로 모시고 온다"고 설명했다.


조기 치매를 암시하는 증상

1. 약속 등 최근 일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정상적 건망증과 다른 점은 자신이 그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하다.

2. 일상적인 익숙한 일이 서툴다.

예컨대 가스불에 음식 올려놓고 잊어버린다. 음식 올려놓은 것뿐 아니라 자신이 요리를 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3. 언어사용이 어렵다.

사과가 생각나지 않아 '과일'혹은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4. 시간과 장소를 혼동한다.

5. 판단력이 감소한다.

옳지 못한 판단으로 가족과 불화가 잦다.

6. 추상적 사고력이 떨어진다.

예컨대 돈 계산이 서투르고 어디에 썼는지 모른다.

7. 물건 간수를 잘 못한다.

지갑 등 원래 두었던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 남을 도둑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8.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9. 성격이 변한다.

예전보다 의심이 많아지거나 인내심이 적어지고 충동적으로 변하거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10. 자발성이 감소한다.

힌트를 주거나 지시를 해야 일을 한다.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 … 국가가 치매 책임질 것"
김근태 복지부 장관


"이제부터는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정의 몫으로 내맡겨진 치매 환자들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호하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이 밝힌 마지노선은 2008년. 현재 입법 중인 노인복지요양보장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다. 이를 위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1조5000억원이 치매 극복을 위해 투입된다. 중증 치매환자들을 위한 실비 요양시설을 전국적으로 125개 짓고, 경증 환자를 위한 소규모 시설 120개와 그룹 홈 125개, 낮동안에만 보호하는 재가지원센터 60개소를 짓는다는 것. 치매 조기발견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치매 조기진단.예방.치료.재활을 위한 원스톱 통합시스템도 지역별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치매는 그동안 국가가 방치해 가족에게만 고통이 전가됐지요. 부모 유기나 살인 등 가정 파탄 사례도 잦았습니다. 그러나 고령화로 인한 치매환자의 급증과 간병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한다면 이젠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문제는 돈이다. 요양시설 건립과 운용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이를 위해 기존 건강보험과 별도로 노인복지요양보장제도를 통해 징수할 기금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인복지요양보장제도를 위해 가구당 월 5000원 안팎의 보험료가 책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

"지금 당장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돈을 내야 하는 30~40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2020년엔 치매환자가 65만명으로 늘어나고, 이는 전체 65세 이상 노인의 9%에 해당합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뜻이지요."

[출처 : 중앙일보][2005.09.21. 09:55 입력]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 es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