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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왜 석유회사 폭리에 침묵하나

 

언론은 왜 석유회사 폭리에 침묵하나

[경제뉴스 톺아읽기]유류세 인하 부르짖으면서 석유회사 담합구조에는 무관심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머지 않아 1배럴에 100달러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29일 아침, 거의 모든 조간신문이 국제유가 급등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유류세 인하를 주문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유류세 인하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제 유가가 소비자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나 유류세 인하의 효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의 인기 영합주의, 이른바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해 왔던 언론이 지극히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유류세 인하 주장은 포퓰리즘 아닌가

▲ 국제 유가 추이 / KNOC.
언론의 주장에는 당장 줄어드는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이 없다. 국제유가가 오르고 소비자 가격이 덩달아 뛰어오르지만 석유회사들은 여전히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유회사들은 올해 들어 오히려 이익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소비자 가격을 올려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현실 인식과 해법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서울신문은 19면 <달러 굴욕에 기업도 운다>에서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의 말을 인용, "유류세 비중이 기름값의 58%"라며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51.9%)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27일 <국민들 고유가 속타는데 재경부 대책없이 팔짱만>에서는 "재정경제부가 뾰족한 대책없이 시장원리로 해결한다는 입장만 되풀이 해 비난여론이 높다"고 질타했다.

▲ 서울신문 10월23일 13면.
다른 신문들도 논조는 비슷하다.

"유류세 낮춰 가계 부담 덜어주자"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가계와 기업의 허리가 휘건 말건 20조원의 세금만 꼬박꼬박 거두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기름값의 절반이 넘는 유류세를 내려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지금 석유는 생필품이 돼 있다"면서 "값이 오른다고 쌀을 안 살 수 없듯이 고유가라고 해서 기름을 안 쓸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높은 세금을 매김으로써 기름 수요를 억제한다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10월29일 사설.
동아일보는 연세대 김정식 교수의 말을 인용, "외부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는 등 경제운용을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며 "내년에 들어서는 새로운 정부는 기업 친화적으로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치고 나가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25일자에 <유류세 인하가 고유가 해법>이라는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의 시론을 실었다. 이 칼럼에서 이 연구원은 "고유가로 골병드는 건 힘없는 서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도 22일 사설에서 "기름으로 한해 23조원이 넘는 세수를 챙기는 재미에 푹 빠진 정부는 소비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며 국민 탓만 한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국일보는 "지금이야말로 유류세를 인하해 국민들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의 도리"라고 지적했다.

내일신문은 24일 <유가 100달러 코앞인데 손 놓고 있는 정부>에서 최근의 유류세 인하 논쟁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 내일신문 10월24일 10면.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초과세수가 있고 유류세 인하에 따른 생산유발효과까지 고려하면 유류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는 기우일 수 있다"며 "국제유가가 안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유류세를 10% 인하하고 서민 중산층에게는 20%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송영길 의원도 “향후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서라도 국민들의 유류세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경부의 입장은 아직 확고해 보인다. 재경부는 "2004년부터 올해까지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11.8%로, 51%인 미국이나 37.2%인 캐나다, 19.3%인 프랑스 등에 비해 낮다"면서 "유류세를 10% 인하하면 세수가 1조9000억원 줄어드는 반면 유류가격은 주유소별로 자율화돼 세율이 인하돼도 유통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언론이 내놓은 이런 단편적인 해법은 유류세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유류세 세율은 7년 전과 변함 없다

올해 2분기 기준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1532원이다. 이 가운데 공장도 가격은 593원, 여기에 교통세가 정액으로 526원 붙는다. 또 교육세가 교통세의 15%인 79원, 주행세가 26.5%인 139원, 부가세는 최종 소비자가격의 10%인 139원이다. 세금이 모두 883원, 전체 소비자가격의 57.6%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교통세는 7월1일 기준으로 2002년 1리터에 586원에서 2003년에는 572원으로, 2004년에는 545원, 2005년에는 535원으로 계속 줄이는 추세다. 지난해는 526원, 올해는 505원으로 줄었다. 교육세는 지난 7년 동안 15%를 유지했고 주행세는 11.5%에서 32.5%로 올랐다.

전체적으로 교통세는 줄었지만 주행세가 크게 늘어났다. 주행세는 2001년 67.62원에서 올해는 164.13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전체 유류세를 계산해보면 2001년의 경우 1리터에 743.82원, 올해는 744.875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전체 유류세 징수액은 크게 늘어났다. 유류세는 17조825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3조5106억원으로 올해는 25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율은 그대로인데 세수는 늘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석유 소비량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늘어난 세수의 원인은 교통세나 주행세, 교육세가 아니라 상당부분 부가가치세 탓이다. 국제유가가 오른 탓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유회사들이 소비자 가격을 올렸고 부가가치세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2002년 12월 휘발유 가격이 1286.66원, 이 가운데 부가가치세는 128원이었다. 올해 10월 가격은 1556.5원인데 이 가운데 부가가치세는 155원이 된다.

정유회사들 폭리 구조에는 모두 침묵

정유회사들이 유통마진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산업자원부 고시가격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휘발유 1리터의 공장도 가격은 542원, 여기에 세금이 878원 붙어 소비자가격은 1477원이 됐다. 업계의 유통마진은 57원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의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공장도 가격은 506원, 유류세를 제하고 나면 실제 유통마진은 93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회사들이 유통 마진을 부풀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진 의원은 휘발유 가격 거품이 올해 상반기에만 1870억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주유소에 자신들의 유통마진과 비용 등을 모두 책정한 적정 공장도가격으로 판매해놓고서 정부에는 10%이상 부풀린 가격을 보고하고 있다"면서 "부풀려진 세전공장도가격을 토대로 정부가 유류세를 부과하고 주유소가 추가마진을 챙김으로써 소비자인 국민들은 기름값 바가지는 물론, 유류세도 추가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진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정유업체들은 정부의 묵인 내지 비호 아래 기름값을 국제유가 인상분 이상으로 부풀려 왔고 정부는 정유업계의 폭리행태를 방치하고 부가가치세를 챙겨왔다.

서울증권이 분석한 국내 주요 정유업체들 정제 마진 추이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유가가 급등했던 2004년 이후 주요 정유업체들의 마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 국내 주요 정유업체 정제 마진 추이 / 서울증권.
국제 정제마진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 그래프는 소비자가격의 결정권을 정유회사들이 쥐고 있다는 증거다. 붉은색 그래프가 올해 정제마진이다.

▲ 년도별 국제 정제마진 추이.


매일경제는 19일 <유류세 내려도 기름소비 안 는다>에서 "원유값이 급등하는 시기에 이미 휘발유에 부과된 높은 세금이 오히려 소비 감소 효과를 상쇄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온라인에만 실렸을 뿐 지면에는 실리지 않았다.

매경은 "휘발유 공장도가격이 600원에서 1200원으로 두 배 상승했다고 하자. 세금이 없었다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휘발유 가격 인상폭은 두 배가 된다"면서 "하지만 유류세로 인해 국제 휘발유 가격이 두 배 올라도 국내 휘발유 소비자가격 상승률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매경의 주장은 유류세 인하를 뒷받침하는 논리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유류세가 소비자 가격의 핵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유류세 절감 말고도 서민들 부담 저감 대책 많아"

환경정의연대는 26일 성명을 발표하고 "서민 부담 저감을 위해 환경을 희생시키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했다. 환경정의는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걱정된다면 생계용 차량에 대한 유류세 환급이나 대중교통확대 및 기반 편의 시설 확충 등 환경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내놓을 수 있는 대책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정의는 "또한 정유사들의 불합리한 가격 구조가 유류가격의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환경정의연대의 주장은 어느 언론에도 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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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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