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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9 [펌]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글
  2. 2011.10.06 [펌]외래어의 개념과 범위
우리말2011.10.09 01:04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글

1. 훈민정음과 한글은 다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스물여덟글자로, 첫소리글자 17개와 가운뎃소리글자 11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글자들을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말소리를 모두 적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글자를 말한다.

동국대학교 변 정용박사가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수열과 조합이라는 수학 공식으로 소리글자의 숫자를 계산하여 보니 약 400억 개의 소리글자가 훈민정음(訓民正音) 속에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소리글자라면 가히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는 모두 표기하고도 남을 정도로 우수한 소리과학이 바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글은 1930년대에 친일파의 소굴인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이 희승과 최 현배 등 친일파 학자들이 조선 총독부의 감시 아래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19개의 첫소리글자와 21개의 가운뎃소리글자 도합 40개의 글자만을 사용하도록 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망가뜨려놓고 이 글자의 이름을 ‘한글’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세종대왕의 창제정신을 말살시키고 만신창이(滿身瘡痍)로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한글’이라는 글자이다.

세종대왕은 앞으로 우리말에 없는 새로운 말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다면 병서(竝書)라는 규칙을 활용하여 쓰도록 비상조치를 마련하여 놓았는데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이러한 우수한 과학성을 알아차린 일본인 학자 오꾸라 신뻬이(小倉眞平)가 일본글자인 가나(五十音)보다 못한 글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규칙을 은폐하고 40개의 자모만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가해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 빌린 말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말조차 올바르게 표기할 수 없는 글자로 전락시킨 것이 바로 ‘한글’이라는 글자이다.

 

2. 외래어(?)라는 것

외래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이다.

‘외래어(?)’라는 학술용어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친일파 학자들이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으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면서 도입한 일본 국문학의 학술용어로서 일제의 잔재이며 우리말로는 빌린 말, 문자(文字)로는 차용어(借用語)라고 바꾸어야할 용어이다.

이 ‘외래어(?)’라는 학술용어의 본고장인 일본 국문학계에서는 ‘외래어(?)’를 자기네 말이 아니라 외국어(外國語)로 정의하고 있고 북한 국문학계에서조차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는데 반하여 유독 우리 국문학계에서만 우리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권위 있는 <겐시엔(廣辭苑)>이라는 일본어 사전에 ‘외래어(?)’에 대한 해설을 살펴보도록 한다.

 

外來語(がいらいご) : 外國語(がいこくご)で, 國語(こくご)に

                   用(もち)いるようになった 語(ご). (398쪽 참조)

 

이것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외래어 : 외국어로서, 국어에 사용하도록 된 낱말.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외래어(?)’라는 어휘의 대전제(大前提)는 <外國語で(외국어이며)>로 일본 국문학계에서는 ‘외래어(?)’를 자기네 말이 아니라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어에서 자기네 말처럼 쓰고 있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는 외국어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코너킥’은 외국어이므로 ice cream은 ‘어름 보숭이’로, corner kick은 ‘모서리 차기’ 등등 우리말로 순화하여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스크림’, ‘코너킥’ 등으로 쓰면서 이것을 우리말이라고 하고 있으니 북한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주체성을 상실한 아주 극심한 사대사상(事大思想)의 나락에 빠져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문학계에서 ‘외래어(?)’를 우리말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외래어(?)와 외국어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base라는 영어발음은 [베이스]인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 따라 표기하면 이것 역시 ‘베이스’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베이스]라고 말하였다면 그 말소리는 영어일까 아니면 우리말일까 하는 것을 구분 지을 수가 없다.

‘뉴스’가 우리말인가? ‘새 소식’이 우리말인가?

우리 국문학계가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새 소식’이 우리말이므로 이것을 사용하라고 언중들을 지도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뉴스’도 우리말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에 ‘뉴스’라는 어휘를 쓰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적기만 그것이 바로 우리말이 되므로 외국어의 말소리가 곧 우리말로 둔갑해버리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우리말은 모두 외국어로 대치될 것이다.

나랏말을 융성 발전시켜야할 위치에 있는 국립국어원장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한국어는 우리 집 안방에서나 쓰는 언어로 전락할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발언을 하게 된 원인도 바로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며 이것들을 우리말이라고 인식하는 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저 유명한 ‘오렌지’발언 사건을 상기해면 그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과 국문학계에서는 ‘오렌지’는 우리말이라고 벌떼처럼 아우성을 치며 야단법석을 친 적이 있다.

‘오렌지’라는 말은 영어 orange의 일본 외래어인 ‘オレンジ(오렌지)’를 이르는 말인데 이것은 일제 때부터 사용해 오던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렌지’는 일제의 잔재인 것인데 이러한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면서 마치 우리말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외래어 표기법> 제5항 때문이다,

제5항의 규정을 보면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일제의 잔재이거나 또한 아무리 잘못된 외래어(?)라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ニュス(뉴스)나 オレンジ(오렌지)와 같은 일제의 잔재가 계속 사용되면서 이것이 일본말이 아니라 우리말로 인식되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비단 ice cream이나 corner kick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바꾸어 놓기만 하면 우리말이 된다는 안일에 빠져들게 하며 민족의 주체성을 망각하도록 만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빌린 말이란 banana와 같이 우리말에 없는 것을 부득이 하게 그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적어서 마치 우리말처럼 써야하는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꼭 써야만 할 경우에는 원산지의 발음을 살려서 [버낸어]와 같이 그 표기법을 통일하자는데 <빌린 말 표기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논문집에서 김 세중이라는 사람은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말이니 만큼 외국어일 때의 발음을 될 수 있는 대로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정신이 외국어 발음을 될 수 있는 대로 가깝게 표기하자는 것이다.”(108쪽 참조)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정신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summer나 badge와 같은 영어의 발음은 [썸멀]와 [밷쥐]이다.

그런데 이것을 [서머]나 [배지]와 같이 실로 엉뚱한 발음으로 표기해 놓고 그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썸멀]나 [밷쥐]는 영어이고 [서머]나 [배지]는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졸지에 “여름”과 “휘장”이라는 우리말은 뒷전으로 밀리고 [서머]와 [배지]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바나나”라는 표기도 “バナナ(바나나)”라는 일제의 잔재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빌린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이다.

 

3. 새로운 글자가 필요한 이유.

빌린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는 그 표기가 정확해야 하며, 그 표기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글자가 발전해야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외국어들이 성난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 말들 속에는 우리 말소리에 없는 소리가 많이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현행 ‘한글’이라는 글자로는 그 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여 우리 말글살이에 커다란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 전에 중앙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김 영봉교수는 조선일보 아침논단에서 ‘패션(fashion)의 피(p)나 아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필이 꽂혔다. 팬에게 감사한다. 포크송을 부르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사람들이 약(pill)에 취해서 냄비(pan)에게 감사하고 돼지고기(pork) 노래를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하면서 일상을 이렇게 듣고 보고 말하며 보내는 아이들이 영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하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이런 불량품이 아니었을 것이니 제발 f자 만이라도 표기할 수 있도록 하자고 이 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의한 적이 있다.

풍자적인 여담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집신 신사와 게다(げた) 신사가 영국 어느 고급 음식점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다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모두 삼지창(fork)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게다(げた) 신사가 시중드는 사람(waiter)을 불러서 “쁘리즈, 부링구 미 아 후오구.”하니까 앞에 앉아있던 집신 신사가 속으로 ‘그것도 영어라고 하나’ 생각하면서 제법 거만한 태도로 “플리즈, 브링 미 어 포크.”라고 말하며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자 시중드는 사람은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조금 있으니 그 시중드는 사람이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큼직한 접시에 돼지고기를 담아들고 와서는 게다(げた) 신사에게는 삼지창을 건네주고, 집신 신사 앞에는 돼지고기 접시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이 풍자극을 음미해 보아도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이 모순덩어리인가를 알 수 있지 않을 까?

 

지금 세계는 전자통신망의 발달로 수십 초 안에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정확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체인 글자의 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정책당국자들이나 국문학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일에 빠져 있다.

오로지 친일파들이 조선 총독부의 감시 아래에서 만들어 놓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외래어 표기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떠받들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말살하고 소위 ‘한글’이라는 이름 아래 40개의 자모만을 쓰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우리말글살이에 커다란 불편을 초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file, fan, vase 등등과 같은 영어를 ‘파일’, ‘팬’, ‘베이스’로 표기하고 발음해야하니까 서양 사람들은 pile, pan, base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노출시키면서 소리 과학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하잘 것 없는 글자로 인식되도록 만들고 있으며 우리들의 말글살이에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불편을 해소하기위해서는 새로운 글자가 필요한데 그 방법은

현행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폐기하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살려서 현실에 맞는 우리말 맞춤법과 빌린 말 표기법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4. 새로운 글자의 선정방법

지금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에 따라 여러 연구가들이 새로운 글자 보급을 위해서 무척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일관된 공통점은 세종대왕을 존경하고는 있지만 막상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대해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 문외한들이다.

30년을 넘게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연구하였다는 어느 노학자(老學者)는 “凡범字자必필合합而이成성音음”이라는, 즉 “모든 글자는 합해져야 소리를 이룬다.”라고 하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과,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의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합자해(合字解)에서 언급된 “初초中중終종三삼聲성, 合합而이成성字자”라 하여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는 합해져야 글자를 이룬다.”라는 아주 기초적인 세종대왕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 시경 선생이 제창하였던 풀어쓰기를 하고 삿갓모양으로 치장하는가 하면, 어느 연구가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일자일성(一字一聲)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늘 “ㆍ”자는 합쳐지는 첫소리글자에 따라 네 가지로 소리를 낸다는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더욱 심한 경우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스물여덟글자와는 전혀 모양이 다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예 콩나물 대가리처럼 생긴 모양으로 만들어서 무슨 악보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글자를 만들어 각양각색으로 세종대왕을 능멸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종교와 연관을 시켜서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든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희극(喜劇)이라 하겠다.

이 사람도 한 때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세종대왕을 능멸한 전과가 있는 전과자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글자를 선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종대왕께서 지으셨다는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다.

“初초聲성合합用용則즉竝병書서”라 하여 “첫소리글자를 합하여 쓰려면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니 이 구절의 숨은 뜻은 새로운 소리에 대한 글자가 필요하다면 첫소리글자를 나란히 써서 하나의 소리글자로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합자례(合字例)에서는 이 규칙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낸 구절이 있는데 “初초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竝병書서”라 하여 “첫소리글자는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며, “中중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이라 하여 “가운뎃소리도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나란히 써라”고 하였으며, “終종聲성二이字자三삼字자合합用용.”이라 하여 “끝소리글자도 두 글자 혹은 세 글자 나란히 써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규칙을 활용하여 [f]에 상응하는 글자나, [v]에 상응하는 글자 또는 [l]에 상응하는 글자를 우리가 결정해서 쓰면 그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큰 뜻을 받드는 일이 되는 것이며 자판을 크게 뜯어 고치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글자 사용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제시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글자에 필요한 활자를 만드는데 대한 사회적 비용 문제이다.

새로운 글자를 사용하려면 활자와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표준 자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므로 그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제일 큰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활자를 만드는 비용문제에 대해서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스물여덟글자만을 병서(竝書)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면 새로운 활자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고 전산기(computer)의 software만 고치면 된다.

그것은 현행 <한글 맞춤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우리말 맞춤법을 만들어 병서(竝書) 규칙을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제도화 하여 그 software를 수정한다면 현재사용하고 있는 자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전혀 필요 없게 된다.

둘째로 새로운 글자가 많이 생겨나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훈민정음(訓民正音)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은 크게 혼란스럽게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물여덟글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갑자기 많은 종류의 새로운 글자가 보급된다면 다소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단계적으로 하나씩 추가하면서 익숙해지도록 한다면 큰 혼란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5. 맺는 말

이 모임의 목적은 우리말 속에 없는 새로운 말소리를 현행 한글이라는 글자로는 표기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 손 전화나 전산기(computer)의 자판을 확장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글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된 여러 학자나 연구가들은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자기의 주장만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과연 어느 방법이 가장 합리작인 방법인가 하는 점을 냉철히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이 모임을 보면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커다란 암 덩어리를 안고 있는 중환자이다.

그 이유는 지금 이 모임에 모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큰 틀에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까?

우리민족은 모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막상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특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망가뜨려 놓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김 영봉 교수 말대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글’과 같은 불량품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말소리를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소리 과학이 바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그러므로 각자 제2, 제3의 세종대왕을 꿈꾸는 허망한 생각을 버리고 이성을 찾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받들어 그 분이 제시한 가르침대로 소리의 보물 곳간에서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글자를 꺼내 쓰는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과 같은 악법을 폐기시키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정신을 되살려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우리말 맞춤법과 빌린 말 표기법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정음 연구회

      회장 최 성철

註: 이 글은 9월 23일에 한글 자판 확장 표준위원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입니다.


* http://cafe.daum.net/rakhy/Jl9g/70 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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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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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10.06 22:13
우리말에서 '외래어'라는 흐리터분한 뜻말을 두고 국립국어연구원(지금은 '국립국어원') 한예연구관이 쓴 멍청한 글이 있길래 옮겨놓습니다.
【특집·외래어와 외국어】

외래어의 개념과 범위

정희원 /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1. 머리말

 

  ‘외국어는 어릴 때 배우는 게 좋다’거나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삼가자’는 말을 하면서 ‘외국어’나 ‘외래어’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외래어와 외국어가 정확히 무엇을 지시하는지 구분해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교과서나 사전에서는 국어 생활 속에 널리 사용되고, 또 바꾸어 쓸 수 있는 적당한 어휘가 없는 경우만을 외래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치킨’이나 ‘키’, ‘루머’ 따위 낱말들은 외래어인가 외국어인가? 국어 단어로 인정된 말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나, ‘닭고기’나 ‘열쇠’, ‘소문’으로 바꾸어 쓰기에도 마땅치 않아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을 보면 ‘외국어’는 ‘모국어’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고,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외국어’는 글자 그대로 남의 나라 말이지만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비롯되긴 하였으나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말이라는 것이다.1)

그래도 여전히 특정 단어가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말’이라는 정의가 우리가 사용하는 외래어의 개념을 제대로 나타내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울 뿐더러 그러한 판단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 리나라의 외래어 연구사를 검토해 보면 의외로 외래어의 정의나 개념 정립에 관해서는 깊이 논의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누구나 다 동의하는 외래어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한 상황에서 표기나 순화 등 실제적인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외래어라는 말의 쓰임을 관찰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거나 위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정의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무의미한 논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의 발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러한 비난은 외래어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엉터리 외래어 표기법 때문에 한국인들이 외국어 발음을 잘 못한다’고 비난을 하면서 외래어 표기에 ‘ㆄ’이나 ‘ㅿ, ᄙ’ 등의 기호를 만들어 쓰자고 주장하는 일이 있다.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외래어 정의에 비추어 보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외래어는 이미 국어의 일부가 된 낱말이기 때문에 철자를 만들어서까지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어사전의 뜻풀이대로 간단히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분 짓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다. 만약 외래어가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어 받아들여진 말들만을 가리킨다면 외래어 표기나 순화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은 사실상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이미 우리말 어휘 체계의 일부가 된 말이라면 굳이 다른 말로 ‘순화’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표기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굳어진 형태를 채택하면 되지 굳이 복잡한 표기 원칙을 따로 만들어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외래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사전적인 정의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상의 혼란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컵라이크(cuplike)’나 ‘톱놋(topknot)’, ‘스월른(swollen)’ 따위의 말들은 국어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 외국어인데도 외래어 표기법에 예시되어 있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에서조차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법의 이러한 태도가 결국 외국어 발음과의 차이를 문제 삼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이 글에서는 우리말 속에서 ‘외래어’라는 용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 용어인 ‘외국어’ 및 ‘차용어’, ‘귀화어’ 등과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종래의 외래어에 대한 정의와 문제점

 

      2.1. 연구 초기의 외래어 개념

 

  어떤 언어든지 다른 언어권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 많은 외래 언어적 요소들이 들어와 쓰이게 마련이다. 우리말은 역사적으로 중국어와 만주어, 몽골어 등에서부터 많은 어휘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 그 말들은 우리말 속에 충분히 녹아들어 더 이상 다른 언어에서 왔다는 의식이 없다. 우리가 흔히 외래어라고 하는 것들은 19세기 말엽부터 서양 문물의 전래와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 말들로, 대개 영어를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의 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외래어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30년대부터 활발히 시작되었다. 1930년대는 기본적인 어문 규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큰사전>을 편찬하는 등 우리말의 기초를 닦는 연구가 활발했던 시기이다.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는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서양 학문의 영향으로 외래어의 사용이 급증했다.4) 그에 따라 외래어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도 높아져 많은 연구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외래어 및 외국어의 남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어 순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외래어의 바람직한 수용 태도에 대한 열띤 논쟁으로 이어졌다. 외래어의 표준 표기법을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협의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외래어 사전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외래어의 개념 정의와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외래어 문제를 다룬 글 속에서 외래어 개념에 대한 당시 연구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935년 <한글> 제3권 6호에 실린 이극로의 “외래어 표기에 대하야”는 외래어 문제를 다룬 최초의 글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 이극로는 1933년 제정된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외래어 표기에 “새 문자나 부호를 쓰지 아니한다”는 원칙을 정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들어오는 때에는 우리화를 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어느 민족의 말에나 외래어를 자기화(自己化)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 있다.” 그가 비록 ‘우리화’나 ‘자기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래어는 외국어와 구분되는 개념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외 래어, 외국어 구분에 대한 좀 더 명시적인 태도는 은무암(1936)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외래어를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 어휘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내세워 무조건 외래어를 배척하고 지나치게 순우리말만을 쓰려고 하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그는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숭상함이 위험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인 것처럼, 남의 것이면 비웃고 내 것이라면 무조건하고 아름답고 우수한 것이라 함도 또한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일이다.”라는 말로 외래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외래어는 될 수 있으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사실은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할 때 간간이 타국말을 섞어 하면 그만 그 섞인 타국말은 외래어가 되는 것인 줄 아는 듯하다. 아니다. 그 타국말이 우리말과 같이 쓰이며 알게 되는 때부터 처음으로 외래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우리는 그가 외래어와 외국어 개념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외국어의 낱말이 외래어의 자격을 얻으려면 우리말 속에서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과 그런 과정을 거쳐 국어로 정착한 외래어는 굳이 다른 말로 바꾸어 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1937년에 출간된 이종극의 『모던조선외래어사전』은 13,000여 표제어가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외래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조선 외래어에 대하야’라는 서문이 실려 있어 당시 외래어 연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사전은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 각종 문헌을 조사하여 사전에 실린 외래어 표제어의 출처를 밝히고 용례를 제시하는 등 체재나 기술 방식이 상당히 과학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 [father: 아버지]’, ‘머, [mother: 어머니]’, ‘허쓰반(드)[husband: 남편]’ 등 외래어라고 하기 어려운 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5) 이종극(1937)은 이미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었던 듯 이 사전이 ‘외래어의 충실한 기록’임을 표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휘의 선택에 있어서는 무사려했다고 할만치 다수를 채록하였다. 그것은 본 사전의 실용 가치를 조곰이라도 더 높이랴는 나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또한 “나는 본서를 우리말 사전 편찬가에게 드리고 싶다. 본서는 물론 조선어사전과 그 사명을 달리하나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외래어는 range로 보나 frequency로6) 보나 완전한 조선어사전에는 반드시 적을 둘만한 말들이 많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그는 외래어 사전의 표제어는 외국어 단어를 마구잡이로 싣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려를 통해서 선정해야 한다는 것과, 그중에서도 사용 범위가 넓고 빈도가 높은 일부 낱말들은 국어사전에도 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기술을 통해 연구자들은 1930년대에 이미 외래어는 외국어와 구분되는 개념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외래어는 국어 어휘의 일부로서 국어사전 표제어로 수록될 자격이 있으며 순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2.2. 외래어 정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초기의 외래어 연구를 계승하여 외래어의 개념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이희승(1941, 1959) 및 김민수(1973)를 들 수 있다. 이희승(1941)은 앞선 연구자들이 막연하게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 지었던 데 반해, 외래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외래어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하였다. 김민수(1973)는 외국어가 우리말에 귀화하는 과정과 관련지어 외래어 개념을 체계적으로 기술하였다. 그 밖에도 배양서(1970), 유구상(1970), 강신항(1983) 등 여러 연구자들이 외래어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대부분 국어사전 식의 간략한 뜻풀이를 받아들인 채 외래어의 사용 실태나 수용 대책, 또는 표기법 고안이나 순화 방안 등 실천적인 연구에 주력하였다. 외래어의 개념이나 범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 두 가지 연구보다 진전된 논의는 없었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이희승(1941, 1959) 및 김민수(1973)의 연구를 통해 국어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져 온 외래어의 개념을 점검해 보고, 그와 같은 정의가 보이는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희승(1941)은 외래어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말이어야 한다고 정의하였다. 첫째, 순수한 외국어가 아닐 것. 둘째, 음운상으로 귀화한 것이라야 할 것. 셋째, 충분히 일반화되었어야 할 것. 이후 이희승(1959)에서는 외래어의 속성을 “본래는 외국어로서 어떤 민족의 언어 사회에 들어가서 상당히 보급된 일, 그 발음이 외국어 발음대로 생소하지 않고, 받아들인 언어 사회의 음운 법칙에 의하여 동화된 일, 따라서 외국어를 모르는 일반 민중이라도 능히 발음도 하고 그 뜻을 이해도 하여, 외국어라는 인식이 조금도 없이 자유 자재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과 같이 특징짓고 있다. 이와 같은 정의는 외국어의 단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더라도 일시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외국어이며,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어 고유어처럼 쓰이는 말이 되어야 비로소 외래어가 된다는 것으로, 오늘날 외래어 정의의 바탕을 이룬다.
  김민수(1973)는 우선 외래어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1) 외래어의 정의(김민수 1973: 103~104)

첫째, 외국에서 들어와야 한다.

둘째, 수입되어야 한다.

셋째, 제 국어 속에 들어와야 한다.

넷째, 사용되어야 한다.

다섯째, 단어라야 한다.
  외 래어가 다른 나라 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부터 다섯째까지의 특징은 외국어로부터 외래어를 구분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속성들이다. 수입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기원이 되는 언어를 떠나 우리말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며, 제 국어 속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은 국어의 어휘들과 함께 국어 문장 속에서 일정한 문법적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국어 생활 속에서 사회적으로 수용되어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어라야 한다는 조건은 본래 언어에서는 문장이나 어구이더라도 국어 속에서는 단어의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외 국어 단어가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닌 외래어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김민수(1973)에서는 다른 나라의 말이 유입되어 섭취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 단계는 외국어라는 인식이 뚜렷한 단계, 둘째는 차차 익숙해지면서 두루 쓰이게 되고 생소한 의식이 없어지는 단계, 나중에는 외국어라는 의식조차 없어지고 우리말로 여기게 되는 단계, 맨 끝 넷째는 국어에 아주 융합되어서 고유어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단계이다. 외래어의 범위는 위와 같은 귀화 과정을 밟아 나가는 단계에 따라 외국어(미조화어), 차용어(조화어), 귀화어(융합어)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외국어는 발음이나 뜻이 다 순 외국어의 모습 그대로 쓰이는 단계의 말이고, 차용어는 발음이나 형태 등이 어느 정도 국어적인 것으로 변화한 것, 귀화어는 외국어라는 특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국어 사회에서 고유어와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쓰이는 말을 가리킨다. 위와 같은 설명 과정을 통해 김민수(1973)는 외래어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도표화한다.
  결 국 김민수(1973)는 ‘외래어’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국어화한 말만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광의의 외래어와 협의의 외래어 개념을 구분한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외래어는 일차적으로 낱말의 기원이 외국어임을 지시하는 말로서 귀화어인 한자어와 차용어(협의의 외래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동화되지 않은 외국어 낱말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것을 그는 광의의 외래어로 정의하였다. 협의의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왔지만 상당히 동화되어 국어의 일부가 된 차용어, 즉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국어사전 식의 외래어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다.
  위와 같은 외래어의 개념 정의는 외래어가 국어사전 식의 정의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차용어의 뜻만 인정하였던 이전까지의 연구보다는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광의의 외래어 개념부터 살펴보자. 외래어를 넓은 의미로 쓸 때에도 귀화어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민수(1973)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귀화어는 이미 오래 전에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의 일부가 된 낱말들이다. 어원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이 본래 외국어 낱말이었음을 알 수가 없다. ‘고무, 부처, 담배, 고추, 절, 붓, 먹’ 따위 낱말들과 한자어가 대표적으로 귀화어로 분류되는 예들인데, 오늘날 이들을 외래어라고 인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도 이 낱말들은 고유어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이런 귀화어를 차용어 및 우리말 속에서 산발적으로 사용되는 외국어 단어들과 함께 묶어 ‘외래어’로 지칭하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부 연구 논문에서 외래어라는 용어를 단지 출처를 중시하는 의미로 쓸 때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광의의 외래어 개념에 외국어를 포함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외국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언중은 보통 우리말 속에 어쩌다 한 번씩 섞여 들어오는 외국어 단어를 외래어와 구분 지어 인식한다.
  협의의 외래어는 국어에 상당히 동화되어 국어의 일부가 되었지만 언중에게 외국어에서 온 말이라는 의식이 있는 외래 어휘들, 곧 차용어를 이른다. 이러한 정의는 은무암(1936), 이희승(1941) 등의 기술을 계승한 것으로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외래어의 개념과 같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정의는 ‘외래어’의 실제 쓰임과는 거리가 있다. 만약 다른 나라 말에서부터 온 단어가 우리말에 들어와서 오랫동안 쓰여 음운이나 형태, 의미 등이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었다면 그들 부류만을 따로 떼어내 그것이 외국어인지 아닌지 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외래어가 진정 국어의 일부라면 그것을 국어생활에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지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일찍이 은무암(1936)에서 지적하였듯이 외래어는 ‘남용’하거나 ‘범람’할 수 없는 것이다. ‘남용’하거나 ‘범람’함으로써 국어의 어휘 체계를 혼란시킬 염려가 있어 ‘정화’의 대상이 되는 외래어는 ‘국어화한 외국어 단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아직 완전한 동화 과정을 거쳐 국어의 일부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말 속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되는, 외국어에서 온 낱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과 관련, 김하수(1999)에서는 외래어를 “국어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거나 국어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배척되고 있는 딴 언어 요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2.3. 외래어와 차용어의 구분

 

  (2)에 있는 김민수(1973)의 어휘 분류표는 용어가 상당히 비경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래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서 개념이 모호하게 된 반면에 ‘차용어’는 협의의 외래어와 같은 개념을 지시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또한 차용어와 외국어의 경계에 있는 낱말들은 적당한 명칭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외래어와 차용어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외래어와 차용어를 새 언어에 동화된 정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이덕호(1980)가 제안한 적이 있으며, 특히 독일어학에서는 두 가지 개념을 명확히 구분한다. 우선 독일어의 연구 사례를 따라, 이 두 가지 용어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적으로는 독일어에서 ‘Lehnwort(차용어)’보다 ‘Fremdwort(외래어)’라는 용어가 먼저 생겨났다. Fremdwort는 ‘fremd(외래의, 외국의)’와 ‘wort(낱말)’가 합성된 말로 처음에는 외국어로부터 독일어에 수용된, 의미를 알 수 없는 낯선 단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외래어들이 점차 독일어에 동화됨에 따라 일부 외래어들은 고유어와 마찬가지로 언중에게 익숙하게 되었고 익숙해진 외래어를 가리킬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래어 개념을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기 위해 ‘Lehnwort’(lehnen 빌리다+wort)란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외래어란 표기법이나 발음에서 독어에 아직 동화되지 않은, 혹은 부분적으로만 동화된 외래 단어들을 가리키고, 차용어는 음운, 표기, 어미변화 등이 독일어에 완전히 동화되어 외관상 더 이상 순수 독일어와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단어들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차용어(Lehnwort)는 모국어화한 외래어다.7)   김원(2003)은 외래어 규정에 있어서 언중의 평가를 중시하는 폴란트(Volland, 1986)를 인용하여 외래어와 차용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3) 독일어에서 외래어와 차용어의 구분(김원 2003a: 518)

 통시적 분석의 결과
 (기원)
 모든 자질을 포함하는
 공시적 분석
 범주
 fremd (외래의)
 fremd (외래의)
 heimisch (고유의)
 heimisch (고유의)
 fremd (외래의)
 heimisch (고유의)
 heimisch (고유의)
 fremd (외래의)
 Fremdwort (외래어)
 Lehnwort (차용어)
 heimisch Wort (고유어)
 Pseudo-Fremdwort (유사외래어)
  위 의 도표에서 폴란트(Volland, 1986)는 외국어에 기원을 둔 낱말이 언중에게 낯설게 느껴질 때는 외래어이고 익숙하게 느껴질 때에는 차용어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낯설다는 판단은 어떤 기준에 따라 하는가? 최경은(1994)은 뮐러(Müller) 등의 논의를 종합하여 동화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을 정서법상의 특징, 음운 음성학적 특징, 문법 어형론적 특징, 의미 어휘론적 특징의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외국어 단어가 독일어에 들어오면 철자나 발음, 강세 따위가 독일어 식으로 변화하고, 성·수·격 등 독일어의 문법적 특징을 부여받거나 독특한 어휘 의미를 획득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동화 과정을 겪은 어휘는 더 이상 낯설지 않으므로 차용어가 되고, 동화되지 않은 어휘들은 여전히 외래어로 분류된다.
  우리는 차용어와 외래어의 이러한 구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국어학에도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사실 외래어라는 용어가 ‘국어에 동화된 외래 어휘’에서 벗어나 다른 대상을 가리키게 된 데에는 아직 완전히 국어화되지는 않았으나 고유어와 미묘한 의미 차이를 가지고 널리 쓰이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도 이들에게 적당한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민수(1973)에서 보았듯이 외국어 단어가 우리말 어휘가 되기까지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게 마련인데, 동화의 과정 중에 있는 많은 어휘들을 무시한 채 외국어와 외래어로 단순히 구분한 것이 ‘외래어’의 지시 대상을 확대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외래어 개념의 재정의

 

  이제 위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여 외래어의 개념을 새로 정립해 보고자 한다. 외래어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와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로 정의되어 왔다. 외래어는 곧잘 외국어와 비교하여 기술되었는데, 외국어와 외래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외래어는 국어화한 말이며 외국어는 그렇지 않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임홍빈(1997)에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 짓는 기준으로 제시한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쓰임의 조건은 우리말 문맥 속에서 널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담화에 한두 번 사용되고 말거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널리 쓰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동화의 조건은 외국어가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의 특징을 지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화는 대개 음운, 문법, 의미의 세 가지 면에서 이루어진다. 음운상의 동화는 외국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 쓰일 때 그 발음이 우리말 소리로 대치되는 것을 말한다. 영어의 [f]나 [r] 소리가 우리말에서는 ‘ㅍ’, ‘ㄹ’ 소리로 바뀌는 것을 들 수 있다. 문법 면에서의 동화는 원어에서 가졌던 성, 수, 격, 호응 관계 등의 기능이 없어지고 우리말에서 새로운 문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어에서 단수와 복수를 구별해서 쓰는 ‘shirt’가 국어에서는 항상 복수 형태인 ‘셔츠’의 형식으로만 사용된다든가 외국어 단어가 우리말에서 형용사나 동사 구실을 할 때에는 항상 ‘-하다’ 형태로만 사용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의미 면에서의 동화는 우리말 속에 들어와 그 고유한 의미가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국어에서 ‘boy’가 식당이나 호텔의 종업원을 뜻하거나 ‘madame’이 술집이나 다방의 여주인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화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외 래어 개념을 엄격하게 정의하는 시각에서는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을 모두 갖춘 부류만을 외래어로 인정하고 그 밖의 것들은 ‘외국어’로 분류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외래어로 인식하는 어휘들은 국어로 굳어진 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 국어 속에 널리 쓰이기는 하나 동화의 과정을 완전히 거치지 못한 것들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오히려 해당 고유어나 한자어가 있는데도 국어 생활 속에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순화 대상이 되는 어휘들에 초점이 놓이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갭, 와인, 리더, 보스’ 따위 말들은 흔히 사용되기는 하나 영어 단어의 뜻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의미 분화가 아직 완전히 되지 않아 국어 어휘로 보기는 어려운 말들이다. 이러한 낱말들은 종전의 정의에 따르면 외국어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외래어로 인식된다.
  김문창(1989)에서는 우리말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사용되는 외래 어휘들의 사용 실태를 조사하여 제시한 바 있다. 그의 조사 결과를 일부 보이면 아래와 같다.

(4) 국어와 외국어8) 사용 비율(김문창 1989: 646~647)


 감각           16%  84%        센스  상자             13%  87%            박스
 색안경        12%  88%        선글라스  열쇠             17%  83%            키
 공책            4%  96%        노트  탁자             18%  82%            테이블
  위 의 표에서 보면 같은 뜻을 가진 말 중에서 ‘외국어’의 사용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 현실을 무시하고 ‘공책’보다 수 십 배나 더 많이 사용되는 ‘노트’를 국어 생활과는 상관없는 외국어 단어라고만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민수(1973)에서 외국어는 발음이나 의미가 다 순 외국어의 모습 그대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바 위의 단어들은 그러한 외국어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위에 예시된 단어들은 국어에 아직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부 동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외국어의 발음이 우리말의 소리로 대체되었으므로 음운적으로는 완전히 동화되었다. 우리말 문장 속에서 명사 구실을 하며 자유자재로 사용되므로 문법적인 동화도 이루어졌다. 다만 같은 뜻을 가지는 낱말이 이미 국어 속에 있다는 점 때문에 국어 어휘로 인정받지 못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말들의 쓰임을 살펴보면 미세하지만 의미적인 분화도 상당히 진행되는 중이다. ‘열쇠’와 ‘키’를 비교해 보면 ‘키’가 지시하는 범위가 더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는 주로 자동차 열쇠를 가리키고 현관이나 방문 열쇠의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나, 책상이나 옷장 같이 비교적 작은 물건을 여는 열쇠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널리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동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예비 차용어’ 범주에 속하는 낱말들을 무조건 외국어라 하여 배척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무 엇보다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의 개념에는 아직 우리말 속에서 그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이러한 어휘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외래어라는 용어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일치시켜 정의하려면 국어로 굳어진 낱말뿐만 아니라 동화 과정에 있는 외래 어휘들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5) 외래어, 차용어, 귀화어의 구분

  외국어 어원 널리 사용됨 동화 과정 완료 언중의 외국어 인식
외래어 ±
차용어
귀화어
  외 래어, 차용어, 귀화어는 모두 외국어에서 와서 국어 속에 널리 사용되는 낱말들이다. 그중에 국어에 완전히 동화되고, 또 일반인들에게 외국어에서 온 말이라는 의식이 없이 고유어와 똑같이 취급되는 말들은 귀화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언중이 외래 어휘임을 인식하는 나머지 낱말들은 모두 외래어이다. 그들 중에 동화 과정이 완료되어 국어의 어휘 체계 속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말은 따로 차용어라는 말로 구분해서 지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리하였지만 특정한 낱말이 외국어인지 외래어인지, 또는 차용어인지를 실제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화의 조건’과 ‘쓰임의 조건’이라는 기준이 명백하게 제시되었으므로 이 기준에 비추어 판정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때 해당 어휘가 ‘쓰임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지는 문헌과 면접 조사를 포함한 실태 조사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조사를 통해 각 세대와 계층에 두루 사용되는 외래 어휘들은 ‘예비 차용어’의 개념으로 외래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의미 분화 등 동화 과정을 거쳐 우리말 어휘의 일부가 된 것들은 다시 차용어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차용어로 인정되면 국어사전 표제어로 실리게 될 것이며, 국어 순화의 대상에서는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강신항(1983), ‘외래어의 실태와 그 수용 대책’, “한국 어문의 제문제”, 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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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립국어원' - '자료마당'에 있는 정기간행물 중에서 '새국어생활' 제14권 2호, 2004년 여름호에서 뽑은 내용
* http://blog.naver.com/36hjs/150031446515 에서 다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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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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