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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저타르 담배의 배신

저타르 담배의 배신
[한겨레]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가끔 ‘순한 담배를 알아서 피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현재 팔리는 담배 중 일부는 저타르 담배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해 이름에 마일드나 라이트라고 붙여 마치 덜 해롭고 괜찮은 담배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저타르 담배’는 정말 덜 해로운가? 사실을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타르와 니코틴에 대해서 알아보자. 타르는 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흑갈색의 물질로서 담배의 독성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니코틴은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나,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서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짜증 등의 금단증상을 나타내어 다시 흡연하도록 만드는 물질이다. 타르와 니코틴은 대략 10대 1의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기 때문에 저타르 담배는 저니코틴 담배이기도 하다.

그런데 담배에서 타르가 7mg이라고 할 때의 수치는 담배에 들어있는 타르의 양을 모두 측정한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도록 만든 기계에서 검출되는 양을 표기하고 있다. 이 기계는 담배에 불을 붙여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부피를 흡입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여기서 검출되는 양을 타르 양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비밀은 저타르 담배라는 것이 사실은 필터의 위치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을 수백 개 뚫어서 그 기계가 흡입할 때 연기가 희석되어서 검출되는 타르양을 적게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흡연할 때는 그 필터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입술로 덮고 빨게 되어 있다. 따라서 거의 모든 구멍이 막히게 되어 기계가 흡연할 때의 희석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높은 농도의 타르를 흡입하게 된다. 더구나 흡연자들은 일정한 양의 니코틴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일정한 양의 니코틴을 원한다. 그런데 니코틴과 타르가 절반인 담배를 피우면, 흡연자는 원하는 양의 니코틴을 빨아들이기 위해 연기를 더 깊이, 더 자주 빨게 된다. 결국 담배를 순하게 바꾼다 해도 흡연자가 흡입하는 니코틴과 타르의 양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저타르 담배가 전혀 이득이 없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60년~1972년 사이에 흡연한 자들과 1980~1986년 사이의 흡연자들의 폐암 발생을 비교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담배 회사에서 밝힌 ‘기계로 측정된 타르 양’은 대략 절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에 저타르 담배가 효과적이라면 폐암 발생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정반대로 나타났다. 60년대 담배를 흡연한 사람들의 연간 폐암사망률은 십만 명 당 264명이었는데 80년대 흡연자들은 314명으로 더 높아진 결과를 보였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저타르담배가 덜 해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담배규제에 관한 국제협약(FCTC) 비준안을 의결했다. 담배규제 국제협약은 담배로 인한 인류의 재난을 막기 위해서 세계보건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진행하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그 합의 사항 중 하나가 바로 담배 이름에 저타르, 라이트, 마일드와 같은 단어를 써서 다른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담배 회사의 기만적인 전략에 넘어가서 저타르의 순한 담배를 피면 그 만큼 덜 해로울 것이라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모든 흡연자들은 순한 담배를 피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는 잘못된 소망을 버려야 한다. 금연 말고는 담배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