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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주 5일제, 산(山)은 쉴 틈이 없다

밟히고…파이고…풀한포기 날 틈 없는 등산로


식목일… 그러나 산은 울고 있다. 국내 직장인들의 삶에 쉼표를 찍어준 주5일 근무제.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은 전국 산간지대의 등산로에는 악몽이나 진배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말등산객이 급증하면서 등산로 일대의 자연환경이 참혹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산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등산로 훼손 실태와 대책을 2회에 걸쳐 점검한다.

4월 첫 일요일인 2일 대구 팔공산. 애초부터 한적한 산행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산자락 초입부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방이 대부분 단체 행렬. 산길마다 북새통이었다. 기업체, 가족, 동호인 등 단체도 다양했다.

맑은 공기는 팔공산에 없었다. 조용한 바람 소리나 산새 소리도 없었다. 산길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고 단체 등반객들의 수다와 환호가 나무들 사이에서 요동쳤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1시간30분쯤 지났을까. 갈림길에서 해발 1167m의 동봉으로 접어들자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말라죽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인가. 등산로는 풀 한포기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남은 흙들도 가벼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릴 정도로 푸석푸석했다. 얼마나 밟히면 저리 되는 것일까.

팔공산 관리사무소 측은 등산로 주변에 통나무로 철책을 만들어 진입을 방지했다. ‘산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을 삼가 달라’는 경고문도 세워뒀다. 그러나 마치 미로처럼 새 산길들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상인 동봉. 기념촬영에 바쁜 등반객들을 피해 바위 밑으로 내려가자 빈 막걸리병과 빈 도시락, 비닐 등이 널려 있었다. 쓰레기처리장보다 더한 난장판. 산세가 험해 수거조차 힘드니 정리도 쉽지 않아 보였다.

수태골과 위락지구로 향하는 산중턱의 갈림길. 흙은 없고 앙상한 바위만 남아 있었다. ‘토양침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등산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대구경실련의 입간판이 사뭇 무색한 정경이었다. 영남권 주민이 즐겨 찾는 팔공산이 이렇듯 산 전체로 신음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팔공산을 찾은 이모(49)씨는 “팔공산을 100여회 찾았지만 요즘은 사람이 너무 많아 먼지만 마시는 꼴이 돼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듯한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경북 경주 남산. 문화유적 466점이 도처에 있어 ‘노천박물관’으로 불리며 주말등산객을 불러모으는 남산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체 70여개의 등산코스 가운데 주차가 수월해 인기가 높은 삼릉∼상선암(2㎞) 코스는 곳곳이 1∼2m 깊이로 파여 수십년생 소나무의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장마 때면 파인 자리가 개천으로 변해 토사의 유실 또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박형경(54·포항시)씨는 “토사 유출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등산로 황폐화는 불을 보듯 뻔하고 유물·유적 훼손 우려도 있다”며 혀를 찼다.

전문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백두대간도 예외가 아니다.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주흘산 구간과 가은읍 용추계곡의 대야산 구간 중 밀재에서 정상에 이르는 오르막 구간은 기암괴석 등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지만 여러 갈래의 등산로에서 토사유출로 산사태 흔적이 발견되는 실정이다. 또 위장병에 특효라는 소문이 돌면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느릅나무를 마구 베어내기도 했다.

특히 참선 도량인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참선에 나서야 할 스님들을 산길 입구에 배치, 희양산을 몰래 찾는 등산객들을 돌려보내는 실정이다. 스님들은 정상의 등산로를 통나무로 막고 등산로 표지를 모두 떼내는 등 고육책까지 쓰고 있다.

대구·경주=전주식·장영태 기자
jsch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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