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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半값이면 충분하다] 가격 혁신을 위한 노력

[한우 半값이면 충분하다] 가격 혁신을 위한 노력



영월 다하누촌에서 판매하는 한우를 들고 있는 최계경 회장.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다하누촌의 메뉴 중 하나인 ‘한우 황소 반마리(300g, 8000원)’


다하누촌은 ① 정육점에서 손질한 고기를 ②소비자들이 직접 산 후 ③식당으로 가서 ④ 테이블 세팅비를 지불하고 먹는 구조로 돼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기자)


정육점을 돌며 한우 유통 실태를 점검하는 한우유통감시단원들. (photo 전국한우협회)


음식점, 300g 8000원! “10분의 1 값에 팔아도 남아요”
유통단계 3분의 1로 줄인 NH그룹 최계경 회장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일대는 ‘섶다리마을’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마을 개울을 가로질러 섶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가 놓였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48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이곳 주민 800여명은 대개 할머니, 할아버지다. 도내에서도 대표적인 인구 유출 지역이다.
그런데 지난 8월 이후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적하기 짝이 없던 이곳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현재 주천면을 찾는 인구는 평일 2000명, 주말 4000명에 이른다. 공터는 대형 주차장으로 변했고 동네에 딱 하나 있던 주유소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들이 주천면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단 하나, ‘값싼 한우를 맛보기 위해서’다.
최계경(43) NH그룹 회장은 주천면을 관광 명소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8월 13일 이곳에 ‘다하누(多韓牛)촌’이라는 한우 프랜차이즈 6개 점포를 오픈했다. 다하누촌은 사육과 도축, 판매 등 한우 유통의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해 유통 마진을 최소화한 한우 판매점. “시중 식당에서 판매하는 한우는 약 400%의 유통 마진이 포함된 반면, 우리는 도매에 붙는 15%만 마진율로 책정한다”는 게 다하누촌 측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한우 가격은 황소 등심 300g 기준 8000원이다. 120g에 4만~5만원을 호가하는 서울 유명 음식점에 비해 10분의 1 이상 저렴하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해 식당으로 이동, 테이블 세팅비(1인당  2500원)를 내고 식사를 하는 구조. 성인 4명이 가도 5만원 안팎이면 든든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품질도 나쁘지 않다. 다하누촌이 도축, 판매하는 한우는 2등급 이상 거세우. 산지 시세(1㎏당 8000원)를 약간 웃도는 가격에 영월, 평창, 횡성 등지에서 공수해온 소들이다. 최 회장은 “120g에 3만2000~4만원 받는 횡성 한우나 우리가 파는 소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 최 회장과 주천면, 그리고 한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3남4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교(주천농고) 졸업 후 곧장 상경,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칼잡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소 한 마리를 45분 만에 발라내는’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1980년대 말 칼을 놓고 독산동에 정육점을 열었다. 정육점의 성공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했고 20여년 만에 육가공회사와 프랜차이즈업을 비롯, 4개 부문 7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 대표가 됐다.
당초 7개였던 다하누촌 가맹점 수는 2개월이 채 안 된 현재 17개(식당 14개, 정육점 3개)로 늘어났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48억원. 그러나 최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마을 전체에 ‘다하누촌’ 간판을 단 업소를 60개 만들어 월 매출 2000억원을 올리겠다는 것이 그의 1차 목표. 그 이후에는 인구 250만명 이상 되는 50개 도시에 월 매출 100억원 이상의 대형 식당을 내겠다는 중장기 계획까지 이미 세워놓았다.

최 회장이 다하누촌 사업을 시작한 시기가 올 8월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미 FTA 타결 이후 뼈 있는 소고기가 수입되기 시작하면 당장 시중 한우 값은 30% 폭락할 겁니다. 벌써 일부 한우 농가들은 ‘더 이상 소 기르지 않겠다’며 갖고 있던 소를 처분하는 추세예요.”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이달 말이면 한우 농가들이 들고일어나 대규모 시위를 일으킬 것”이라며 “그때 가면 한우는 이미 가격 경쟁력을 잃을 뿐 아니라 2년 내 한우 시장이 완전히 무너져 회복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의 사업 모델에는 ‘하루 빨리 한우의 경쟁력을 되찾을 대안을 마련하자’는 절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지금은 안정 궤도에 올랐지만 사업 준비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매장으로 찾아온 인근 도시 정육업자들에게 멱살 잡히기 일쑤였죠. 시비 끝에 파출소에도 여러 번 끌려갔습니다.” 식당 주인, 도매상 등 500여명이 주천면에 몰려와 식사를 마치곤 “이거 한우 아니다. 젖소다!” 외치는 통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제가 식당에 나타나니 줄잡아 100개는 될 법한 휴대폰이 번쩍, 하더군요. ‘공공의 적’인 절 찍어 기억하겠다는 거겠지요.” 그러나 최 회장은 그런 무용담(?)을 들려주면서도 태연했다. “소고기 시장이 영원히 개방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고가 정책이 맞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죠. 흐름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는 “내 사업 모델을 모방한 아류가 하루 빨리 많아져야 한우 시장이 산다”고 큰소리쳤다.
다하누촌의 사업 모델을 ‘정유 회사가 운전자에게 직접 기름을 파는 격’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장사가 아무리 잘돼도 두 가지는 반드시 고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나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 자신의 소고기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기 가격을 올려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거품만 제거하면 한우 시장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더 열심히 뛰어 ‘다하누’를 한우 대표 브랜드로 키울 테니 두고 보십시오.”
생산자, “가짜·섞어팔기 폐해 우리가 막아요”
품질관리 직접 나선 축산농·소비자 모임 ‘한우유통감시단’

한우유통감시단은 한우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해 축산 농가와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단체. 국내 한우 생산자단체의 대표격인 전국한우협회가 지난 2005년 10월 발족했다. 협회에 소속된 전국 9개 도지회를 기본 단위로 5명 안팎의 감시단원이 한우 유통점(정육점 포함)을 순회하며 불법유통 실태를 조사·감시하는 게 주요 업무다. 단원은 실제 한우 생산 농민이나 소비자단체 회원 중 추천을 받아 구성된다. 소정의 교육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는 이들은 연중 평균 120일 가량 2인 1조로 구역 내 점포를 돌며 활동하게 된다.
전국한우협회는 일명 ‘한우 자조금’으로 운영되는 민간 단체다. 축산 농가들이 한우 한 마리를 도축할 때마다 2만원씩의 자조금(自助金)을 내고, 여기에 정부가 일정분의 보조금을 더해 활동비를 충당한다. 강제력이 없다 보니 감시 활동에도 여러 모로 제약이 많다. 우선 가짜 한우를 현장 적발하려면 거래명세표나 등급판정서 등 관련 서류를 확인하거나 냉장(냉동)고를 반드시 점검해야 하지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의 저항도 심한 편이다. 이 때문에 협회는 되도록 지자체 혹은 농림부 산하 농산물품질관리원 등의 협조를 구해 합동단속의 형태로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우유통감시단 활동을 총괄하는 박선빈 차장은 “값싼 젖소나 육우, 수입산 소고기가 한우로 둔갑해 팔리는 사태는 한우 농가에도 치명적이지만 결국 소비자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힌다”고 경고한다. 싸게 들여온 것은 싸게, 조금 더 공을 들인 것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투명화해야 한우 가격도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회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 차장은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했다. “한우 유통 구조를 바로잡는 일은 정부가 나서서 해줘야 합니다. 현재는 적극적인 단속은커녕 지방자치제 영향으로 표를 의식한 ‘솜방망이식 처벌’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는 “현재 과징금 부과에 그치도록 돼 있는 처벌 규정을 영업정지 등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우 음식점 감시 활동도 본격화돼야 한다는 게 업계 측 주장. 가장 많은 유통 마진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음식점의 한우 유통 실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해야 ‘한우=비싼 고기’라는 인식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현재 협회에서는 ‘한우 생산자들이 잇속을 차리려 한다’는 비판을 의식, 감시단 활동 영역을 정육점 이상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현재 몇몇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식품위생감시원’ 제도를 확대, 한우 가격과 유통 관련 감시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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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위클리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