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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2011. 10. 21. 10:26
아래 글은, 한글학회 누리집, '오순도순' 게시판에 '펭귄'이란 또이름을 쓰시는 분이 올린 글과 그에 달린 댓글들 입니다.
* 머리글 : 외래어에 대한 입장 - 펭귄 (2011-10-20 18:36:58)
저는 영어 번역을 50만 글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건 외래어는 전문가들과 국어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겉모습만 한글이 아니라 단어 자체를 우리말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Telepathy란 단어를 텔레파시로 번역해 많이 씁니다. 텔페파시가 뭔가? 자신이 보는 사전에 나오지 못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해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텔레파시의 뜻은 인간이 말이나 글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행위지요. 제가 번역한 글에서 텔레파시 대신 '마음대화'를 썼습니다. 대화를 한글로 대치하면 '마음말'이 됩니다. '원격(tele) pathy(통신)'은 한자어 조합이라 어색합니다. 원격 통신은 기계적인 느낌이 들지요. 그럼, 원격감응이라고 할까? 이것도 '감응'이란 한자어 의미가 짜집기한 상태여서 이상하지요. 표대국에 의하면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임'인다고 '감응'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감응이란 대화란 질적으로 틀립니다. 대화는 논리적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개인들이 만들은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면 사전 제작자들이 새 단어들로 채집해서 올림말로 쓰고, 사전 뒤에 "저작권"이라 뻔뻔하게 불법도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찍어 놓지요. 세상에 사전이 단어에 대한 저작권 지킨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한글 창제 후 500년이 넘어 한글 학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쓰인 '우리말 사전'을 1947년에 출판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 47년 후에 출판된 국어 사전은 모두 '우리말 사전' 올림말을 가져다 썼다고 봅니다. 이들 사전 제작자들과 출판사들이 한글 학회에 저작권료 지불했을까. 집 앞에 꽃을 딴 사람이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저작권 때문에 함부로 가져다 쓰지 못합니다. 이런 경우는 사진이란 고정된 개체라 인정을 하겠지만, 제작자 불명의 5천만 국민들이 쓰는 어휘에 한 개인이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요구한다. 억지죠.

이 글에 먼저, 제가 단 댓글입니다. (2011-10-20 18:36:58)
어떤 분은 '외래어'라는 뜻말이 우리에게만 있다고도 했습니다.(저는 우리말 모두를 꿰뚫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것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외래어'라는 흐리터분만 뜻말이 우리말을 죽이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더 깊이 보자면, 한자를 받드는 이들이 한자말을 우리말로 만들려고 만든 뜻말이 아닌가 합니다.
이 얘기는 좀 길어서 제가 쓴 글, "한자말도 우리말이라는 어거지가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뿌리!" 글을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http://2dreamy.tumblr.com/post/10153230909
저작권 말씀은 대체로 생각이 같습니다.
덧글. 선생님이 옮기신 글을 한번 보고 싶은데 옮기신(번역) 책을 좀 알려주실 수 있을지요...^^

그리고 이어서, '가나다'란 분이 쓴 댓글입니다. (2011-10-20 21:32:37)
외래어에 담긴 뜻을
우리말로 표현하려는 마음이 좋고
이것은 정부에서 나서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부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정부보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어느 통신회사는 '소리샘'이라고 우리말을 쓰고
어느 통신회사는 '음성사서함'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넬리파시를 마음말이라고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글을 쓴 '펭귄' 님이 쓴 댓글입니다. (2011-10-21 09:08:54) * 돋은 표시는 제가 한 것임.
깨몽 님,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한국어 못하면 창피해서 문법이랑 맞춤법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깨몽 님 의견에 동의를 해요. 한자는 조상들이 필요해서 사용한 글씨지, 한국말에 한자를 맞추면 안됩니다. 한글을 사용한지 500년이 넘었지만, 사실 1970년대까지 한국의 공식 언어는 한자였다고 봐요. 70년대 신문은 전 읽지 못합니다. 한자에 가끔 한글 단어들은 양념.

영어에 우리말을 맟춰도 안되고요. 영어, 한자 공부하고 우리말까지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말을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들이 직업이나 연구목적으로 필요하면 본인들이 한자든, 영어든 배워야지요.

요즘처럼 아이들한테 영어, 한자, 우리말 공부 짬뽕으로 시키면 영어는 영어데로 못하고, 한자도 어설프고, 우리말도 서투른 국민들이 될겁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모르고, 창조성도 부족해지겠지요.

맞춤법은 볼수록 짜증이 납니다. 법칙이 57개에 붙힘들 까지 치면 거의 100개쯤 되니, 일반 국민이 맞춤법데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요. 국어학자들이 사전 작업으로 할 일을 국민들에게 넘긴 꼴이라 봅니다. 맞춤법 규정이 일부 바뀌면 사전에 등록된 표준어들도 전부 바꿔야 됩니다.

한자에 우리말을 끼워맞추는 대표적 예가 두음법칙이라고 봅니다. 진짜 이상해요. 한국사람은 'ㄹ'시작하는 단어 발음을 알타이 계통이기때문에 못한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두음법칙을 지켜려면 옥편을 참조해 한자의 발음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도 실용성이 없고요.

영어는 150년, 200년전 책을 봐도 내용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영어 맞춤법 규칙은 손으로 꼽을 정도고 사전을 통해 단어 사용법을 배우면 됩니다. 한글도 표음문자니까 이런식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쌀살하다"를 왜 "쌀쌀하다"로 강제로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늘질" 대신 "바느질"로 써야 한다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들이 '바느'를 '반'으로 말하면 "바느질"이 "반질"로 되니, 원형을 보존해 뜻을 이해하도록 한다는 맞춤법 목적이 사라지거든요.

영어는 미국인, 영국인, 호주인 마다 발음이 틀립니다. 영어 단어는 기록 문자고, 만약 한글 맞춤법처럼 영어 단어를 발음에 따라 바꿔버리면 영어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언어로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수천년 넘게 써온 사투리, 방언을 표준어가 아니라고 사전에서 삭제 시키면 어쩐다는 건지. 이런 우리말 파괴행위를 학자들이 해서는 안되는데 계속하고 있어니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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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2011. 10. 13. 14:51
우리말을 있는데도 들온말(주로 한자말이나 영어)을 쓰는 이들에게, 흔히 쓰는 들온말을 우리말로 쓰자고 하면 들온말하고 우리말이 뜻이 다르니 그럴 수 없다(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 말도 그럴싸 한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쓰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에 뜻을 세게 느끼고 뜻을 넓혀 쓰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뜻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자주 쓰게 됨에 따라 느낌이 조금 더 넉넉해진 것일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 '책상'과 '데스크'가 뜻이 완전히 같은지요?
'책상'은 아무래도 좀 옛스럽거나 투박한 느낌을 가진 것에 쓰게 되고 '데스크'는 서양 냄새가 나거나 잘 갖춰진(요즘 흔히 쓰는 말로 '시스템 가구') 것에 쓰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 '책상'과 '데스크'를 나누어 풀이해야 할까요?(물론 아주 오랜 세월 이렇게 쓰다 보면 쓰임이 아주 나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책상'과 '데스크'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얘기로, 아직까지는 어쩌다보니 더 자주 쓰게 된 한자말에 더 많은 느낌을 담게 되었습니다만, 앞으로 영어에 더 익은 터울이 커 가게 되면 그 때는 다시 한자말은 점점 죽게 되고 영어에 더 많은 느낌이 실릴 것입니다.
이것은 한자말이나 영어에 더 많은 느낌이 있었다기보다 쓰는 우리들이 더 자주 쓰게 되면서 생기는 일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말을 더 자주 쓰게 되면 우리말에 느낌이 더 넉넉해 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이 커 가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은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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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 10. 6. 22:13
우리말에서 '외래어'라는 흐리터분한 뜻말을 두고 국립국어연구원(지금은 '국립국어원') 한예연구관이 쓴 멍청한 글이 있길래 옮겨놓습니다.
【특집·외래어와 외국어】

외래어의 개념과 범위

정희원 /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1. 머리말

 

  ‘외국어는 어릴 때 배우는 게 좋다’거나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삼가자’는 말을 하면서 ‘외국어’나 ‘외래어’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외래어와 외국어가 정확히 무엇을 지시하는지 구분해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교과서나 사전에서는 국어 생활 속에 널리 사용되고, 또 바꾸어 쓸 수 있는 적당한 어휘가 없는 경우만을 외래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치킨’이나 ‘키’, ‘루머’ 따위 낱말들은 외래어인가 외국어인가? 국어 단어로 인정된 말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나, ‘닭고기’나 ‘열쇠’, ‘소문’으로 바꾸어 쓰기에도 마땅치 않아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을 보면 ‘외국어’는 ‘모국어’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고,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외국어’는 글자 그대로 남의 나라 말이지만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비롯되긴 하였으나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말이라는 것이다.1)

그래도 여전히 특정 단어가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말’이라는 정의가 우리가 사용하는 외래어의 개념을 제대로 나타내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울 뿐더러 그러한 판단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 리나라의 외래어 연구사를 검토해 보면 의외로 외래어의 정의나 개념 정립에 관해서는 깊이 논의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누구나 다 동의하는 외래어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한 상황에서 표기나 순화 등 실제적인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외래어라는 말의 쓰임을 관찰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거나 위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정의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무의미한 논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의 발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러한 비난은 외래어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엉터리 외래어 표기법 때문에 한국인들이 외국어 발음을 잘 못한다’고 비난을 하면서 외래어 표기에 ‘ㆄ’이나 ‘ㅿ, ᄙ’ 등의 기호를 만들어 쓰자고 주장하는 일이 있다.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외래어 정의에 비추어 보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외래어는 이미 국어의 일부가 된 낱말이기 때문에 철자를 만들어서까지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어사전의 뜻풀이대로 간단히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분 짓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다. 만약 외래어가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어 받아들여진 말들만을 가리킨다면 외래어 표기나 순화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은 사실상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이미 우리말 어휘 체계의 일부가 된 말이라면 굳이 다른 말로 ‘순화’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표기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굳어진 형태를 채택하면 되지 굳이 복잡한 표기 원칙을 따로 만들어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외래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사전적인 정의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상의 혼란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컵라이크(cuplike)’나 ‘톱놋(topknot)’, ‘스월른(swollen)’ 따위의 말들은 국어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 외국어인데도 외래어 표기법에 예시되어 있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에서조차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법의 이러한 태도가 결국 외국어 발음과의 차이를 문제 삼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이 글에서는 우리말 속에서 ‘외래어’라는 용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 용어인 ‘외국어’ 및 ‘차용어’, ‘귀화어’ 등과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종래의 외래어에 대한 정의와 문제점

 

      2.1. 연구 초기의 외래어 개념

 

  어떤 언어든지 다른 언어권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 많은 외래 언어적 요소들이 들어와 쓰이게 마련이다. 우리말은 역사적으로 중국어와 만주어, 몽골어 등에서부터 많은 어휘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 그 말들은 우리말 속에 충분히 녹아들어 더 이상 다른 언어에서 왔다는 의식이 없다. 우리가 흔히 외래어라고 하는 것들은 19세기 말엽부터 서양 문물의 전래와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 말들로, 대개 영어를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의 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외래어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30년대부터 활발히 시작되었다. 1930년대는 기본적인 어문 규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큰사전>을 편찬하는 등 우리말의 기초를 닦는 연구가 활발했던 시기이다.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는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서양 학문의 영향으로 외래어의 사용이 급증했다.4) 그에 따라 외래어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도 높아져 많은 연구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외래어 및 외국어의 남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어 순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외래어의 바람직한 수용 태도에 대한 열띤 논쟁으로 이어졌다. 외래어의 표준 표기법을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협의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외래어 사전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외래어의 개념 정의와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외래어 문제를 다룬 글 속에서 외래어 개념에 대한 당시 연구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935년 <한글> 제3권 6호에 실린 이극로의 “외래어 표기에 대하야”는 외래어 문제를 다룬 최초의 글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 이극로는 1933년 제정된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외래어 표기에 “새 문자나 부호를 쓰지 아니한다”는 원칙을 정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들어오는 때에는 우리화를 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어느 민족의 말에나 외래어를 자기화(自己化)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 있다.” 그가 비록 ‘우리화’나 ‘자기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래어는 외국어와 구분되는 개념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외 래어, 외국어 구분에 대한 좀 더 명시적인 태도는 은무암(1936)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외래어를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 어휘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내세워 무조건 외래어를 배척하고 지나치게 순우리말만을 쓰려고 하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그는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숭상함이 위험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인 것처럼, 남의 것이면 비웃고 내 것이라면 무조건하고 아름답고 우수한 것이라 함도 또한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일이다.”라는 말로 외래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외래어는 될 수 있으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사실은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할 때 간간이 타국말을 섞어 하면 그만 그 섞인 타국말은 외래어가 되는 것인 줄 아는 듯하다. 아니다. 그 타국말이 우리말과 같이 쓰이며 알게 되는 때부터 처음으로 외래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우리는 그가 외래어와 외국어 개념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외국어의 낱말이 외래어의 자격을 얻으려면 우리말 속에서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과 그런 과정을 거쳐 국어로 정착한 외래어는 굳이 다른 말로 바꾸어 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1937년에 출간된 이종극의 『모던조선외래어사전』은 13,000여 표제어가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외래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조선 외래어에 대하야’라는 서문이 실려 있어 당시 외래어 연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사전은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 각종 문헌을 조사하여 사전에 실린 외래어 표제어의 출처를 밝히고 용례를 제시하는 등 체재나 기술 방식이 상당히 과학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 [father: 아버지]’, ‘머, [mother: 어머니]’, ‘허쓰반(드)[husband: 남편]’ 등 외래어라고 하기 어려운 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5) 이종극(1937)은 이미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었던 듯 이 사전이 ‘외래어의 충실한 기록’임을 표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휘의 선택에 있어서는 무사려했다고 할만치 다수를 채록하였다. 그것은 본 사전의 실용 가치를 조곰이라도 더 높이랴는 나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또한 “나는 본서를 우리말 사전 편찬가에게 드리고 싶다. 본서는 물론 조선어사전과 그 사명을 달리하나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외래어는 range로 보나 frequency로6) 보나 완전한 조선어사전에는 반드시 적을 둘만한 말들이 많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그는 외래어 사전의 표제어는 외국어 단어를 마구잡이로 싣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려를 통해서 선정해야 한다는 것과, 그중에서도 사용 범위가 넓고 빈도가 높은 일부 낱말들은 국어사전에도 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기술을 통해 연구자들은 1930년대에 이미 외래어는 외국어와 구분되는 개념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외래어는 국어 어휘의 일부로서 국어사전 표제어로 수록될 자격이 있으며 순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2.2. 외래어 정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초기의 외래어 연구를 계승하여 외래어의 개념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이희승(1941, 1959) 및 김민수(1973)를 들 수 있다. 이희승(1941)은 앞선 연구자들이 막연하게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 지었던 데 반해, 외래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외래어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하였다. 김민수(1973)는 외국어가 우리말에 귀화하는 과정과 관련지어 외래어 개념을 체계적으로 기술하였다. 그 밖에도 배양서(1970), 유구상(1970), 강신항(1983) 등 여러 연구자들이 외래어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대부분 국어사전 식의 간략한 뜻풀이를 받아들인 채 외래어의 사용 실태나 수용 대책, 또는 표기법 고안이나 순화 방안 등 실천적인 연구에 주력하였다. 외래어의 개념이나 범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 두 가지 연구보다 진전된 논의는 없었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이희승(1941, 1959) 및 김민수(1973)의 연구를 통해 국어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져 온 외래어의 개념을 점검해 보고, 그와 같은 정의가 보이는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희승(1941)은 외래어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말이어야 한다고 정의하였다. 첫째, 순수한 외국어가 아닐 것. 둘째, 음운상으로 귀화한 것이라야 할 것. 셋째, 충분히 일반화되었어야 할 것. 이후 이희승(1959)에서는 외래어의 속성을 “본래는 외국어로서 어떤 민족의 언어 사회에 들어가서 상당히 보급된 일, 그 발음이 외국어 발음대로 생소하지 않고, 받아들인 언어 사회의 음운 법칙에 의하여 동화된 일, 따라서 외국어를 모르는 일반 민중이라도 능히 발음도 하고 그 뜻을 이해도 하여, 외국어라는 인식이 조금도 없이 자유 자재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과 같이 특징짓고 있다. 이와 같은 정의는 외국어의 단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더라도 일시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외국어이며,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어 고유어처럼 쓰이는 말이 되어야 비로소 외래어가 된다는 것으로, 오늘날 외래어 정의의 바탕을 이룬다.
  김민수(1973)는 우선 외래어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1) 외래어의 정의(김민수 1973: 103~104)

첫째, 외국에서 들어와야 한다.

둘째, 수입되어야 한다.

셋째, 제 국어 속에 들어와야 한다.

넷째, 사용되어야 한다.

다섯째, 단어라야 한다.
  외 래어가 다른 나라 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부터 다섯째까지의 특징은 외국어로부터 외래어를 구분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속성들이다. 수입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기원이 되는 언어를 떠나 우리말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며, 제 국어 속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은 국어의 어휘들과 함께 국어 문장 속에서 일정한 문법적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국어 생활 속에서 사회적으로 수용되어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어라야 한다는 조건은 본래 언어에서는 문장이나 어구이더라도 국어 속에서는 단어의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외 국어 단어가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닌 외래어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김민수(1973)에서는 다른 나라의 말이 유입되어 섭취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 단계는 외국어라는 인식이 뚜렷한 단계, 둘째는 차차 익숙해지면서 두루 쓰이게 되고 생소한 의식이 없어지는 단계, 나중에는 외국어라는 의식조차 없어지고 우리말로 여기게 되는 단계, 맨 끝 넷째는 국어에 아주 융합되어서 고유어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단계이다. 외래어의 범위는 위와 같은 귀화 과정을 밟아 나가는 단계에 따라 외국어(미조화어), 차용어(조화어), 귀화어(융합어)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외국어는 발음이나 뜻이 다 순 외국어의 모습 그대로 쓰이는 단계의 말이고, 차용어는 발음이나 형태 등이 어느 정도 국어적인 것으로 변화한 것, 귀화어는 외국어라는 특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국어 사회에서 고유어와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쓰이는 말을 가리킨다. 위와 같은 설명 과정을 통해 김민수(1973)는 외래어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도표화한다.
  결 국 김민수(1973)는 ‘외래어’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국어화한 말만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광의의 외래어와 협의의 외래어 개념을 구분한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외래어는 일차적으로 낱말의 기원이 외국어임을 지시하는 말로서 귀화어인 한자어와 차용어(협의의 외래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동화되지 않은 외국어 낱말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것을 그는 광의의 외래어로 정의하였다. 협의의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왔지만 상당히 동화되어 국어의 일부가 된 차용어, 즉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국어사전 식의 외래어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다.
  위와 같은 외래어의 개념 정의는 외래어가 국어사전 식의 정의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차용어의 뜻만 인정하였던 이전까지의 연구보다는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광의의 외래어 개념부터 살펴보자. 외래어를 넓은 의미로 쓸 때에도 귀화어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민수(1973)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귀화어는 이미 오래 전에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의 일부가 된 낱말들이다. 어원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이 본래 외국어 낱말이었음을 알 수가 없다. ‘고무, 부처, 담배, 고추, 절, 붓, 먹’ 따위 낱말들과 한자어가 대표적으로 귀화어로 분류되는 예들인데, 오늘날 이들을 외래어라고 인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도 이 낱말들은 고유어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이런 귀화어를 차용어 및 우리말 속에서 산발적으로 사용되는 외국어 단어들과 함께 묶어 ‘외래어’로 지칭하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부 연구 논문에서 외래어라는 용어를 단지 출처를 중시하는 의미로 쓸 때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광의의 외래어 개념에 외국어를 포함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외국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언중은 보통 우리말 속에 어쩌다 한 번씩 섞여 들어오는 외국어 단어를 외래어와 구분 지어 인식한다.
  협의의 외래어는 국어에 상당히 동화되어 국어의 일부가 되었지만 언중에게 외국어에서 온 말이라는 의식이 있는 외래 어휘들, 곧 차용어를 이른다. 이러한 정의는 은무암(1936), 이희승(1941) 등의 기술을 계승한 것으로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외래어의 개념과 같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정의는 ‘외래어’의 실제 쓰임과는 거리가 있다. 만약 다른 나라 말에서부터 온 단어가 우리말에 들어와서 오랫동안 쓰여 음운이나 형태, 의미 등이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었다면 그들 부류만을 따로 떼어내 그것이 외국어인지 아닌지 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외래어가 진정 국어의 일부라면 그것을 국어생활에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지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일찍이 은무암(1936)에서 지적하였듯이 외래어는 ‘남용’하거나 ‘범람’할 수 없는 것이다. ‘남용’하거나 ‘범람’함으로써 국어의 어휘 체계를 혼란시킬 염려가 있어 ‘정화’의 대상이 되는 외래어는 ‘국어화한 외국어 단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아직 완전한 동화 과정을 거쳐 국어의 일부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말 속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되는, 외국어에서 온 낱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과 관련, 김하수(1999)에서는 외래어를 “국어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거나 국어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배척되고 있는 딴 언어 요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2.3. 외래어와 차용어의 구분

 

  (2)에 있는 김민수(1973)의 어휘 분류표는 용어가 상당히 비경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래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서 개념이 모호하게 된 반면에 ‘차용어’는 협의의 외래어와 같은 개념을 지시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또한 차용어와 외국어의 경계에 있는 낱말들은 적당한 명칭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외래어와 차용어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외래어와 차용어를 새 언어에 동화된 정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이덕호(1980)가 제안한 적이 있으며, 특히 독일어학에서는 두 가지 개념을 명확히 구분한다. 우선 독일어의 연구 사례를 따라, 이 두 가지 용어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적으로는 독일어에서 ‘Lehnwort(차용어)’보다 ‘Fremdwort(외래어)’라는 용어가 먼저 생겨났다. Fremdwort는 ‘fremd(외래의, 외국의)’와 ‘wort(낱말)’가 합성된 말로 처음에는 외국어로부터 독일어에 수용된, 의미를 알 수 없는 낯선 단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외래어들이 점차 독일어에 동화됨에 따라 일부 외래어들은 고유어와 마찬가지로 언중에게 익숙하게 되었고 익숙해진 외래어를 가리킬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래어 개념을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기 위해 ‘Lehnwort’(lehnen 빌리다+wort)란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외래어란 표기법이나 발음에서 독어에 아직 동화되지 않은, 혹은 부분적으로만 동화된 외래 단어들을 가리키고, 차용어는 음운, 표기, 어미변화 등이 독일어에 완전히 동화되어 외관상 더 이상 순수 독일어와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단어들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차용어(Lehnwort)는 모국어화한 외래어다.7)   김원(2003)은 외래어 규정에 있어서 언중의 평가를 중시하는 폴란트(Volland, 1986)를 인용하여 외래어와 차용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3) 독일어에서 외래어와 차용어의 구분(김원 2003a: 518)

 통시적 분석의 결과
 (기원)
 모든 자질을 포함하는
 공시적 분석
 범주
 fremd (외래의)
 fremd (외래의)
 heimisch (고유의)
 heimisch (고유의)
 fremd (외래의)
 heimisch (고유의)
 heimisch (고유의)
 fremd (외래의)
 Fremdwort (외래어)
 Lehnwort (차용어)
 heimisch Wort (고유어)
 Pseudo-Fremdwort (유사외래어)
  위 의 도표에서 폴란트(Volland, 1986)는 외국어에 기원을 둔 낱말이 언중에게 낯설게 느껴질 때는 외래어이고 익숙하게 느껴질 때에는 차용어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낯설다는 판단은 어떤 기준에 따라 하는가? 최경은(1994)은 뮐러(Müller) 등의 논의를 종합하여 동화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을 정서법상의 특징, 음운 음성학적 특징, 문법 어형론적 특징, 의미 어휘론적 특징의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외국어 단어가 독일어에 들어오면 철자나 발음, 강세 따위가 독일어 식으로 변화하고, 성·수·격 등 독일어의 문법적 특징을 부여받거나 독특한 어휘 의미를 획득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동화 과정을 겪은 어휘는 더 이상 낯설지 않으므로 차용어가 되고, 동화되지 않은 어휘들은 여전히 외래어로 분류된다.
  우리는 차용어와 외래어의 이러한 구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국어학에도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사실 외래어라는 용어가 ‘국어에 동화된 외래 어휘’에서 벗어나 다른 대상을 가리키게 된 데에는 아직 완전히 국어화되지는 않았으나 고유어와 미묘한 의미 차이를 가지고 널리 쓰이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도 이들에게 적당한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민수(1973)에서 보았듯이 외국어 단어가 우리말 어휘가 되기까지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게 마련인데, 동화의 과정 중에 있는 많은 어휘들을 무시한 채 외국어와 외래어로 단순히 구분한 것이 ‘외래어’의 지시 대상을 확대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외래어 개념의 재정의

 

  이제 위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여 외래어의 개념을 새로 정립해 보고자 한다. 외래어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와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로 정의되어 왔다. 외래어는 곧잘 외국어와 비교하여 기술되었는데, 외국어와 외래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외래어는 국어화한 말이며 외국어는 그렇지 않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임홍빈(1997)에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 짓는 기준으로 제시한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쓰임의 조건은 우리말 문맥 속에서 널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담화에 한두 번 사용되고 말거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널리 쓰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동화의 조건은 외국어가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의 특징을 지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화는 대개 음운, 문법, 의미의 세 가지 면에서 이루어진다. 음운상의 동화는 외국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 쓰일 때 그 발음이 우리말 소리로 대치되는 것을 말한다. 영어의 [f]나 [r] 소리가 우리말에서는 ‘ㅍ’, ‘ㄹ’ 소리로 바뀌는 것을 들 수 있다. 문법 면에서의 동화는 원어에서 가졌던 성, 수, 격, 호응 관계 등의 기능이 없어지고 우리말에서 새로운 문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어에서 단수와 복수를 구별해서 쓰는 ‘shirt’가 국어에서는 항상 복수 형태인 ‘셔츠’의 형식으로만 사용된다든가 외국어 단어가 우리말에서 형용사나 동사 구실을 할 때에는 항상 ‘-하다’ 형태로만 사용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의미 면에서의 동화는 우리말 속에 들어와 그 고유한 의미가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국어에서 ‘boy’가 식당이나 호텔의 종업원을 뜻하거나 ‘madame’이 술집이나 다방의 여주인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화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외 래어 개념을 엄격하게 정의하는 시각에서는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을 모두 갖춘 부류만을 외래어로 인정하고 그 밖의 것들은 ‘외국어’로 분류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외래어로 인식하는 어휘들은 국어로 굳어진 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 국어 속에 널리 쓰이기는 하나 동화의 과정을 완전히 거치지 못한 것들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오히려 해당 고유어나 한자어가 있는데도 국어 생활 속에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순화 대상이 되는 어휘들에 초점이 놓이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갭, 와인, 리더, 보스’ 따위 말들은 흔히 사용되기는 하나 영어 단어의 뜻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의미 분화가 아직 완전히 되지 않아 국어 어휘로 보기는 어려운 말들이다. 이러한 낱말들은 종전의 정의에 따르면 외국어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외래어로 인식된다.
  김문창(1989)에서는 우리말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사용되는 외래 어휘들의 사용 실태를 조사하여 제시한 바 있다. 그의 조사 결과를 일부 보이면 아래와 같다.

(4) 국어와 외국어8) 사용 비율(김문창 1989: 646~647)


 감각           16%  84%        센스  상자             13%  87%            박스
 색안경        12%  88%        선글라스  열쇠             17%  83%            키
 공책            4%  96%        노트  탁자             18%  82%            테이블
  위 의 표에서 보면 같은 뜻을 가진 말 중에서 ‘외국어’의 사용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 현실을 무시하고 ‘공책’보다 수 십 배나 더 많이 사용되는 ‘노트’를 국어 생활과는 상관없는 외국어 단어라고만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민수(1973)에서 외국어는 발음이나 의미가 다 순 외국어의 모습 그대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바 위의 단어들은 그러한 외국어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위에 예시된 단어들은 국어에 아직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부 동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외국어의 발음이 우리말의 소리로 대체되었으므로 음운적으로는 완전히 동화되었다. 우리말 문장 속에서 명사 구실을 하며 자유자재로 사용되므로 문법적인 동화도 이루어졌다. 다만 같은 뜻을 가지는 낱말이 이미 국어 속에 있다는 점 때문에 국어 어휘로 인정받지 못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말들의 쓰임을 살펴보면 미세하지만 의미적인 분화도 상당히 진행되는 중이다. ‘열쇠’와 ‘키’를 비교해 보면 ‘키’가 지시하는 범위가 더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는 주로 자동차 열쇠를 가리키고 현관이나 방문 열쇠의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나, 책상이나 옷장 같이 비교적 작은 물건을 여는 열쇠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널리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동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예비 차용어’ 범주에 속하는 낱말들을 무조건 외국어라 하여 배척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무 엇보다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의 개념에는 아직 우리말 속에서 그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이러한 어휘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외래어라는 용어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일치시켜 정의하려면 국어로 굳어진 낱말뿐만 아니라 동화 과정에 있는 외래 어휘들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5) 외래어, 차용어, 귀화어의 구분

  외국어 어원 널리 사용됨 동화 과정 완료 언중의 외국어 인식
외래어 ±
차용어
귀화어
  외 래어, 차용어, 귀화어는 모두 외국어에서 와서 국어 속에 널리 사용되는 낱말들이다. 그중에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고, 또 일반인들에게 외국어에서 온 말이라는 의식이 없이 고유어와 똑같이 취급되는 말들은 귀화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언중이 외래 어휘임을 인식하는 나머지 낱말들은 모두 외래어이다. 그들 중에 동화 과정이 완료되어 국어의 어휘 체계 속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말은 따로 차용어라는 말로 구분해서 지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리하였지만 특정한 낱말이 외국어인지 외래어인지, 또는 차용어인지를 실제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화의 조건’과 ‘쓰임의 조건’이라는 기준이 명백하게 제시되었으므로 이 기준에 비추어 판정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때 해당 어휘가 ‘쓰임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지는 문헌과 면접 조사를 포함한 실태 조사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조사를 통해 각 세대와 계층에 두루 사용되는 외래 어휘들은 ‘예비 차용어’의 개념으로 외래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의미 분화 등 동화 과정을 거쳐 우리말 어휘의 일부가 된 것들은 다시 차용어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차용어로 인정되면 국어사전 표제어로 실리게 될 것이며, 국어 순화의 대상에서는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강신항(1983), ‘외래어의 실태와 그 수용 대책’, “한국 어문의 제문제”, 일지사.
김문창(1989), ‘의사외래어의 문제점’, “이정 정연찬 선생 회갑 기념 논총”.
김민수(1973), “국어정책론”, 고려대 출판부.
김세중(1990), ‘외래어 표기의 변천과 실태’, “국어생활” 23, 국어연구소.
김세중(1996), ‘서양에서 들어온 말’, “한국 신문 방송 말글 변천사(하)”, 한국교열기자회.
김 원(2003a), ‘독일의 언어 정화 운동과 그 한계’, “독일어문학” 20, 한국독일어문학회.
김 원(2003b), ‘외래어 차용의 유형과 원인’, “독일어문학” 23, 한국독일어문학회.
민현식(1998), ‘국어 외래어에 대한 연구’, “한국어 의미학” 2, 한국어 의미학회.
김하수(1999),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점’, “배달말” 25, 배달말학회.
은무암(1936), ‘외래어 처리 문제’, “한글” 4-8, 한글학회.
이극로(1935), ‘외래어에 대하야’, “한글” 3-6, 한글학회.
이덕호(1980), ‘언어 차용에 관한 연구1’, “한글” 169, 한글학회.
이종극(1937), “모던조선외래어사전”, 한성도서주식회사.
이희승(1941), ‘외래어 이야기’, “춘추” 2·3집, 이희승(1959) 재록.
이희승(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문화사.
임홍빈(1997), ‘외래어의 개념과 그 표기법의 형성과 원리’, “한글맞춤법 무엇이 문제인가”, 태학사.
최경은(1994), ‘독어에 있어서 외래어 개념’, “독일문학” 52, 한국독어독문학회.
* 위 글은, '국립국어원' - '자료마당'에 있는 정기간행물 중에서 '새국어생활' 제14권 2호, 2004년 여름호에서 뽑은 내용
* http://blog.naver.com/36hjs/150031446515 에서 다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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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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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2011. 9. 13. 12:26
우리가 아직 우리 글이 제대로 없을 때 한자를 빌어 썼습니다. 물론 다르게 적으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크게 봐서 한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불편함이 한자를 쓸 때보다 뛰어나게 낫지 못했겠지요.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그렇지만 우리말은 그 이전부터도 계속 있었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것을 밝히는 것은 가끔 말과 글을 헛갈려 주장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한자를 빌어 글을 써 왔고,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우리말에도 꽤 끼친 바가 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야 어찌되었건 드디어 우리 글을 가지게 되었으나 얼빠진 이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글을 얕보고 있으며 하물며 우리말은 말할 것조차 없습니다.
한자를 받드는 이들조차도 우리글이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손사래 치지는 못하지만 우리 말을 망가뜨려 놓고는 뒤로는 글조차도 한자를 쓰지 않으면 한글로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우깁니다.

큰나라를 떠받드는 이들은 우선 우리말이 쌍스럽다('俗되다'-이 말은 '널리 쓰이다', '쌍스럽다' 같이 여러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말을 '널리 쓰이다'라는 뜻으로 보다는 '상스럽다'는 뜻으로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리 토박이말이나 사투리에 이렇게 씀으로써 우리 토박이말, 토박이말투는 쌍스럽다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그냥 보통말이며 '춘부장'이라 해야 높임말이라 합니다.
이렇게 우리말을 쌍스러운 말로 만들어놓고는 한자말을 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한자는 그 글자를 늘 쓰는 지나(중국) 사람들조차 어려워 하는 글입니다.
이 한자를 단지 글자로만 우리 글, 한글로 써 놓고는 이번에는 '한자로 써 놓으니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말이나 우리 한글 탓입니까?
제가 지금 딴 나라 말을 오로지 글자만 한글로 적어놓으면 무슨 뜻인지 또렷하겠습니까? '유어는 하우 씽킹하십니까'?
그들은 스스로가 남다르고 남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자를 쓰고 싶어하지만, 한자를 즐겨 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글자로써 한자와 말로써 중국말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 드립니다.)

바로 이 논리가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 영어가 넘쳐나게 하는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말에서 '외래어'라는 얼토당토않은 뜻말을 가져와서는 '외국에서 들여와 국어처럼 사용하는 말'이라고 흐르터분하게 못 박아두었습니다.
'국어처럼 쓰이는 말'? 그렇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조금만 널리 쓰이면 다 '외래어'요 끝끝내는 '우리말'이란 것입니다.(이것은 마치 딴 나라 소도 우리나라에 들여와 여섯 달 이상 먹이고 키우면 우리 소-국내산-라거나, '우리소-한우-도 미국 사료를 먹고 컸으니 우리소-한우-가 아니'라는 말하고 같습니다.)
좀 더 깊이 살펴보자면, 잣대는 이리 고무줄처럼 만들어 놓았으니 그 다음부터는 내 맘대로 정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 한자와 옛날 우리가 마땅히 글자가 없던 때에 쓰던 우리 한자에다가 일본 한자까지 되살려 놓는데에 뜻을 이루긴 했으나...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한자를 즐겨 쓰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그들이 큰나라 글자인, 한자를 살리고 싶어 만들어놓은 잣대가 이제는 다른 큰나라 말인 영어를 살리고 키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긴 세월이 지나 또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힘을 쓸 때가 되면, 큰나라 섬기는 이들은 또 그들 나라 말을 우리말로 받아들이겠지요... 그것이 일본이 될지, 프랑스나 다른 나라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또는 엉뚱하게도 지금은 사는 것이 어려운 나라가 갑자기 커서 큰 힘을 가지게 되면, 지금껏 깔보던 그 나라 말을 또 못 들여와 안달을 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일찌기 '전광용' 님은 이런 자들을 소설 '꺼삐딴리'에서 그리기도 했었지요... 과연 세상은 변했는가요?)

이 즈음에서 '그럼 우리말은 오롯이 되어 온 것이냐'는 딴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말이란 것이 홀로 살아나갈 수는 없습니다. 말이란 것은 늘 다른 말들하고 부대끼면서 바뀌고 섞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긴 세월을 두고 생긴 말들은 그 속에 그 겨레가 가진 얼이 들어있습니다.(이것을 '뿌리 내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터울이 짧아지면서 이제는 말이 얼을 바꿀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쓰는 들온말투, 엉터리 말투(주로 엉터리 번역투)가 우리 얼을 바꿀 처지가 되었고 또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 우리 산과 들에 있는 풀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커 왔겠습니까? 긴 세월을 두고 이 땅에 뿌리내리면서 서로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들어온 풀들은 이렇게 함께 살아갈 힘을 얻기 전에 다른 풀들을 밀어내면서 커 가기에 탈이 되는 것입니다.
말도 바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 얼이 스민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얼을 살리려면 한자를 받드는 이들이 만든 우리말 잣대부터 없애고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빌려 쓴 돈은 결코 내 돈이 아니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듯이, 빌려 쓴 한자는 결코 우리글이 아닙니다.
들온 말은 딴나라 말일 뿐이고 설령 우리가 지금 쓰게 되더라도 잠시 빌려쓰는 말일 뿐이고 우리 말 속에 뿌리 내리면 그때 우리말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듯 엉터리면서도 칼로 자르듯 한 잣대 때문에 '이것이 표준말이네 아니네'하는 쓸데없는 실랑이가 시도때도 없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은 이미 말투조차도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지금도 깨끗이 되돌리려면 애를 많이 써야 겠지만, 더 늦어지면 영엉 되돌리기 어려워 질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지금 이지러진 말투에 더 익기 전에 우리말을 죽이는 엉터리 잣대를 없애고 말 살리는 새로운 잣대를 만드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http://2dreamy.tumblr.com/post/10153230909 에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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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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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우리말은 진짜 우리민족이 만든 말만 넣어야 하는 순수혈통이어야 가치가 있는 걸까요?
    우리말에는 중국대륙쪽에서 한족, 저족, 거란족, 몽고족, 여진족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무지 많죠..
    임란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에서 수입된 말도 많습니다.
    이것도 전부 제거해야 하는 걸까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약간씩 말이 달랐습니다.
    어떤 말을 우리말의 정본으로 삼아야 하나요?
    특히 근대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 만든 한자말을 받아들일수밖에 없었고..
    (왜냐면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했으니깐 나중에 받아들일수 밖에 없어서 그런거지, 단순히 한자말이니 덮어놓고 받들어모신건 절대 아닙니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어의 조어력이 많이 약해져서 영어식 말투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한국민이 주체의식이 없다는게 아니죠..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각국의 언어가 영어에 침투당하고 있는 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일이죠?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했을땐 한문에 언어가 침투당했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존재를 어디까지 봐야 하나요?

    2011.09.13 13:21 [ ADDR : 고침 / 지움 : 댓글 ]
    • 이렇게 생각을 들려주시니 고맙습니다.
      (혹 제 댓글이 좀 다듬어지지 못하고 거칠더라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 글이 너무 길었나요...? 끝까지 안 읽으셨나 보네요...^^;;(더 짧게는 쓸 힘이 안 됩니다.^^;)
      글에 적었다시피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쓰는' 말은 얼마 되지 않는다 봅니다. 들온말이 우리 속에 뿌리 내린 우리말(토박이말)하고 맞부대끼면서 함께 살아갈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했기에 일본 한자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그것은 마치 서양 문명이 뛰어났기에 문명이 뒤진 나라는 문화 침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억지하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자말이기에 무턱대고 받아들였다는 보기(증거)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괜찮으시면 이 얘기는 따로 나누었으면 싶습니다. 저도 다른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현대에 와서 우리말 만드는 힘이 약해'졌다고 하는 것에도 뜻을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말은 그 옛날 우리글이 제대로 없을 때부터,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이 지나(중국) 영향을 받을 때부터 나름대로 커왔고(물론 그러면서 지나나 다른 나라 영향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커 왔겠지요...), 말로써 제 가진 것을 지키려 하는 양반들 등살(양반, 권력층이 쉬운 우리말을 얕보고 힘을 죽이려 한 역사는 세종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지요.)에도 불구하고 어쨋든 살아남아 지금껏 말글살이 힘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라고 하는 큰 턱이 있긴 했지만 사실은 그 뒤를 이어, 한자를 받드는 이들이 우리 나랏말 학계를 꿰차게 된 것이 더 크다 봅니다.(그 속에서 뭇사람들이 주체의식이 없다거나 약해졌다고 볼 만한 뿌리는 딱히 없다 봅니다.)
      끝으로, 저는 우리말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외래어'라고 하는 흐리터분한 잣대를 없애고 말이 스스로 커 나갈 힘을 죽이는 지나친 잣대(엉터리 표준말 규정)를 없애면 많이 좋아진다 봅니다.
      물론 이는 제 생각이며 나랏말 정책은 그 말글을 쓰는 뭇사람들과 전문가들 생각을 고루 들어 정해져야 할 것이지 저나 누구 한 두 사람이 정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하지만 적어도 지금 국립국어원 대부분을 꿰차고 있는 한자를 받드는 이들 입김을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여, 괜찮으시면 말씀하신 알맹이를 가지고 글을 하나 써 보시고 제 글과 엮어(트랙백)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얘기 나눠보면 참으로 재밌을 얘기거리라 생각합니다.(감정만 잔뜩 실어 딴지 거는 글 말고는 이렇게 얘기 나눌 만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요...^^;)

      2011.09.13 17:06 신고 [ ADDR : 고침 / 지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