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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18 호텔과 동거하는 원구단의 기묘한 이야기
세상 보기2004.10.18 00:00
호텔과 동거하는 원구단의 기묘한 이야기
[오마이뉴스 신병철 기자]
▲ 원구단 황궁우의 모습. 호텔 숲속에 갇힌 대한제국의 상징
ⓒ2004 신병철
서울에는 유적이 참으로 많다. 역사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롯데백화점 뒷거리 조선호텔 옆에 원구단이 있다. 아니 원구단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왜냐하면 원구단의 몸체를 비롯한 대부분은 헐어지고 지금은 황궁우와 3개의 석고 등 일부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변은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프레지던트 호텔, 웨스턴 조선 호텔 등 높은 호텔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어, 황궁우는 제 품격을 잃고 연약한 조선 말기 흔적으로 숨어 있다. 관심없는 사람들은 이 황궁우를 알 턱이 없다. 조선호텔의 정원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 호텔 정문에서 보는 원구단 황궁우. 호텔의 정원처럼 느껴진다.
ⓒ2004 신병철
원구단은 고려 때까지 국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단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스스로 황제가 아닌 제후국으로 자처하는 가운데서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 임금이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황제라 칭하면서 다시 생겨났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 임금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원구단에서 하늘에 알리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 원구단의 원래 모습. 원구단에서 황궁우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2004 구한말사진자료
이 원구단은 3개의 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맨윗단은 원뿔 모양의 덮개로 덮여 있었다. 겉으로만 내세운 칭제건원이었지만, 천제단인 원구단은 황제의 격에 맞춰 상당히 위엄있게 지었던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남별궁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외자주성 특히 중국에 대한 자주성을 표방하는 칭제건원을 알리는 원구단이 임진왜란 뒤 중국사신을 접대하는 곳에 자리잡았음은 당연하기도 하였다.

▲ 남별궁 표지석과 글. 남별궁은 중국 사신이 머물던 곳이었다.
ⓒ2004 신병철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자주성을 상징하는 원구단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온전할 수가 없었다.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헐어내고 당시로서는 매우 호화스러운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다. 이 호텔은 뒤에 반도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전국 각 지역과 연결되는 철도 정거장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원구단을 헐고 온갖 잡사람들이 객고를 풀고 가는 호텔을 지었다.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깡그리 몰각시키고 나아가 욕보이는 효과까지 얻어냈던 것이다. 반도호텔은 해방 뒤 미군정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가, 1968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웨스턴 조선호텔 건물이 들어섰다.

▲ 일제시대 철도호텔. 일제는 원구단을 헐고 호화로운 철도호텔을 지었다.
ⓒ2004 구한말 사진자료
원구단은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천신의 신위를 모시던 황궁우(皇穹宇)와 3개의 돌북(石鼓)만 남아 있다. 호텔 숲에 둘러싸여 있는 이 황궁우는 아는 사람에게 항상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이곳에서 제법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돌북 3개이다. 조선 말기 용의 꿈틀거림이 생동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보기에 좋다.

▲ 원구단 돌북(석고). 모양과 용 부조가 아름답다.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서 이곳에 세웠다
ⓒ2004 신병철
웨스턴 조선호텔과 황궁우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숨통이 막힐 듯하다. 원구단에서 황궁우로 들어가는 3개의 출입문이 있다. 황제만이 가마를 타고 중앙문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 계단 중앙에 황제를 상징하는 답도가 보인다.

그 문을 통해서 황궁우가 아주 멋있게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은 조선호텔 1층의 프랑스 요리 식당에 들어가야 잘 보인다. 황궁우는 조선 호텔의 눈맛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정원으로 격하되고 만다.

▲ 원구단에서 황궁우로 들어가는 문. 답도와 소맷돌로 보아 국왕 전용인듯 하다.
ⓒ2004 신병철
아마도 웨스턴 조선 호텔은 황궁우의 이런 모습을 충분히 잘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황궁우가 호텔의 한 정원쯤으로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닌 듯싶다. 호텔이 지금의 원구단이란 말인가? 원구단에 자리 잡은 호텔은 황궁우와 완전히 동거하다시피 하고 있다.

▲ 황궁우 문과 호텔의 동거. 어울리지 않은 두 건물이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다.
ⓒ2004 신병철
황궁우는 몸체는 8각형이고 3층의 지붕을 가진 정자 형태의 건물이다. 천신과 지신 그리고 국왕의 신위를 모신 곳인 만큼 당시로서는 최고의 치장을 갖추고 있다. 기단의 넓이와 높이 그리고 1, 2층과 2, 3층의 지붕 높이가 적당히 차이가 나서 세련된 균형을 이룬다. 익공식의 공포들을 기둥 사이에 배치하여 적당한 화려함도 유지하고 있다. 드물게 보는 조선 후기 건축물 중의 하나다.

▲ 문에서 본 황궁우의 세련된 모습. 기단과 팔각의 몸매에 3층의 지붕이 어울리는 조선말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2004 신병철
황궁우의 가장자리 석재물과 바로 연결된 호텔의 기계장치들이 지하에서 전율을 일으키고 있다. 아예 황궁우 경내(사실은 황궁우 경내인지 호텔 소유지 안에 황궁우의 일부가 있는지 모른다)에 호텔 시설물이 엉켜 있다.

▲ 원구단 황궁우와 웨스턴 조선 호텔. 억지로 맺은 인연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을까.
ⓒ2004 신병철
근현대 우리 역사는 우리 문화유산을 제대로 돌볼 기회를 주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가 그러했고, 먹고 사는 데만 온 힘을 쏟아부었던 60∼80년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해방 후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해도 너무했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호텔과 원구단 황궁우의 동거를 중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이 들면 돈을 들여서라도 제 모습을 좀 살려내야 할 것이다. 호텔 숲 속에서 온갖 기계 소리에 파묻혀 신음하고 있는 원구단이 불쌍하다. 원구단이 당장 어려우면 황궁우만이라도 살려내자. 대한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말할 수 있게 생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가끔 찾아가 보는 사람들에게 원구단은 원망스런 눈초리로 힘없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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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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