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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할머니 기자에게 한방 맞다

 
부시, 할머니 기자에게 한방 맞다
[기자칼럼] 이진숙의 Global Report

‘돌아온 할머니’가 대통령에 맞붙어 ‘통쾌한’ 한판승을 거두었다. 물론 ‘통쾌하다’는 말은 할머니 기자를 위주로 한 객관적이지 않은 표현이지만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백악관 출입 기자들이 권력의 일부가 되어 백악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세게 한 판 붙은 이 여기자는 헬렌 토머스 (1920년생, 한국 나이로 87살이다), 그에게 얻어맞은 이는 부시 대통령이다. 결전의 장소는 오늘 (3월 21일) 오전, 이라크 전쟁 3주년 기념 백악관 기자 회견장이었다.

시작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꼬였다.







“헬렌, ‘그리드아이언 저녁’(워싱턴의 기자 클럽 주최 연례 만찬, 대통령이 초대된다)에서 멋있었어요. 나는...”
“당신은 후회하실 거예요 (힘든 질문을 하겠다는 뜻).”
“그럼, 내가 한 말 취소예요.” (웃음)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입에서 직격탄이 발사됐다.
“대통령님, 당신이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을 해서 수 만 명의 미국인과 이라크인이 죽고 평생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당신이 제시한 이유는 모두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죠. 제 질문은, 전쟁으로 간 진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백악관에 입성한 순간부터, 당신 내각과 정보 관리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이댔죠. 그런데, 진짜 이유는 뭡니까? 석유도 아니고, 이스라엘도 아니라면, 진짜 이유는 뭡니까?”

부시 대통령이 답변을 시작했다.
“당신의 전제는, 당신 질문과 평생 언론인으로서 당신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하는 말이지만, 당신 전제는... 나는 전쟁을 원치 않았습니다. 내가 전쟁을 원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헬렌의 반박이 이어졌다. “그러면...”
대통령이 헬렌의 말을 막았다. “잠깐만요, 잠깐만, 잠깐만...”

대통령이 9/11과 사담 후세인을 연결시키려 하자 헬렌은 또 대통령의 말을 막았다. 설전이 이어졌다. 헬렌은 9/11과 이라크는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9/11이 이라크 침공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미국은 세계 다른 나라들과 공조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국제 사회의 요구에 귀기울이기를 원했습니다. 사담이 사찰단을 거부했을 때 그를 제거한다는 힘든 결정을 내리고 그를 제거했습니다. 세계는 덕분에 더 안전하게 됐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마이크는 다른 질문자에게로 넘어갔지만 헬렌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말을 이어갔다. “감사합니다, 각하! 토론 한 번 해 보실까요?” (Thank you, Mr. President!는 50년 가까이 백악관을 취재한 헬렌 토머스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끝낼 때마다 반드시 붙이는 표현이다)

웃음이 이어졌고 대통령이 받아쳤다.
“별 말씀을요. (질문 기회를 준 것을) 후회는 안합니다. 뭐랄까, 후회 비슷한 걸 하는 거죠.”
다시 기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자 회견이 끝난 다음 헬렌 토머스의 ‘3년만의 대결’은 방송, 통신, 신문들에서 별도의 기사를 쓸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는 질문을 하는 이 할머니 기자는 3년 동안 질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통신사 기자들에게 첫 번째나 두 번째 질문 기회를 주는 것이 전통이잖아요. (UPI에서 일하다가 2000년에) 통신사를 그만 두었죠. ...아마 대통령이 내가 힘든 질문을 할 까봐 이제는 기회를 안주었던 것 같아요. 그건 그의 특권이니까요.”

헬렌의 말대로 오늘 받은 질문 기회는 그녀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것이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시절 백악관을 출입하기 시작한 헬렌은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 그리고 지금의 W 부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을 취재해 왔다. 그러나 2000년 5월 UPI 통신이 문선명 계열의 <뉴스월드>사에 흡수되면서 이 통신사를 떠나 잡지를 간행하는 <허스트 코프>사로 자리를 옮겼다. UPI란 지붕이 없어진 그녀에게 대통령은 질문의 기회를 줄 의무가 없어졌고, 헬렌은 40년 넘게 지켜온 백악관 회견장 첫 번째 줄, 자신의 자리를 지켰지만 질문 기회는 오지 않았다.

3년만의 질문 기회를 받은 헬렌은 그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고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다른 기자들에게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기도 하는 대통령이었지만 헬렌에게만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 했다. 대통령을 두 번 연임하더라도 '고작'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이지만 헬렌은 무려 45년 동안 백악관을 드나들지 않았는가?

기자들이 오늘 헬렌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던 것은 제왕적인 권력에 대한 언론의 정면 도전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헬렌은 지난 5년 동안 감추고 은폐하면서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알 권리를 빼앗은 부시 내각에 강펀치를 날렸던 것이다.

“이라크가 9/11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저는 선제공격론을 믿지 않아요. 그건 분명 국제법에 반하는 행위예요. 유엔 헌장과 제네바 협약, 뉴럼버그 조약 위반이죠. ...제 목표는 진실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든 말이죠. 그것이 기자의 목표죠. 저는 우리 기자들이 그 일에 실패했다고 봐요.”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이진숙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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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MBC iM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