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를 버리다니, 차라리 키우질 말든지" | ||||||||||||||||||||||||||||||||||||||||||||||||||||||||||||
[오마이뉴스 박병춘 기자]
5일 오전, 복도를 거쳐 교무실에 온 한 선생님이 놀란 어투로 말한다. 학교가 산자락에 위치한 터라 그 전에도 가끔씩 운동장이나 교실 복도로 버려진 개가 시커먼 굴뚝에서 나온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한꺼번에 두 마리나 나타나 복도 신발장에 터를 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작가 김훈의 장편소설 <개>를 읽은 지 한 달. 내 아내는 이틀에 걸쳐 읽었고 중3 딸내미와 나는 단 하룻만에 읽었다. 주인공 보리는 진돗개다. 그 개는 인간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산다. 산촌에서 어촌으로 이동하기까지, 그리고 어촌에 정착하면서 부딪치는 보리의 일상사가 사람의 심리로 묘사된다. 우여곡절 끝에(첫 번째 개는 아들 녀석이 침대에서 놀다가 발을 헛짚으면서 밟아 죽었고, 이어 구입한 개는 홍역으로 죽었으며. 지금 키우는 개는 세 번째다) 애완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김훈의 소설 <개>는 큰 영향을 주었다. 틈만 나면 개와 대화를 한다. 분명히 개는 말귀를 알아듣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119는 작은 애완견이라고 하니까 관할 구청이나 경찰서에 전화하란다. 관할 구청에 전화를 했다. 애견보호소를 알려준다. 애견보호소 관계자와 통화한다. 상황 및 위치 전달 완료. “꼭 붙잡아 놔야 해유. 신고 받고 가믄 개가 없어져서 허탕 칠 때가 많으니께 꼭 잡아 놔유.”
‘설마 보신탕집 주인은 아니것지?’ 한눈에 보아도 선량해 보이는 아저씨와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어본다. - 한 달에 몇 마리나 버려진 개를 데려 가시나요? “적게는 열댓 마리, 많을 때는 스물 댓마리까장 갖고 오쥬.” - 그렇게 가져간 개는 어떻게 보호되나요? “갖고 오자마자 사진을 찍어유. 그리고 구청 홈페이지에 주인을 찾는 광고를 내지유.” - 버려진 개를 찾아가는 사례는 있나요?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찾아가지 않쥬” - 그럼 상태가 좋지 않은 개들은 어떻게 합니까? “약은 좀 쳐 주지만 젤루 안 고쳐지는 게 피부병이쥬. 그리고 이것저것 치료해서 안 되믄 수의사와 구청 직원 입회하에 안락사를 시켜유. 그리고 냉동처리해서 저기 저 멀리 보내서 묻는 거쥬.” - 현재 키우고 있는 개는 몇 마리나 됩니까? “지금 한 오십 마리 있쥬.” - 버려진 개를 데려 오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두 그렇지, 지들 식구를 버리는 것과 똑같유. 차라리 키우지를 말든지.” - 왜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나두 개를 몇 마리 키우는디 그렇게 이쁠 수가 없슈. 양봉도 하고 농사도 짓는디 어느 날 구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래저래 공무원들이 바쁘다고 얘기 허길래 내가 해보 것다고 했쥬. 해보니께 좋네유. 허허허”
유창복 기자가 쓴 ‘원망! 불안! 공포, 이 개들을 보세요’, 개 식용 반대 퍼포먼스 기사를 다시 본다. 작가 김훈의 소설 <개>를 떠올린다. 내가 키우고 있는 애완견을 쓰다듬는다. 애견보호소 아저씨 말씀이 생각난다. ‘지들 식구를 버리다니 차라리 키우지를 말든지.’ /박병춘 기자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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