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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5 [명상강론]명상과 방편의 관계
삶의 양념2004.11.15 00:00

[ 방편과 명상 ]
테크닉은 유용하다. 과학적인 테크닉은 큰 도움을 준다. 테크닉을 통해 그대는 불필요하게 헤매거나 허둥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 테크닉도 알지 못한다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스승의 안내를 받아 과학적인 테크닉을 활용함으로써 그대는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기회를 놓치거나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때로는 평생 걸려도 이루지 못할 성장이 단 몇 초 안에 일어나기도 한다. 올바른 테크닉을 활용하면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이 테크닉들은 수 천년동안 구도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온 것이다. 그것들은 한 사람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구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는 그 핵심적인 부분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언젠가 그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삶의 에너지는 더 이상 흐름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에너지는 최고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흐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환생을 거듭하며 태어나는 이유이다. 그대의 진아는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길고도 지루한 여행이 될 것이다.
모든 방편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방편이 명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방편은 다만 어둠 속을 더듬는 손길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가지 그대는 주시자가 될 것이다. 다이나믹 명상, 또는 쿤달리니 명상이나 선회 명상을 하다가 불현듯 그대는 주시자가 될 것이다. 어느 날엔가 명상이 계속 진행중인데도 그대는 거기에 동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조용히 앉아 그것을 주시할 것이다. 그 날이 진정한 명상이 일어나는 날이다. 그때 방편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며 유용한 수단도 아니다. 물론 그대가 원한다면 그 방편을 즐길 수는 있다. 마치 연습을 하듯이 말이다. 확실히 방편은 활력을 준다. 그러나 진정한 명상이 일어나면 방편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명상은 지켜봄(witnessing)이다.
명상한다는 것은 지켜보는 자가 됨을 의미한다. 명상은 결코 테크닉이 아니다! 그대는 이것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계속해서 테크닉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명상은 테크닉이 아니다. 명상은 이해이고 각성(awareness)이다. 하지만 그대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대에게는 궁극적인 이해가 너무나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 앎은 그대 깊은 곳에 숨어있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멀리 동떨어진 곳에 있다. 그 앎은 지금 당장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는 얻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다. 궁극적 이해는 지금 이 순간 가능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하다. 이럴 때 방편들이 그 틈을 메워줄 것이다. 그것이 방편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처음에는 테크닉이 명상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대는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테크닉은 명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상은 전혀 다른 존재의 특성이다. 그것은 그 어느 것과도 무관하다. 명상은 궁극에 가서야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명상이 일어났다고 착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 틈이 메꿔지지 않을 것이다.
 
노력으로 시작하라.
명상 테크닉은 행위이다. 그대는 무엇인가 행하도록 인도되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는 것조차 무엇인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조용하게 앉는 것조차 무엇인가 행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보면 모든 명상 테크닉은 행위이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보면 명상은 행위가 아니다. 테크닉이 성공을 거두면 행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테크닉이 성공을 거두면 모든 노력이 사라진다. 아무 런 노력이 없어도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명상에 성공했을 때 그것은 행위가 아니다. 그때에는 그대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노력이 없어도 그것은 분명하게 거기에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인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마음은 노력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을 노력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모든 것이 터무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위적 노력이 없는 무위(無爲)의 상태를 강조하는 선(禪)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그냥 앉아 있으라.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당연한 일이다. 노력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노력이 있을 것이다. 행위가 개입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럴 뿐이다. 그것은 필요악과 같다. 그대는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명상에 대해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순간이 와야 한다. 다만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으면 명상이 일어난다. 그저 앉거나 서있기만 하면 저절로 명상이 일어난다. 아무 것도 행치않고 깨어있기만 하면 명상이 일어난다.
모든 명상 테크닉은 노력없는 상태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내면의 변형, 내면의 깨달음은 노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력은 일종의 긴장이기 때문이다. 노력이 있으면 완전히 릴랙스할 수 없다. 노력이 장매물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노력을 기울이면 서서히 노력 또한 버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간단한 방편들.
우리가 앞으로 배우게될 방편들은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에 의해 소개된 것이다. 이것을 명심하라. 그 방편들은 너무 간단해 보일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너무 간단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 대해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이 방편들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대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 꿈에 그리던 고향이 지척에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자꾸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대는 자신의 에고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느끼기는 커녕 그 방편들이 너무 단순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만이다. 마음은 이 간단한 방편들이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고 속삭일 것이다.
이 방편들은 너무 단순해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마음은 말한다.
"나는 지금 신적인 세계,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세계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한 방편들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이따위 단순한 방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대의 에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명심하라. 에고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무엇인가 어려운 것이 있어야만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그대의 에고는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에고는 간단한 것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절대로! 에고에게 도전을 주려고 한다면 무엇인가 어려운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간단한 것은 호소력이 없다. 설령 그것을 이루어낸다해도 에고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복해야 할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만사가 너무나 간단했다. 그러나 에고는 어려움을 요구한다. 극복할 장애물이 있어야 하고 정복할 정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는 것이 험난하면 할수록 에고는 더큰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 테크닉들은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그대의 마음은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명심하라, 에고에 호소력을 지니는 것들은 그대의 영적인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 테크닉들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 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달성할 수 있다. 그대가 그것을 달성하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이라도 가능하다.
먼저 테크닉을 이해하라.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늙은 의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조수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당구알이 목에 걸려서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 환자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조수는 의사에게 "선생님 어덕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었다. 늙은 의사가 대답했다.
"환자의 겨드랑이를 간질러 보게."
몇 분후, 조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기쁨에 차 있었다.
"선생님의 처방은 정말 대단합니다! 겨드랑이를 간질렀더니 환자가 마구 웃다가 당구알을 토해냈지 뭡니까. 이렇게 기가 막힌 치료법을 어디에서 배우셨습니까?"
"그건 배운 게 아니라 내가 고안해 낸 것일세.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에는 아무 것이나 하라. 이것이 내 좌우명이라네."
그러나 명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통용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마음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 앎이 없으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거나 자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마음에 대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사실, 그대는 마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대가 아는 마음이란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 그대는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모른다. 마음은 존재계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다. 마음보다 복잡한 것은 없다.
여기에 소개하는 명상 테크닉들은 심오한 앎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깊이 연구한 결과이다. 모든 테크닉은 오랜 동안 실험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명심하라.-그대 임의대로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두 가지 테크닉을 동시에 병행하지 말라. 각 명상법은 기능이 다르고 원리가 다르고 기본이 다르다. 물론 모든 테크닉은 똑같은 결과로 인도하지만 방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때로는 변증법적으로 정반대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절대로 여러 명상법을 동시에 혼용하지 말라. 주어진대로만 행하라. 또한 명상법을 변형시키거나 개선하려 들지 말라. 개선은 불가능하며,어떠한 변형도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명상법을 행하기 전에 그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도록 하라. 만일 그 명상법에 대해 혼란을 느끼거나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차라리 행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모든 테크닉은 그대 안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행하고자 하는 명상법에 대해 철저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라. 그런 다음에야 실행에 옮겨라. 그리고 이 명상법들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에는 아무 것이나 한다."는 늙은 의사의 좌우명처럼 사용하지 말라.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다.
진실로, 올바른 명상법을 행하면 즉시 효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에서 날마다 명상법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 방편들을 시도해 보라. 놀이를 하듯이 행해 보라. 집에 가서도 행해보라. 올바른 방편은 즉각 효과가 나타난다. 그대 안에서 무엇인가 폭발하듯 일어나고 그대는 "이것이 나에게 적합한 명상법이다."하고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발견한 바에 의하면, 놀이를 하듯 즐기고 있는 동안 그대의 마음은 더 열리게 된다. 그러나 심각해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마음은 닫혀버린다. 그러니 놀이를 하듯 행하라. 너무 심각해지지 말라. 그냥 즐려가. 이 방법들은 매우 간단하니 편하게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방법을 택하고 최소한 삼일 동안 행해보라. 그 방법이 매력있게 느껴지면, 그 방법이 행복감을 주고 그대에게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때에는 그 방법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하라. 다른 방법을 행하지 말고 오로지 그 방법에 몰두하라. 최소한 삼개월동안 그 방법만 행하라.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단 방법이 그대에게 맞아야 한다. 만일 그 방법이 그대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엔 평생동안 그 방법만을 행한다해도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맞으면 단 삼분 만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방편을 버려야 할 때.
모든 위대한 스승들은 언젠가 방편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어떤 방편을 통해 그대의 의식에 각성이 일어나면 즉시 그 방편을 버려라.
붓다는 이런 이야기를 여러번 들여주었다.
다섯 명의 바보가 어떤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머리 위에 배를 이고 옮기는 중이지 않은가? 그 배는 매우 컸기 때문에 그들은 그 무게에 눌려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는 이 배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이 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저 쪽에서 이쪽 해안으로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배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 배가 없었다면 우리는 저쪽 기슭에서 꼼찍도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밤이 오고있는데다 야생동물들이 득실대고 있었으니까요. 아침에 우리가 송장신세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습니다. 이 배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배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진 것입니다. 이 배는 우리의 은인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머리 위에 이고 다니는 것입니다."
방편이 위험한 것은 그대에게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위험이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방편은 매우 유용하다. 그대는 배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평생동안 배를 머리 위에 이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배는 위험한 물건이다. 설령 다른 의도가 없고 순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해도 말이다. 그것은 사용하고 나서 버려야 할 물건이다.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두번 다시 돌아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그냥 이용할 가치가 있는 뗏목일 뿐이다. 절대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방편을 버리고나면 그대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존재 안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방편에 집착한다. 마음은 그대가 자신의 존재 안에 자리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음은 자꾸 배에 관심을 갖도록 그대를 유도한다. 그러나 배는 그대가 아니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다. 모든 배를 버렸으니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 모든 길을 버렸으니 어느 곳으로도 갈 필요가 없다. 모든 꿈과 욕망이 사라졌으니 움직일 길이 없다. 그렇게 릴랙스되면 모든 일이 제 스스로 일어난다.
이 릴랙스(relax)라는 단어를 명심하라. 그저 존재하는 것.....안주하는 것.....이때 그대는 집에 도착한다.
 
* 출처 : 명상나라(내용: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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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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