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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기2006.06.12 00:00
 

[현장]“돈독이 올랐다고?” 대추리 노인들‘피멍’



[한겨레] “다른 동네 논에서 벼가 크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

지난 8일 경기 평택시 대추리 노인정 앞에서 만난 농민 이수궐(70)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아침 저녁으로 논 일을 하던 그는 이제 할 일이 없어졌다. 2∼3중의 철조망과 거대한 수로, 군 초소 등에 그의 논이 갇혔기 때문이다.

자식과 같은 흙과 벼를 빼앗긴 대추리 농민들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이씨와 같은 또래 노인들은 벌건 대낮부터 오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이씨는 “아침이면 벌판이 군 훈련장 같다”고 말했다. 곤봉을 멘 병사들이 시위진압 훈련을 하고 아침마다 울리는 애국가와 나팔 소리에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지난달 4일 군·경 병력이 투입된 뒤 이들에 둘러싸인 채 점차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대추리의 노인들한테서 3년간의 긴 싸움 끝에 쌓인 피로감이 묻어났다. 이달말까지 집을 비우라는 퇴거장도 날아왔지만 ‘악’만 남은 노인들은 “와서 부숴보라고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을 상대로 한 정부의 공세는 그동안 효과를 본 듯했다. “반대 주민 중 10억원 이상 보상을 받은 ‘백만장자’가 21명인데도 생존권 박탈이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공세와 “외부 불순단체에 주민들이 휘둘린다”는 이념 공세에, 대규모 공권력까지 동원됐다. 그러나 노인이 다수인 주민들은 밀려드는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가슴에 ‘피멍’만 들었다.

정태화(71) 노인회장은 “내 땅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시내에 가서 ‘대추리 늙은이들이 돈독이 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주민 이정오(70)씨는 “정부는 70%에 이르는 외지인 땅을 수용해놓고 땅 수용이 잘 됐다고 자랑하는데, 진짜 농사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용을 거부했다”며 “정부는 그런데도 극렬한 농민들 30여가구 정도가 반대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이를 언론이 받아쓰는 것에 더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11일까지 토지수용을 거부한 가구수는 98가구. 대추리 162가구 중 66가구, 도두리 80가구 중 32가구가 ‘시퍼렇게’ 남아있다. 남은 농민들이 분노를 삭이는 와중에서도, 논밭이라도 있는 일부 농민들과 달리 거의 빈손으로 내쫓길 처지의 ‘영세농’들의 시름은 더욱 커 보인다.

시집 와 43년을 대추리에서 살아온 서삼파(66·여)씨는 논도 밭도 없이 달랑 하나 있는 집 한 채에 2500만원이라는 감정평가를 받았다. 서씨는 “경비원 일을 하는 남편이 그나마 70살이 넘어 다음달이면 그만둔다”며 “5천만원도 안되는 보상금을 받고 늙은이들이 어디 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 그냥 이곳에 있다가 집을 부수면 깔려 죽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추리 지장물 조사를 나온 한국토지공사 직원들은 “서씨 같이 집 한 채만 있고 논이나 밭이 없는 경우가 대추리에 17가구에 이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초 국방부 발표를 보면, 대추·도두리 반대 주민 105가구 중 1억원 미만의 보상금을 받는 사람은 18가구, 2억원 미만이 22가구, 3억원 미만 보상금을 받는 주민은 9가구 등으로, 절반에 가까운 49가구의 보상금이 3억원 미만이다.

논 1천평에 집 한 채를 지닌 최진례(64·여)씨는 “척추를 다친 아들 대신 손자·손녀 2명을 키우고 미혼인 딸 2명을 데리고 사는데 어린 것들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농민을 위한다기에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내가 찍었어. 그런데 이제와 이게 뭐야”라는 그의 말에선 깊은 배신감이 묻어나왔다. 평택/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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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기2006.06.12 00:00
 

“배신자 낙인 찍히고, 정착은 막막”

[한겨레] “가만 있어도 마음이 괜히 불안하고 술 한 잔 먹으면 대추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 노모도 향수병에 걸렸는지 맨날 멍하니 앉아 계시구!”

경기 평택시 대추리가 고향인 정아무개(47)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그는 세간이고 농기계고 다 놓아둔 채 가족만 데리고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웃들의 분노 어린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보상금을 14억원이나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도 뼛속 깊이 박힌 ‘수구초심’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평택시의 한 맨션에 사는 정씨는 “논두렁에서 동네 사람들과 ‘형님 아우’ 하고 사는 게 재미 있었다”며 “장마 오기 전에 대추리에 두고온 짐을 가지러 가야 하는데 …” 말끝을 흐렸다.

27가구 대면·전화 인터뷰 조사
절반이상이 60대 “이 나이에 뭘…”


미군기지 확장·이전 사업으로 대추리를 떠난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씨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지난 2~9일, 대추리에서 살다가 보상금을 받고 떠난 96가구 가운데 연락처가 파악된 61가구를 상대로 대면·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 확인됐다. 인터뷰에는 27가구가 응했고, 나머지 34가구는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27명 가운데 대부분인 25명이 수십년 태를 묻고 살아온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26명(1명은 나이 안 밝힘)의 평균 나이가 56.6살로, 절반 가량이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어서 적응 장애는 두드러졌다.

부인과 단 둘이 경기 팽성읍 우미아파트에 사는 홍창유(68)씨는 “대추리에선 노인정에 가면 할머니들이 밥도 해주고, 노인들끼리 어울려 노는 재미가 있었는데, 여기엔 그런 게 없다”며 “집에 있으면 벽 속에 갇힌 것 것 같고 밖에 나가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너무 팍팍하다”고 호소했다.

이런 정신적 고통 외에 이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큰 문제는 일자리였다. 27명의 가구주 가운데 농·축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21명(축산·직장 겸업 6명 포함)이었는데, 현재는 농업 3명, 축산업 1명으로 크게 줄었다. 또 대추리에서는 27명 가운데 1명만 실업 상태였으나, 현재는 8명의 농민이 추가로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 밖에 6명(농사 겸업 4명 포함)이었던 직장인이 8명으로 늘었으며, 3명이 날품 노동자가 됐다. 남의 논을 부치다 보상금 1억여원을 받고 나온 이아무개(70)씨는 “송탄에 있는 인력회사에 일거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공사판 일꾼이나 경비원으로도 안 받아주더라”고 말했다.

목돈 생긴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진드기’ 같은 전화질에 울화통

목돈이 생긴 걸 어떻게 알았는지 매일같이 걸려오는 ‘진드기’같은 전화도 이들을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 김아무개(60)씨는 “서울 기획부동산 업체의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며 “좋은 땅이나 상가가 있으니 사라는 전화인데 우리가 지금 그럴 기분이냐”고 말했다.

이들 27가구가 대추리를 떠난 지는 평균 넉 달 정도 됐고, 평균 보상비는 4억2113만원이었다. 보상금이 5억원을 넘은 12가구는 생활이 비교적 넉넉해 보였으나, 보상비 이외에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한 이는 별로 없었다. 주소지가 파악된 61가구 가운데 우미아파트 등 33가구가 팽성읍에, 22가구가 평택 시내에 살고 있었다. 나머지는 안성 2, 안중 1, 오산 1, 서울 2가구 등이었다. 평택/전종휘, 조혜정 유신재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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