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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기사의 '아, 옛날이여!'

 

시외버스 기사의 '아, 옛날이여!'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 서울과 정선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안흥장터마을을 벗어나고 있다.
ⓒ2006 박도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첫차를 타고 온다고 하여 도착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인 장터마을로 마중을 갔다. 오전 10시 5분이 도착시간인데 10시 30분이 지나도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주말도 아닌데 웬일일까?

정류장을 어슬렁거리자 안흥 택시기사가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며칠 전부터 '첫 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말인가 확인하고자 버스 매표소에 가서 물었더니 서울에서 오후 1시 차와 오후 5시 45분 막차만 다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서울에서 온 손님은 이른 아침에 동서울터미널에서 노선버스가 갑자기 없어진 것을 알고서 돌아갈 수도 없어 원주로, 거기서 택시를 타고 뒤늦게 내 집에 오셨다. 시간도 교통비도 몇 배나 더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강원도 산골이지만 그 동안은 비교적 교통이 편리했다. 정선∼서울행 시외버스가 하루에 4∼6차례 장터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이었다. 동서울에서 안흥까지는 2시간 거리로, 아침 일찍 첫 차를 타면 오전에 서울에 도착하여 웬만한 볼일은 다 보고, 막차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손님이 매우 적었기에 언제까지 이대로 운행될지 걱정스러웠다. 보통 대여섯 명이요, 어떤 날은 세 명으로 여간 미안치 않았다. 2년 남짓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만석인 날은 설날 전날 하루뿐이었다.

슬그머니 줄어든 시외버스 노선

 
▲ 시골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완행버스, 안흥 원주간을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
ⓒ2006 박도
한 달 전, 서울에서 내려오는데 기사까지 다섯 사람이었다. 마침 기사 뒷자리에 앉았더니 기사가 심심했든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강원여객 시외버스를 30년째 몰고 있다면서 초창기 버스기사 시절의 추억을 늘어놓았다.

그 무렵은 대부분 비포장으로 먼지도 뒤집어쓰고, 걸핏하면 고장으로 버스 밑으로 들어가서 고치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서울∼강릉노선은 황금노선으로 기사들의 인기는 최고였다면서 중간 정류장 밥집에 들르면 주인은 산해진미로 대접하였다고 했다.

승객조차도 짐 한 뭉치라도 더 실으려고 강냉이 묶음에 계란꾸러미 등 이런저런 뇌물로 재미가 쏠쏠했다며 '아, 옛날이여!'를 읊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노선이 없어질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라면서 그나마 당신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다행이지만 젊은 기사들이 걱정이라고 푸념을 했다.

그러면서 회사 방침이 안흥 노선은 손님이 없어 곧 줄일 계획인 모양이라고 귀띔을 했다. 이 즈음은 웬만한 이들은 모두 승용차로 서울나들이를 하기에 시외버스 승객은 대부분 노약자들뿐이라고 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정선 노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노선도 시외버스를 타보면 절반 이상 손님을 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시외버스만 아니라, 시골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시골완행 버스는 거의 텅 비어 달리고 있다. 지난해 강화도에서 시골버스를 탔더니 버스 옆에 다음과 같은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존경하는 강화군민 여러분! 강화군민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자가용 이용 증가로 대중교통의 경영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강화군의 교통발전을 위하여 대중교통을 생활화합시다."

어느 날 텅 빈 시골 완행버스 기사에게 "이렇게 손님도 없는데 운행 횟수라도 줄여야지 적자를 줄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버스기사 말이 "그러면 손님은 더 없어진다"고 했다. 그나마 타던 손님들조차도 트럭을 몰고 다니든지, 아니면 경운기라도 몰고 다닐 거라고 하면서 기름 값이 너무 싸다고 했다.

승용차를 마구 이용하는 사람들... 절제하는 사람이 아름다워

 
▲ 도쿄대학 한 연구실 어귀의 자건거들.
ⓒ2006 박도
이태 전 일본 교토 시내에 있는 도시샤(同志社) 대학을 지나다가 학생회관 앞에 늘어서 있는 1000여 대의 자전거 물결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마침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이라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였는데 지난달 다시 일본 도쿄를 가서 일본 제일의 명문 도쿄대학을 둘러보았다.

대학의 이름에 견주어 건물이 낡고 오래되었다는 점과 그날이 공휴일인데도 건물 어귀에는 자전거들이 늘어서 있는 점이었다. 나는 서울의 어느 대학 학생회관 앞에 자전거가 수십 대 늘어서 있는 걸 보지 못하였다. 도쿄 시내 한복판 거리에도 할머니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웬만한 곳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마련됨은 물론이다.

10여년 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는 자전거의 물결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핫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쭉 뻗은 각선미를 마음껏 뽐내는 광경이 아직도 삼삼하다. 중국의 베이징이나 선양의 거리에도 이른 아침부터 온통 자전거의 물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시골조차도 자전거 전용도로도 없고 인도마저 여간 위험치 않다.

워낙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라 가난의 한풀이인 양 대중교통을 외면하고, 승용차를 마구 이용해 출퇴근하면서 뻐기고 있다. 대체로 속이 비고, 철학이 없고, 과거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일수록 겉치장을 많이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덧칠하려는 경향이 짙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현직에 있었던 이태 전만 하더라도 일부 학교 선생님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학생들의 학습 공간(운동장이나 농구장)에다 버젓이 주차하고 있다. 그것이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너도나도 승용차를 가지게 되니까 기름 값이라고 벌려고 어떤 이들은 별별 무리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과도한 차량은 대기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오염시키고 있다. 주차 문제로 이웃간 싸움이 끊어지지 않고, 교통사고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 시골 산길조차도 인도가 위험하다. 차가 사람을 밀어내는 세태다.
ⓒ2006 박도
우리 나라만큼 대중교통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 워싱턴에는 시내버스가 별로 없다. 차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면 차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에는 모두에게 불편하고 불행해지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국토도 좁고 도로율도 낮은 나라에 이나마 있는 대중교통들이 적자로 인해 더 줄어들까 봐 염려스럽다.

다른 사람이야, 우리 사회야, 이 나라야, 하나밖에 없는 지구 환경이야 어찌되건 우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 세태에, 하늘의 벌이 내리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하기는 그런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에 오르는 세상이니까 쉽사리 고쳐지질 않을 듯하다.

절제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그런 사람이 멋있게 보이는 세상이라야 천민 대한민국에서 벗어나 선진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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