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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5 [명상강론]초심자를 위한 제안
삶의 양념2004.11.15 00:00

[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라. ]
명상법을 시도할 때에는 전화코드를 빼놓아라. 그리고 문에는 "명상중이니 한 시간 동안 아무도 노크하지 마시오."라고 쪽지를 써놓아라. 명상하는 장소로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어라. 그대는 신성한 곳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신발뿐만 아니라 그대를 점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벗어놓아라. 신발과 더불어 모든 것을 내려 놓아라. 그리고 아무 것에도 점유되지 않은 내면으로 들어가라.
하루 스물 네 시간 중에 한 시간을 택하라. 스물 세 시간은 그대의 욕망, 생각, 야망, 투영 등에 내어주고 나머지 한 시간을 택해서 명상하라. 그러면 나중에 그대는 삶 중에서 그 한 시간만이 진짜이며 나머지 23 시간은 순전히 낭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직 그 한시간만이 가치있게 활용된 것이며 그 외에 나머지 시간은 쓸데없이 낭비된 것이다.

 
적당한 장소.
명상을 배가시키는 장소를 물색하라. 가령, 나무 밑에 정좌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극장앞이나 기차역에 가서 앉지 말고 자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라. 산이나 강, 나무 등 도(道)의 흐름이 살아있는 곳, 도가 고동치고 진동하는 곳을 찾아가라. 나무는 끊임없는 명상 상태에 있다. 나무는 무의적으로나마 명상 중에 있다. 그러나 나는 나무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붓다가 되어야 한다! 붓다는 나무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는 나무만큼 신선하며 나무만큼 생명력이 넘친다. 그는 나무만큼 축복 속에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나무는 무의식적이지만 붓다는 의식이 깨어있다. 나무는 무의식적으로 도(道) 안에 있지만 붓다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도(道) 안에 있다. 이것은 커다란 차이점이다.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점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나무 곁에 앉아라. 새들이 노래하고 공작새가 춤추고는 곳, 강물이 흐르고 폭포의 음악소리가 연주되는 곳.....
오염되지 않은 자연 환경을 찾아가라. 그러나 그런 장소를 찾기 힘들다면 문을 걸어잠그고 방 안에 앉아라. 집 안에 명상을 위한 특별한 방이 있으면 더 좋다. 아주 작은 구석방이라도 괜찮지만 특별히 명상을 위한 방이라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종류의 행동은 고유의 진동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한 장소에서 명상만을 한다면 그 곳은 명상적인 진동으로 가득차게 된다. 날마다 지정된 장소에서 명상을 하면 그 곳은 그대의 진동을 흡수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그 진동이 다시 그대에게 돌아온다. 이렇듯 그 진동은 그대에게 답례함으로써 명상에 도움을 준다.
진정으로 명상가가 된 사람, 명상이 깊어진 사람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극장 안에서도 기차역에서도 명상할 수 있다. 나는 15년 동안 인도전역을 돌며 계속 여행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차,비행기, 또는 차 안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은 아무 차이점도 만들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아무 것도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초심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나무가 뿌리를 내린 다음에는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상관없다.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그것은 나무를 더 튼튼하게 한다. 그러나 나무가 아주 어리고 연약할 때에는 어린아이나 소 한마리만 지나가고 위험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무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육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육체를 잊었을 때 그대는 편안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육체를 의식하게 되면 그대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의자 위에 앉든 바닥에 앉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몸이 편하지 않으면 육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지복을 염원하기가 힘들다. 육체라는 첫번째 층에 모자른 점이 있으면 다른 모든 층이 닫혀버린다. 진정으로 행복과 지복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행복해지는 것으로 시작하라. 내면의 희열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육체의 편안함이 필수적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로 시작하라.
나는 처음부터 좌법(坐法)으로 시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작하기 용이한 곳에서 시작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하게 많은 문제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일들까지.
좌법으로 시작하면 내면에 많은 동요를 느낄 것이다. 그냥 앉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동요한다.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마음이 인지될 뿐 그 외에는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절망을 가져온다. 그대는 좌절할 것이며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대 자신이 미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좌정에 들려고 일심으로 노력한다면 그대는 정말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미친 사람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다만 그들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법을 취하면 그대는 내면에 엄청난 광기가 들끓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 상태로 좌법을 계속하면 진짜 미쳐버릴지도 모를 정도로이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수없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나는 절망이나 좌절,슬픔을 낳을 소지가 있는 것, 자신의 광기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권하지 않는다. 그대는 내면의 이 모든 광기를 의식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금씩 점차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좋다. 안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앎을 흡수하는 능력이 성장하는 정도에 맞추어서 서서히 알아가야 한다. 나는 좌법이 아니라 그대의 광기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그대의 광기를 허용한다. 미친듯이 춤추면 그 반대의 일이 내면에 일어난다. 광기어린 춤을 춤으로서 그대는 내면의 침묵 공간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반면 조용히 앉아 있으면 그대는 자신의 광기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자각의 포인트는 항상 반대쪽에 있다.
미친듯하고 혼란스러운 춤, 울부짖음, 격렬하고 혼란된 호흡을 통해 나는 그대의 광기를 허용한다. 그러면 그대는 내면 깊은 곳의 지묘란 지점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 지점은 주변의 광기와는 대조적으로 고요함과 침묵이 존재한다. 그대는 큰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대의 중심에는 내적인 침묵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좌법을 취하고 있을 때에는 내면의 그대는 미칟광이이다. 그대는 표면적으로는 침묵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미치광이이다.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것, 활기차고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내면의 고요함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고요함이 성장할수록 좌법이나 와법을 행할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이다. 정적인 명상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것이다.
움직임이 있는 활동적인 기법은 다른 면에서도 도움을 준다. 즉 정화(淨化,catharsis)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좌법을 취하고 있을 때 그대는 욕구불만에 싸인다. 마음은 움직이기를 원하는데 그대는 가만히 앉아있다. 근육이 뒤틀리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대는 스스로 자연스럽지 않은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 그대는 강요하는 자와 강요당하는 자로 분열된다. 그리고 강요당하는 쪽이 더 진실한 부분이다. 억압하고 있는 부분보다는 억압당하는 부분이 마음의 더 주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언제나 주요한 부분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대가 억압하고 있는 것들은 내버려야 할 것들이다. 억압할 것들이 아니다. 그대가 계속 억압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그대 안에 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명사회, 양육환경, 교육조건 모두가 억압적이다. 그대는 수많은 것을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교육환경, 좀더 의식적인 교육환경과 더 지각있는 부모들이 있었다면 아주 수월하게 내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음의 메카니즘(mechanism)에 대해 더 많이 자각하고 있었다면 사회는 그대로 하여금 많은 것을 내버리도록 허락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화를 내면 우리는 "화내지 마."하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화를 억누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순간에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었던 것들이 영구적인 것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제 아이는 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않지만 계속 분노를 간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내면에 너무나 많은 분노를 쌓아두고 있다. 그것들은 단지 지나가는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만일 분노가 억압되어 있지 않다면 계속해서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분노는 순간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오고가는 것이다. 그 분노를 표현해내면 그대는 더 이상 분노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같으면 아이가 더 진실하게 화를 내도록 허락했을 것이다. 분노를 억누르지 말라. 화를 내라. 그러나 거기에 휩쓸리지는 말라.
물론,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화를 내라."고 말하면 그대는 어떤 인물을 상대로 화를 표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유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아이에게 베개를 주고 "베개에 대고 화를 표출하라. 베개를 갖고 난폭하게 대하라."고 말하라. 아이를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가르쳐라. 분노가 간단하게 떨어져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그에게 어떤 물건을 건네주고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그 물건을 집어던지게 하라. 그러면 수분 또는 수초 내에 분노가 사라질 것이다. 내면에 분노가 쌓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분노, 성욕, 폭력, 탐욕 등 온갖 것들을 내면에 쌓아왔다. 이렇게 축적된 것들은 광기가 된다. 그 광기는 그대의 내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단순한 좌법처럼 억압적인 명상으로 시작한다면 그대는 이 모든 광기를 억누르고 잇는 것이다. 그대는 이 광기가 해방되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정화(catharsis)로 시작한다. 먼저, 억압된 모든 것들을 허공중에 내던져라. 분노를 허공 중에 내던질 수 있을 때 그대는 비로소 성인이 된 것이다.
만일 그대 홀로 있을 때에 사랑으로 충만할 수 없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면 그대는 아직 성숙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사랑조차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 누군가 상대방이 있어야만 사랑을 느낀다면 그 사랑은 매우 표피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대 깊은 곳의 본성이 아니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 사랑으로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 사랑의 질은 깊은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대 존재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의존하는 정도가 덜할수록 그대는 더 성숙해진다. 홀로 화를 낼 수 있다면 더 성숙한 것이다. 그때에는 화를 낼 대상이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에 정화의 과정을 필수적인 것으로 도입한다. 그대는 어떠한 대상도 의식하지 허공 중에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화를 내고싶은 특정인물을 상정하지않은 상태에서 화를 내라. 아무 이유도 찾으려 들지 말고 그냥 울어라. 웃을만한 이유를 찾지말고 그냥 웃어라. 그러면 그대 안에 축적된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일단 이 방법을 알면 과거의 짐 전체를 덜게 될 것이다. 단 몇 초만에 평생의 짐을 내던질 수 있다. 지금까지 윤회해오면서 쌓여온 수많은 짐도 순식간에 내던질 수 있다.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내면의 광기가 터져 나오도록 허용한다면 잠깐 사이에 내면을 말끔하게 청소할 수 있다. 이제 그대는 산뜻하게 청소되었다. 새롭고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났다. 이젠 그러한 순진무구함 안에서 좌선을 행할 수 있다. 좌법이든 와법이든 어느 것이나 가능하다. 이제는 좌선을 방해하는 내면의 광기가 없기 때문이다.
청소작업, 정화의 과정이 제일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법을 하든 좌선을 하든 요가좌법(asana)을 하든 그대는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아주 이상한 현상이 있다. 모든 것이 밖으로 내던져지도록 허용하면 저절로 좌법이 일어날 것이다. 저절로 아사나가 취해질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발적인 현상이다.
정화로 시작하라. 그런 연후에야 훌륭한 어떤 것이 그대 안에 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전혀 다른 특성,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지닐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것이 될 것이다.
침묵이 제 스스로 그대를 찾아온다면 그 침묵은 가짜가 아니다. 그 침묵은 그대가 인위적으로 길러낸 것이 아니다. 침묵이 제 발로 그대를 찾아왔다. 저절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대는 자신의 내면에서 그 침묵이 성장해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엄마가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느끼듯이.
예전에 명상 캠프를 지도할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날마다 호후가 되면 명상캠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오여 앉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아무런 금지사항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내뱉을 수 있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었다. 그 자리에는 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심각하고 근엄한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어리석은 짓을! 어떤 사람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힘껏 혀를 빼물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그는 평소에는 근엄하기 그지없는 경찰서장이었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그는 날마다 내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한다. 그는 아메다바드(Ahmedabad)에서 온 부호(富豪)였다. 그리고 그는 주식투자로 사업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전화통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한시간 짜리 명상이 시작되면 2,3분 안에 수화기를 집어드는 시늉을 했다. 그는 다이알을 돌리고 "여보세요?"하고 말한 다음에 "즉시 그 주식을 매입해!"하고 외치곤 했다. 그의 얼굴표정은 마치 상대방으로부터 대답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동안 명상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며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으며 가끔씩 나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하고 되묻곤했다. 그러나 나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절대 웃어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다시 전화를 걸면서 말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모두가 자기 일에 푹 빠져 있단 말이야!"
천 명의 사람들이 제 각기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그들의 마음 속에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참으로 그것은 장관이었다.
아부산(Mount Abu)의 명상캠프는 자얀티브하이(Jayantibhai)가 진행 책임을 맡곤 했다. 그런데 그의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이 옷을 전부 벗어던져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경악할 일이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자얀티브하이는 그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옷을 벗어던진 그 친구는 아주 근엄하고 부유한 신사였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망발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곧 이어 그는 자동차를 밀기 시작했다. 그 차는 자얀티브하이의 자가용으로 내가 그 장소로 갈 때 타고갔던 차였다. 우리의 명상캠프는 산속에서 개최되었고 바로 앞은 수천길의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그 근엄한 신사가 발가벗고 자동차를 밀고 있었다.
자얀티브하이가 내게 물었다.
"이 노릇을 어쩌지요? 그는 차를 부숴버릴려고 합니다. 그가 제차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반대편에 가서 차를 밀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래서 자얀티브히이가 자동차 앞을 막고 버티자 그의 친구는 여기 저기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놈아, 나를 막지 마! 나는 늘 이 차가 싫었다구!"
자얀티브하이의 그 차는 수입 외제차로 순전히 나를 위해 보관하고 있는 차였다. 나는 1년에 서너번씩 아부산을 찾곤 했는데 그때마다 자얀티브하이가 나를 태워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친구는 외제차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몇몇 사람이 사태가 심상치않은 것을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로막자 그는 오기가 발동했는지 내 앞의 작은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그는 벌거벗은 채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나무를 마구 흔들어댔다. 밑에 모여있는 사람들 위로 나무가 쓰러질지도 모를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자얀티브하이가 내게 "이젠 어떻게 해야합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그는 그대의 친구이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밑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분산시켜라. 그리고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그냥 내버려 두라. 지금 그는 그대의 차를 부수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뼈가 부러지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밑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흩어지자 그도 행동을 중단하고 나무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명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자얀티브하이가 말했다.
"이봐,이제 그만 내려오라구. 명상이 끝났단 말일세."
그러자 그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으며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잽싸게 나무 위에서 내려와 옷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하고 당확해했다. 밤이 되자 그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명상입니다! 제가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었습니다. 또 차를 부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자얀티브하이와 친한 친구이고 눈꼽만치도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하지만 제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저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가 수입외제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싫었으며 당신께서 이 곳에 올때마다 그의 차를 이용하는 것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제가 나무 꼭대기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제 마음 속에 엄청난 폭력이 숨어 있었나 봅니다. 저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명상은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그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명상을 통해 사람들은 릴랙스되었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머리 속에 들어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무엇을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으려면 무제한적으로 표출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작은 실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그대들은 앞으로 더 많은 일과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모든 것이 해소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 것과 파괴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을 명심하라. 그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내뱉아라.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그대가 원하는대로 하라. 지금까지 그대가 긁어모은 모든 것을 해소시켜라."
그러나 이 세상은 이상한 곳이다. 라자스탄(Rajasthan)의 주정부는 의회에서 내가 아부산에서 명상캠프를 열수 없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들은 이미 명상캠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소문을 들은 터였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거의 미치광이가 되었으며 온갖 짓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명상법을 중단시켜야 했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아부산의 명상캠프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회의 정치가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마음 속에 무엇이 억눌려 있는지, 어떻게 그것들을 해소시키는지, 어떻게 그것들을 태워 없애버리는지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 출처 : 명상나라(내용: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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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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