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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 아프간 NGO 1호 굿네이버스 활동가들…선교는 불가능, 얼마나 위험한지 한국은 잘 모른다

▣ 진행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정리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인질들의 석방 협상을 누구보다 초조하게 주목하는 이들은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다. 현지 구호단체들은 대부분 기독교적 기반을 지니고 있으나, 선교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2002년 초부터 의료·교육 활동을 벌여온 ‘굿네이버스’ 국제협력본부 이병희 과장(33·2002년 2월~2006년 8월 체류)과 그의 후임으로 이번 피랍 며칠 전까지 아프간에 머물렀던 고성훈 과장(32·2006년 7월~2007년 7월 체류)을 만나, 아프간 구호활동 현황과 정세, 피랍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서울 청파동 굿네이버스 본부에서 7월27일 이뤄졌다.

평화대행진 문제로 발칵 뒤집혀

사회: 분쟁지역에서는 선교활동과 구호활동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아프간 상황은 어떤가.

이병희(이하 이): 아프간에서는 선교를 못한다. 수도 카불을 벗어나면 외국인이 자기네 땅을 밟는 것조차 모욕으로 느끼는 근본주의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 많다. 꼭 그것이 아니라도 현재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단체의 목적은 구호이지 선교가 아니다.

고성훈(이하 고): 한 외국 선교단체가 있는데 산하 NGO 활동가가 현지에서 한두 마디 전도 발언을 했다고 바로 되돌려보낸 일이 있다. 사랑의 실천이 선교이다, 이게 룰이다.

사회: 이 과장은 한국인 아프간 NGO 1호라고 들었다. 어떤 일을 했나.

이: 2002년 2월 정금선 부회장과 긴급구호를 나가며, 한국인으론 처음 NGO 등록을 했다. 탈레반이 카불에서 물러난 상태였으나 완전히 초토화돼 있었다. 공항 천장도 없고 활주로 옆에 비행기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카불에 머물면서 현지인 직원을 뽑아 활동을 시작했다. 긴급구호 때는 식량과 땔감 등 급박한 물자지원을 했고, 구호활동 초반에는 교육사업에 주력했다. 그 뒤 보건소와 병원, 여성센터 등을 세웠다. 7개 시설에 현지인 75명이 활동한다.

사회: 구호활동의 원칙이 있는가.

이: 구호활동은 그 자체에 위험성이 내재돼 있다. 치안대비책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 단체의 파견 인력은 두 명. 최소 인원이다. 눈에 띄면 안 되므로 현지인을 앞세워야 한다. 또 현지 단체들을 아우르는 코디네이션팀을 통해 활동이 중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사회: 지난해 여름 한국 교회의 아프간 평화대행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분위기는 어땠나.

이: 현지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중단을 촉구했다. 명백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즈음 아프간에 온 고성훈 과장이 한국에서는 강행하려 한다기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급하게 사업장 문을 닫았다.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탈레반이 뿌리는 선전물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외국인을 태우고 다니는 운전사, 너희 목은 우리가 갖고 가겠다!” 실제 탈레반 무장세력은 외국인을 돕는 현지인 가이드나 운전사를 붙잡으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고: 당시는 탈레반 쪽으로 힘이 모아지고 있을 때였다. 2006년만 해도 치안이 좋다는 카불에서조차 하루 두세 건의 테러가 일어났다. 남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가즈니주도 경찰청장을 살해하는 교전 끝에 탈레반이 장악했다. 여름부터 라마단 기간까지가 테러율이 가장 높을 때다. 그런데도 천여 명이 그 기간에 들어와, 공항에서 몸싸움을 한 것이다.

‘기독교 탈레반’ 하면 금방 알아들어

사회: 그 뒤 상황이 악화됐나?

이: <카불 타임스>라는 신문은 앞뒤 전면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해를 가하려 한다” “동양으로부터의 침공” 같은 표현을 썼다. 한 단체가 세우던 고아원은 건축 막바지였는데 중단될 위험에 처했다. 몰빅(종교지도자) 200여 명이 와서 데모도 했다. 현지 구호단체들이 그 단체는 종교와 관계없다고 사정사정해야 했다.

사회: 굿네이버스도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다. 현지인들과 종교적인 얘기는 하지 않나.

이: 아프간에서는 누구도 너의 종교가 뭐냐고 질문하지 않는다. 굉장히 공격적인 질문이라서 예의가 아니라고 여긴다. 너희 단체는 어떠냐,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 보통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신론자를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 생각 없는 놈이라고. 나와 4년을 지낸 현지인들은 장난을 걸고는 “아멘” 하기도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활동하는 데 해가 되지는 않았다. 구호활동이라는 목적이 분명한 단체라서 그렇다.

사회: 현지인들도 탈레반의 교조성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나?

이: 누가 뭐에 집착하면 “탈레반 같다”고들 한다. 문제를 일으킨 기독교인에 대해 ‘기독교 탈레반’이라고 말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탈레반의 속성을 잘 아는 것이다. 탈레반은 집권 시기 정부 회의도 책상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앉아서 했다. 모두가 평등하다면서. 부르카의 망 넓이를 정하는 데도 율법을 동원하는 이들이다.

사회: 탈레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고: 미국과 카불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서 그렇다. 미군이 탈레반을 몰아낸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별로 도움되는 것이 없고, 치안을 지켜준다고 하나 무력을 통한 게 아닌가. 미군은 기본적으로 아주 거칠게 차를 몬다. 뒤차가 테러를 당하면 무단 사격을 해버린다. 무고한 시민들이 많이 죽었다. 복합적으로 실망하는 것이다. 카불 외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들어와 치안이 더 안정된 곳도 많다. 가담까지는 아니라도 탈레반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허용하는 양상이다.

사회: 치안과 함께 재건 복구가 미군의 주요 명분인데 어느 정도 이뤄졌나?

이: 많은 도시가 90% 이상 마비된 상태였고, 카불도 60% 이상 망가져 있었다. 미군 침공 전에도 내전이 심했으니까.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1년 만에 도시 인구가 200% 늘었다. 파악도 안 될 정도다. 카불에는 건물이 많이 들어섰지만 균형 있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정부 장·차관이 끈을 대고 있는 지역에는 펀드가 들어갔다. 하지만 가즈니 같은 곳은 전혀 개발이 안 됐다. 그래서인지 외국인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피랍자들 탄 버스 보고 화가 났다

사회: 현재 아프간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고: 여성 쪽. 아직도 집 밖으로 잘 못 나온다. 옛 소련 치하에서는 카불 시내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볼 수 있었다. 탈레반이 장악하면서 여성들이 겪은 고초가 가장 크다. 부의 상징이던 부르카를 서민 여성들은 오히려 쓰고 다니고 싶어했는데, 탈레반 때부터 억압의 상징이 됐다.

사회: 피랍이 벌어진 카불~칸다하르 도로가 치안이 아주 안 좋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

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국 펀드로 낸 도로로 알고 있다. 미군은 군사 이동이 편해지고 교통량이 늘면 치안이 좋아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딴판이다. 탈레반 출몰이 더 잦아졌다. 자주 내려와 통행료를 받는다. 지도를 보면 도로 주변은 사막이다. 나무도 풀도 없지만 좀 가면 마을이 있다. 길 옆에 납작 엎드리면 보이지 않는다. 남쪽 칸다하르의 탈레반이 카불로 올라오기 더 쉬워져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사회: 탈레반을 비롯한 무장세력들이 누굴 표적으로 삼는지의 기준이 있나.

고: 탈레반이 테러조직으로 흩어지면서 각개약진한다. 자체 자금 조달을 해야 하니까 피해자도 천차만별이다. 우리도 카불을 벗어난 활동을 사실상 엄두도 못 냈다.

사회: 이번에 피랍된 단기선교팀은 그런 사실을 몰랐을까.

이: 샘물교회에서 온 분들이야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 가이드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아프간이 어느 정도 위험한지 한국에서는 잘 모른다. 현지 활동가가 자기 기관을 통해 오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줘야 한다. 하지만 치안에 대한 시각이 다른 것 같다.

사회: 꽤 에둘러 표현하는데, 피랍된 이들 중 희생자가 생겨 조심스럽겠지만, 현지에서 활동하거나 이동할 때 지켜야 할 점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고: 우리에게 칸다하르에 가라고 한다면 안 간다. 꼭 가야 한다면 비행기를 타겠지. 혹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현지 사업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기 봉사단을 받지 않는다.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이들만 가려 받는다. 일상 활동에서도 제약이 많다. 돈이 갑자기 없어졌다 해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 직원들이 다 잡혀가 치도곤을 당한다. 그런데 지부장이 납치라도 당하면, 직원은 물론 가족들까지 (탈레반에 연루돼 있나) 큰 고초를 겪는다. 그래서 현지 직원들이 오히려 나를 혼자 다니게 두지 않는다. 집에서 나와 보건소에 갈 때에도 마스크를 쓰고 현지인들처럼 옷을 입고 늘 현지인들과 같이 움직인다.

사회: 피랍된 이들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고: 그 위험한 길을 많은 인원이 움직인 게 결정적으로 위험했다. 처음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언론에 보도된 버스를 보고는 화가 났다. 카불 시내에서도 보기 힘든 눈에 띄는 고급 차량이었다. 그런 차량으로 위험한 시간대에 위험한 길을 이동한 거다.

이번 사건으로 5년 사업 다 접어야

사회: 그 밖의 안전수칙이 있다면.

고: 서남아시아 사람들은 보수적이라 새로운 것에 민감하다. 작은 문제만 생겨도 빙 둘러싸서 관여하고 싶어한다. 절대 도드라지면 안 된다. 차량 이동 때에는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경찰이 세우면 무조건 서야 한다. 간혹 강도인가 겁먹고 액셀을 밟다간 바로 총을 맞을 수 있다. 또 낮에도 차가 서 있으면 위험하다. 바퀴를 갈 때 어디선가 나타나서 도와주고는 강도로 돌변할 수 있다. 스스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도 운전사를 제외하고는 23명 전원이 한국인이었다.

사회: 현지 가이드가 3명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정확한 소속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고: 한 기독교 선교단체를 통해 비자를 받은 것은 확인됐는데, 그 단체 대표가 자기네 소속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비자를 받으려면 초청장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유의 요청이 들어오지만 거절한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 피랍 문제를 어떻게 봤나.

고: 피랍 소식을 들었을 때 탈레반이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탈레반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한다. 하지만 초기 요구도 우왕좌왕했고, 일관된 협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탈레반이 했다 해도 돌발적인 것 같다. 최대 규모의 인질이라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렇게 많은 외국인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일 자체가 없으니까.

이: 탈레반은 이탈리아 인질과 수감자를 1 대 5로 맞교환하며 득을 봤다. 그런 중에 갑자기 자기들이 장악하는 길에 대형 버스가 오고 외국인이 잔뜩 타고 있다면? 큰 건수가 되는 것이다.

사회: 이번 사건의 파장은.

이: 이 일로 아프간 교민들 다 철수하라고 하는데, 속이 탄다. 우리 단체만 해도 8월에 비뇨기 쪽 장애아 100명을 수술할 계획이 잡혀 있었다. 이게 다 취소됐다. 지난 5년 동안 기반을 닦은 사업을 다 접고 나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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