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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어려운 'CSI' 쉽게 이해하기

 

복잡한 범죄스릴러 쉬운 감상법

[한겨레] 과학수사 이론·법의학이 기본상식
심리·행동 분석한 ‘프로파일링’ 감초
사이코패스 등 이상성격 등장 잦아


알리바이 조작이나 트릭을 밝혀내는 콜롬보의 탁월한 센스에 경탄하던 〈형사 콜롬보〉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CSI〉를 보면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유전자 검사, 레이저를 이용한 탄도 추적,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범죄 현장 재현 등 화학과 물리, 수학을 총동원한 수사 기법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게다가 2개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구성은 느긋하게 추리물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요즘의 수사물은 대체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하지만 몇 개의 개념만 미리 숙지한다면, 요즘의 수사물들은 오히려 따라가기가 쉽다. 정확하게 답이 나오는 과학의 속성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수사의 최신 이론과 법의학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다면, 모든 수사 드라마와 추리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사실 과학수사란 게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만도 아니다. 코넌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스는 신발에 묻은 흙으로 범인이 어떤 지역에서 왔는지 알아내고, 옷차림으로 계급이나 직업을 알아내는 등 과학수사의 기본을 이미 시작했던 탐정이다. 다만 디엔에이 분석이나 혈흔 감정 등으로 신원을 알아내는 방법이 그때에는 없었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신원확인 방법이 도입되고 과학수사가 중시되었다.

최근 수사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에서 강조되는 과학수사 혹은 법의학적 수사다. 미국에서 법의학적 수사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6년의 오.제이. 심슨 사건 때문이다. 아내를 죽이고 도주한 혐의로 법정에 선 심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법정에서 지문과 디엔에이, 발자국, 모발, 섬유, 혈청학 등의 증거가 제시되었다. 비록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으로 재판 과정을 보면서 ‘과학수사’가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에 시작된 범죄 드라마 〈CSI〉가 과학수사의 모든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CSI〉는 총이 인체를 파고들어가는 과정이나 뼈가 부러지는 과정, 내장이 파열되는 모습 등을 모형과 그래픽을 통하여 그대로 보여준다. 과학수사대원들이 증거를 통해 실제 범죄를 추정하는 과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한 것이다. 대중은 〈CSI〉를 통해 개별적인 증거가 어떻게 모여 범죄의 전체 윤곽을 잡아내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과학수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CSI〉 시리즈와 해군 과학수사대가 배경인 〈NCIS〉를 보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법의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만화 〈여검시관 히카루〉를 권한다.

〈CSI 라스베가스〉의 그리섬 반장은 증언이 아니라 증거를 믿는다고 말한다. 과학수사의 기본은 부정확한 누군가의 증언이 아니라,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증거에 의해 좌우된다는 신념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과학수사가 과학자와 법의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면, 흔히 ‘프로파일링’이라고 부르는 ‘범죄자 심리 분석’, ‘행동 분석’은 정신병리학자와 심리학자에 의해 시작되었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범인의 행동을 분석하는 기법이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게 된 계기는 1992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양들의 침묵〉 덕분이었다. 한니발 렉터라는 매력적인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한니발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작가인 토머스 해리스는 에프비아이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제공하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훈련과정에 참가했다. 영화 속의 렉터 박사는 에프비아이 요원을 도와 피해자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연쇄살인마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범인이 범죄 대상을 고르는 패턴이나 죽이는 도구와 방법 등을 통해서 그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프로파일링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가 많아지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수사기법이다. 프로파일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범인을 잡는 수사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와 〈인사이드〉를 보면 거의 완벽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의 프로파일링이 순간적인 직관과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와 행동 분석을 위해서도 역시 다양한 범죄의 증거와 증언들을 수집해야 한다.

과거에는 범죄의 이유가 흔히 돈과 이성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죽으면 가장 먼저 가족이나 연인을 의심하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다르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을 죽이거나 기괴한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검은 집〉에 나오는 사이코패스가 대표적인 예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태연하게 타인을 이용하거나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나 정서적 공감 등이 없기 때문에 잔혹한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른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버젓한 직업을 가진 경우도 많다. 영화 〈공공의 적〉이나 〈아메리칸 사이코〉에는 이른바 여피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범죄물만이 아니라 〈스크림〉 등 난도질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들도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다.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범죄물에 흔히 등장하는 것으로 다중인격과 사이코메트리도 있다. 다중인격은 한 사람의 내면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을 말한다. 평소에는 유순한 사람이 인격이 바뀌면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도 일종의 다중인격이라 할 수 있고, 가장 탁월한 다중인격 묘사 영화로는 〈아이덴티티〉, 만화로는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를 들 수 있다.

드라마 〈마왕〉에 나왔던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을 만지면 그것의 역사를 모두 알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힘이지만 의외로 수사물에도 많이 등장한다. 만화 〈미스터리극장 에지〉(복간된 만화의 제목은 ‘사이코메트러 에지’)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진 〈데드 존〉이 대표적이다.




과학수사를 알고 싶다면 봐야 할 책

■ <연쇄살인범 파일〉(해럴드 세터 지음)=역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이 행한 범죄 정보와 함께 연쇄살인의 기원과 사회문화적 현상까지 모든 것을 모은 책. 연쇄살인이라는 ‘행동’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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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파일링〉 〈살인의 현장〉(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마인드헌터〉(마크 올셰이커 지음)=법의학과 과학수사 그리고 프로파일링 등 현재 세계 각국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범죄 수사 과정을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만날 수 있는 개론서. 〈CSI〉를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 한다.

■ 〈진단명: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 지음)=우리의 다정한 이웃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가장 냉혹하고 충동적인 살인자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론서. 보통의 범죄자와 사이코패스가 왜 다르고, 더욱 위험한지 알려준다.


■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대니얼 키스 지음)=〈아이덴티티〉 〈기담〉 등 수많은 영화에서 등장한 ‘다중인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책. 1977년 납치와 강간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다중인격과 정신병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던 빌리 밀리건의 인생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김봉석/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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