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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펌]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글

1. 훈민정음과 한글은 다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스물여덟글자로, 첫소리글자 17개와 가운뎃소리글자 11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글자들을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말소리를 모두 적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글자를 말한다.

동국대학교 변 정용박사가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수열과 조합이라는 수학 공식으로 소리글자의 숫자를 계산하여 보니 약 400억 개의 소리글자가 훈민정음(訓民正音) 속에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소리글자라면 가히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는 모두 표기하고도 남을 정도로 우수한 소리과학이 바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글은 1930년대에 친일파의 소굴인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이 희승과 최 현배 등 친일파 학자들이 조선 총독부의 감시 아래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19개의 첫소리글자와 21개의 가운뎃소리글자 도합 40개의 글자만을 사용하도록 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망가뜨려놓고 이 글자의 이름을 ‘한글’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세종대왕의 창제정신을 말살시키고 만신창이(滿身瘡痍)로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한글’이라는 글자이다.

세종대왕은 앞으로 우리말에 없는 새로운 말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다면 병서(竝書)라는 규칙을 활용하여 쓰도록 비상조치를 마련하여 놓았는데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이러한 우수한 과학성을 알아차린 일본인 학자 오꾸라 신뻬이(小倉眞平)가 일본글자인 가나(五十音)보다 못한 글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을 은폐하고 40개의 자모만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가해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 빌린 말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말조차 올바르게 표기할 수 없는 글자로 전락시킨 것이 바로 ‘한글’이라는 글자이다.

 

2. 외래어(?)라는 것

외래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이다.

‘외래어(?)’라는 학술용어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친일파 학자들이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으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면서 도입한 일본 국문학의 학술용어로서 일제의 잔재이며 우리말로는 빌린 말, 문자(文字)로는 차용어(借用語)라고 바꾸어야할 용어이다.

이 ‘외래어(?)’라는 학술용어의 본고장인 일본 국문학계에서는 ‘외래어(?)’를 자기네 말이 아니라 외국어(外國語)로 정의하고 있고 북한 국문학계에서조차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는데 반하여 유독 우리 국문학계에서만 우리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권위 있는 <겐시엔(廣辭苑)>이라는 일본어 사전에 ‘외래어(?)’에 대한 해설을 살펴보도록 한다.

 

外來語(がいらいご) : 外國語(がいこくご)で, 國語(こくご)に

                   用(もち)いるようになった 語(ご). (398쪽 참조)

 

이것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외래어 : 외국어로서, 국어에 사용하도록 된 낱말.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외래어(?)’라는 어휘의 대전제(大前提)는 <外國語で(외국어이며)>로 일본 국문학계에서는 ‘외래어(?)’를 자기네 말이 아니라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어에서 자기네 말처럼 쓰고 있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는 외국어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코너킥’은 외국어이므로 ice cream은 ‘어름 보숭이’로, corner kick은 ‘모서리 차기’ 등등 우리말로 순화하여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스크림’, ‘코너킥’ 등으로 쓰면서 이것을 우리말이라고 하고 있으니 북한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주체성을 상실한 아주 극심한 사대사상(事大思想)의 나락에 빠져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문학계에서 ‘외래어(?)’를 우리말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외래어(?)와 외국어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base라는 영어발음은 [베이스]인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 따라 표기하면 이것 역시 ‘베이스’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베이스]라고 말하였다면 그 말소리는 영어일까 아니면 우리말일까 하는 것을 구분 지을 수가 없다.

‘뉴스’가 우리말인가? ‘새 소식’이 우리말인가?

우리 국문학계가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새 소식’이 우리말이므로 이것을 사용하라고 언중들을 지도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뉴스’도 우리말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에 ‘뉴스’라는 어휘를 쓰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적기만 그것이 바로 우리말이 되므로 외국어의 말소리가 곧 우리말로 둔갑해버리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우리말은 모두 외국어로 대치될 것이다.

나랏말을 융성 발전시켜야할 위치에 있는 국립국어원장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한국어는 우리 집 안방에서나 쓰는 언어로 전락할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발언을 하게 된 원인도 바로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며 이것들을 우리말이라고 인식하는 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저 유명한 ‘오렌지’발언 사건을 상기해면 그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과 국문학계에서는 ‘오렌지’는 우리말이라고 벌떼처럼 아우성을 치며 야단법석을 친 적이 있다.

‘오렌지’라는 말은 영어 orange의 일본 외래어인 ‘オレンジ(오렌지)’를 이르는 말인데 이것은 일제 때부터 사용해 오던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렌지’는 일제의 잔재인 것인데 이러한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면서 마치 우리말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외래어 표기법> 제5항 때문이다,

제5항의 규정을 보면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일제의 잔재이거나 또한 아무리 잘못된 외래어(?)라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ニュス(뉴스)나 オレンジ(오렌지)와 같은 일제의 잔재가 계속 사용되면서 이것이 일본말이 아니라 우리말로 인식되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비단 ice cream이나 corner kick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바꾸어 놓기만 하면 우리말이 된다는 안일에 빠져들게 하며 민족의 주체성을 망각하도록 만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빌린 말이란 banana와 같이 우리말에 없는 것을 부득이 하게 그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적어서 마치 우리말처럼 써야하는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꼭 써야만 할 경우에는 원산지의 발음을 살려서 [버낸어]와 같이 그 표기법을 통일하자는데 <빌린 말 표기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논문집에서 김 세중이라는 사람은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말이니 만큼 외국어일 때의 발음을 될 수 있는 대로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정신이 외국어 발음을 될 수 있는 대로 가깝게 표기하자는 것이다.”(108쪽 참조)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정신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summer나 badge와 같은 영어의 발음은 [썸멀]와 [밷쥐]이다.

그런데 이것을 [서머]나 [배지]와 같이 실로 엉뚱한 발음으로 표기해 놓고 그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썸멀]나 [밷쥐]는 영어이고 [서머]나 [배지]는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졸지에 “여름”과 “휘장”이라는 우리말은 뒷전으로 밀리고 [서머]와 [배지]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바나나”라는 표기도 “バナナ(바나나)”라는 일제의 잔재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빌린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이다.

 

3. 새로운 글자가 필요한 이유.

빌린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는 그 표기가 정확해야 하며, 그 표기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글자가 발전해야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외국어들이 성난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 말들 속에는 우리 말소리에 없는 소리가 많이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현행 ‘한글’이라는 글자로는 그 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여 우리 말글살이에 커다란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 전에 중앙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김 영봉교수는 조선일보 아침논단에서 ‘패션(fashion)의 피(p)나 아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필이 꽂혔다. 팬에게 감사한다. 포크송을 부르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사람들이 약(pill)에 취해서 냄비(pan)에게 감사하고 돼지고기(pork) 노래를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하면서 일상을 이렇게 듣고 보고 말하며 보내는 아이들이 영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하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이런 불량품이 아니었을 것이니 제발 f자 만이라도 표기할 수 있도록 하자고 이 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의한 적이 있다.

풍자적인 여담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집신 신사와 게다(げた) 신사가 영국 어느 고급 음식점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다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모두 삼지창(fork)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게다(げた) 신사가 시중드는 사람(waiter)을 불러서 “쁘리즈, 부링구 미 아 후오구.”하니까 앞에 앉아있던 집신 신사가 속으로 ‘그것도 영어라고 하나’ 생각하면서 제법 거만한 태도로 “플리즈, 브링 미 어 포크.”라고 말하며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자 시중드는 사람은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조금 있으니 그 시중드는 사람이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큼직한 접시에 돼지고기를 담아들고 와서는 게다(げた) 신사에게는 삼지창을 건네주고, 집신 신사 앞에는 돼지고기 접시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이 풍자극을 음미해 보아도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이 모순덩어리인가를 알 수 있지 않을 까?

 

지금 세계는 전자통신망의 발달로 수십 초 안에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정확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체인 글자의 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정책당국자들이나 국문학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일에 빠져 있다.

오로지 친일파들이 조선 총독부의 감시 아래에서 만들어 놓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외래어 표기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떠받들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말살하고 소위 ‘한글’이라는 이름 아래 40개의 자모만을 쓰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우리말글살이에 커다란 불편을 초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file, fan, vase 등등과 같은 영어를 ‘파일’, ‘팬’, ‘베이스’로 표기하고 발음해야하니까 서양 사람들은 pile, pan, base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노출시키면서 소리 과학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하잘 것 없는 글자로 인식되도록 만들고 있으며 우리들의 말글살이에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불편을 해소하기위해서는 새로운 글자가 필요한데 그 방법은

현행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폐기하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살려서 현실에 맞는 우리말 맞춤법과 빌린 말 표기법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4. 새로운 글자의 선정방법

지금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에 따라 여러 연구가들이 새로운 글자 보급을 위해서 무척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일관된 공통점은 세종대왕을 존경하고는 있지만 막상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대해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 문외한들이다.

30년을 넘게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연구하였다는 어느 노학자(老學者)는 “凡범字자必필合합而이成성音음”이라는, 즉 “모든 글자는 합해져야 소리를 이룬다.”라고 하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과,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의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합자해(合字解)에서 언급된 “初초中중終종三삼聲성, 合합而이成성字자”라 하여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는 합해져야 글자를 이룬다.”라는 아주 기초적인 세종대왕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 시경 선생이 제창하였던 풀어쓰기를 하고 삿갓모양으로 치장하는가 하면, 어느 연구가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일자일성(一字一聲)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늘 “ㆍ”자는 합쳐지는 첫소리글자에 따라 네 가지로 소리를 낸다는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더욱 심한 경우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스물여덟글자와는 전혀 모양이 다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예 콩나물 대가리처럼 생긴 모양으로 만들어서 무슨 악보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글자를 만들어 각양각색으로 세종대왕을 능멸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종교와 연관을 시켜서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든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희극(喜劇)이라 하겠다.

이 사람도 한 때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세종대왕을 능멸한 전과가 있는 전과자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글자를 선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종대왕께서 지으셨다는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다.

“初초聲성合합用용則즉竝병書서”라 하여 “첫소리글자를 합하여 쓰려면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니 이 구절의 숨은 뜻은 새로운 소리에 대한 글자가 필요하다면 첫소리글자를 나란히 써서 하나의 소리글자로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합자례(合字例)에서는 이 규칙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낸 구절이 있는데 “初초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竝병書서”라 하여 “첫소리글자는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며, “中중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이라 하여 “가운뎃소리도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며, “終종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이라 하여 “끝소리글자도 두 글자 혹은 세 글자 나란히 써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규칙을 활용하여 [f]에 상응하는 글자나, [v]에 상응하는 글자 또는 [l]에 상응하는 글자를 우리가 결정해서 쓰면 그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큰 뜻을 받드는 일이 되는 것이며 자판을 크게 뜯어 고치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글자 사용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제시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글자에 필요한 활자를 만드는데 대한 사회적 비용 문제이다.

새로운 글자를 사용하려면 활자와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표준 자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므로 그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제일 큰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활자를 만드는 비용문제에 대해서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스물여덟글자만을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면 새로운 활자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고 전산기(computer)의 software만 고치면 된다.

그것은 현행 <한글 맞춤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우리말 맞춤법을 만들어 병서(竝書) 규칙을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제도화 하여 그 software를 수정한다면 현재사용하고 있는 자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전혀 필요 없게 된다.

둘째로 새로운 글자가 많이 생겨나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훈민정음(訓民正音)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은 크게 혼란스럽게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물여덟글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갑자기 많은 종류의 새로운 글자가 보급된다면 다소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단계적으로 하나씩 추가하면서 익숙해지도록 한다면 큰 혼란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5. 맺는 말

이 모임의 목적은 우리말 속에 없는 새로운 말소리를 현행 한글이라는 글자로는 표기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 손 전화나 전산기(computer)의 자판을 확장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글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된 여러 학자나 연구가들은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자기의 주장만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과연 어느 방법이 가장 합리작인 방법인가 하는 점을 냉철히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이 모임을 보면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커다란 암 덩어리를 안고 있는 중환자이다.

그 이유는 지금 이 모임에 모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큰 틀에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까?

우리민족은 모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막상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특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망가뜨려 놓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김 영봉 교수 말대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글’과 같은 불량품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말소리를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소리 과학이 바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그러므로 각자 제2, 제3의 세종대왕을 꿈꾸는 허망한 생각을 버리고 이성을 찾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받들어 그 분이 제시한 가르침대로 소리의 보물 곳간에서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글자를 꺼내 쓰는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과 같은 악법을 폐기시키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되살려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우리말 맞춤법과 빌린 말 표기법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정음 연구회

      회장 최 성철

註: 이 글은 9월 23일에 한글 자판 확장 표준위원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입니다.


* http://cafe.daum.net/rakhy/Jl9g/70 에서 퍼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