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보기

“배신자 낙인 찍히고, 정착은 막막”

 

“배신자 낙인 찍히고, 정착은 막막”

[한겨레] “가만 있어도 마음이 괜히 불안하고 술 한 잔 먹으면 대추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 노모도 향수병에 걸렸는지 맨날 멍하니 앉아 계시구!”

경기 평택시 대추리가 고향인 정아무개(47)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그는 세간이고 농기계고 다 놓아둔 채 가족만 데리고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웃들의 분노 어린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보상금을 14억원이나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도 뼛속 깊이 박힌 ‘수구초심’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평택시의 한 맨션에 사는 정씨는 “논두렁에서 동네 사람들과 ‘형님 아우’ 하고 사는 게 재미 있었다”며 “장마 오기 전에 대추리에 두고온 짐을 가지러 가야 하는데 …” 말끝을 흐렸다.

27가구 대면·전화 인터뷰 조사
절반이상이 60대 “이 나이에 뭘…”


미군기지 확장·이전 사업으로 대추리를 떠난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씨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지난 2~9일, 대추리에서 살다가 보상금을 받고 떠난 96가구 가운데 연락처가 파악된 61가구를 상대로 대면·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 확인됐다. 인터뷰에는 27가구가 응했고, 나머지 34가구는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27명 가운데 대부분인 25명이 수십년 태를 묻고 살아온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26명(1명은 나이 안 밝힘)의 평균 나이가 56.6살로, 절반 가량이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어서 적응 장애는 두드러졌다.

부인과 단 둘이 경기 팽성읍 우미아파트에 사는 홍창유(68)씨는 “대추리에선 노인정에 가면 할머니들이 밥도 해주고, 노인들끼리 어울려 노는 재미가 있었는데, 여기엔 그런 게 없다”며 “집에 있으면 벽 속에 갇힌 것 것 같고 밖에 나가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너무 팍팍하다”고 호소했다.

이런 정신적 고통 외에 이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큰 문제는 일자리였다. 27명의 가구주 가운데 농·축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21명(축산·직장 겸업 6명 포함)이었는데, 현재는 농업 3명, 축산업 1명으로 크게 줄었다. 또 대추리에서는 27명 가운데 1명만 실업 상태였으나, 현재는 8명의 농민이 추가로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 밖에 6명(농사 겸업 4명 포함)이었던 직장인이 8명으로 늘었으며, 3명이 날품 노동자가 됐다. 남의 논을 부치다 보상금 1억여원을 받고 나온 이아무개(70)씨는 “송탄에 있는 인력회사에 일거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공사판 일꾼이나 경비원으로도 안 받아주더라”고 말했다.

목돈 생긴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진드기’ 같은 전화질에 울화통

목돈이 생긴 걸 어떻게 알았는지 매일같이 걸려오는 ‘진드기’같은 전화도 이들을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 김아무개(60)씨는 “서울 기획부동산 업체의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며 “좋은 땅이나 상가가 있으니 사라는 전화인데 우리가 지금 그럴 기분이냐”고 말했다.

이들 27가구가 대추리를 떠난 지는 평균 넉 달 정도 됐고, 평균 보상비는 4억2113만원이었다. 보상금이 5억원을 넘은 12가구는 생활이 비교적 넉넉해 보였으나, 보상비 이외에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한 이는 별로 없었다. 주소지가 파악된 61가구 가운데 우미아파트 등 33가구가 팽성읍에, 22가구가 평택 시내에 살고 있었다. 나머지는 안성 2, 안중 1, 오산 1, 서울 2가구 등이었다. 평택/전종휘, 조혜정 유신재 기자 symbio@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기사제공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