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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고속철 관통문제, 일본의 경우는...

일본판 천성산, 다카오산의 경우는?

지역주민들 자발적 '환경영향평가'...현실적 해결책에 접근

기고 =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과 새만금 간척사업,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을 놓고 큰 갈등을 겪어왔다. 개발과 보전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가치관은 지역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갈등이 있었다. 지난 1970년대부터 공공사업과 환경 보전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크게 부각됐다. 천성산, 북한산 논란과 비슷한 문제를 앓고 있는 일본의 다카오 산을 찾아가 봤다.

일본의 국정공원 다카오산은 도쿄도 하치오지시에 있는 해발 59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일본에는 국립공원과 국정공원이 있다. 둘 다 보전지구로 큰 차이는 없다. 도쿄 중심지에서는 급행열차로 50여 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작지만 큰 산 '다카오산'...원시에 가까운 자연생태


도쿄수도권고속도로(권앙도) 건설현장. 도쿄도의 대표적 명산이자 국정공원 다카오산 자락을 터널과 교각 등으로 훼손하면서 관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북한산 관통도로나 천성산 터널 공사를 연상케 한다.
다카오산은 산 규모에 비해 다양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산이다. 약 1200년 전부터 인근 신앙의 산으로 지켜져 왔으며 식물 1500종, 조류 150종, 곤충 5000종이 살아가는 자연 생태의 보고이다. 영국 국토 전체에 분포하는 식물종이 불과 1400여 종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다카오산의 종 다양성의 소중함은 명확해진다. 게다가 다카오산은 일본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 후보를 추천할 때에도 시레토코와 류큐열도, 오가사와라 제도와 함께 1차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동물 가운데는 다카오산의 상징인 하늘다람쥐가 종종 눈에 띈다. 하늘다람쥐는 다카오산의 깃대종이다. 깃대종이란 우리나라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순천만의 흑두루미, 천수만의 가창오리, 설악산의 산양, 섬진강의 수달 등처럼 지역 생태계의 건강함을 대표하는 종을 말한다.

이에 도쿄 시민들은 이와 같은 원생의 대자연이 도쿄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다카오산을 찾는 방문자도 연간 250만 여명에 이른다.

이 같은 다카오산에도 지난 1984년부터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도로 건설이 시작됐다. 수도권중앙연락자동차로(이하 권앙도)는 도쿄 도심으로 모이는 9개의 방사상 고속도로를 도심 반경 40~60㎞의 범위로 연결하는 총연장 300㎞의 자동차 전용도로다. 계획에 의하면 권앙도는 다카오산 남쪽 국도 중앙으로부터 북쪽 우라다카오까지 길이 1.2㎞ 지름 10m의 터널 2개로 다카오산을 관통한다.

'도깨비'가 지키고 있는 다카오산


다카오산의 수호신인 도깨비 '텐구'가 다카오산 지키기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에는 권앙도 터널 공사 금지를 요구하며 현지의 자연보호단체와 예술인 등 1300명이 넘는 원고인이 모여 ‘다카오산 텐구재판’을 일으켰다.
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도쿄도 하치오지시에 있는 사적 하치오지 성터와 국정공원 다카오산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본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됐다. 다카오산 지키기 운동의 진원지는 다카오산의 입구에 있는 우라다카오 마을이었다. 우라다카오 마을은 다카오산의 원시적인 울창한 숲을 이고 사는 마을이다.

우라다카오 마을 회의에서는 ‘권앙도 반대 동맹’을 결성했다. 예전 전철 복선화 공사나 중앙고속도로 공사에는 협력했던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마을에는 중앙고속도로와 JR주오본선이 지나가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건설 이후 발생한 소음과 진동, 대기오염의 폐해와 쇼부츠 터널 공사 당시 나온 토사가 인근 저습지를 뒤덮은 사고를 악몽처럼 떠올렸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논란 끝에 주민들은 1985년부터 일본 과학자회의와 함께 일본 최초로 자주적인 대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이 과정에서 삼목나무 잎을 태워 흰 연기가 도로를 따라 머물고 있는 모습으로 스모그 현상의 원인이 되는 기온 역전층의 존재가 증명됐다. 또 2000년 10월에는 권앙도 터널 공사 금지를 요구하며 현지의 자연보호단체와 예술인 등 1300명이 넘는 원고인이 모여 ‘다카오산 텐구재판’을 일으켰다.

텐구는 깊은 산에 산다는 요괴로, 붉은 얼굴에 코가 길고 날개가 있어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는 전설적인 존재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산신령이나 도깨비인 셈. 텐구는 이제 전설에서 나와 다카오산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지역 주민들과 함께 권앙도에 맞서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권앙도를 반대하는 의미의 도깨비 ‘텐구’와 다카오산의 자연물이 담긴 간판과 조형물들이 우뚝 서 있다.

"건강한 다카오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불안해"


산자락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속도로 공사를 반대하는 안내판.
그러나 주민들은 꾸준히 다카오산 지키기를 해왔지만 권앙도 건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카오산 정상부에 다가갈수록 도로건설 공사로 피폐해진 모습은 확연히 드러난다. 다카오산 북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터널 공사현장의 거대한 고가도로로 구성된 하치오지 분기점은 마치 거대한 활시위처럼 다카오산을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산 남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관동평야 너머로 도쿄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로 이어진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허파를 깎여 나가고 있었다.

다카오산 자연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의 하시모토 요시히로 사무국장은 “다카오산에는 도심을 벗어난 남녀노소는 물론 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며 “하지만 이처럼 다카오산의 건강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앞으로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다카오산에 터널이 뚫리면서 인근 하치오지 성터의 지하수가 말랐고 심지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줄기가 끊긴 적이 없는 오두시도노 폭포까지 메말랐다”며 “터널 입구에 집중된 자동차 배기가스가 역전층을 이루며 치명적인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카오산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
매와 날다람쥐, 너도밤나무 등 소송제기...'자발적' 환경영향평가



다카오산은 대도시 인근의 산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수백 년된 원시림을 자랑한다.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삼나무 군락이 탐방로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카오산의 도로건설과 이를 반대하는 주민운동은 우리나라의 천성산과 북한산 관통터널 논란을 쉽사리 떠올리게 한다. 도심 인근에서 지역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많은 사람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는 점, 대형공공사업 특히 터널 관통으로 인해 불거진 갈등 상황 등 흡사한 부분이 많다.

또 다카오산 텐구 재판에서 오오타카(매), 날다람쥐, 너도밤나무, 다카오산 자체, 하치오지 성터의 5개의 자연물이 원고 역할을 했던 점도 천성산 소송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이 원고가 됐던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 결국 두 건의 소송 모두 기각됐지만 생물종과 숲, 바다 등 자연의 법적 권리문제를 논의선 상에 올려놓았다는 의미도 남겼다.

하지만 다카오산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돼 적극적으로 문제를 타개해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주민들이 직접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했고 ‘다카오산의 자연을 지키는 시민 모임’을 결성, 지속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는 일본 과학자회의의 도움을 이끌어냈고 ‘자연과 함께 하는 시민 강좌’를 개설하고 다카오산 관련 서적과 그림책까지 발간했다. 또 매년 여름에는 텐구퍼레이드를 열어 수도권 지역 주민들에게도 이를 널리 알렸다.

우라다카오 주민들이 일본 최초로 과학자회의 단체와 공동으로 시행한 환경영향평가도 주목된다. 이는 일본 내 관련부처인 건설성이 겉치레 식으로 했던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적극적인 반기였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건설성의 환경영향평가가 불완전했고, 터널 굴착에 따른 지하수가 고갈된 점 등을 명쾌히 지적해 내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 면죄부 돼선 안 돼...대안 노선보다 근본적 해결책 마련해야


다카오산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쿄시민들이 폭넓게 찾고 있는 도시 인근의 주요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산의 진입로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유치원생들의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환경영향평가가 사업자의 비용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사업 주체의 이익 여부에 따라 그 결과가 좌지우지될 때가 많다.

일례로 천성산 환경영향평가는 고속철도공단에서 실시, 실제 천성산 생태계의 일원인 수달과 원앙, 소쩍새, 삵, 황조롱이, 꼬마잠자리, 꼬리치레도롱뇽 등 보호 동식물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천성산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이 없음”이라고 결론 내려진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는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에 일종의 면죄부였다. 이후 지율스님의 긴 단식투쟁으로 다시 한 번 환경영향평가를 공동조사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마저 그 진행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천성산과 다카오산 사례는 그동안 성장과 발전이라는 개발 위주의 정책이 자연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고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마저 뒤흔드는지 극명히 보여줬다. 이쯤에서 필요한 것은 개발과 반대라는 흑백논리와 대립이 아니다.

일본의 다카오산 논란의 대안으로 ▲기존 철도 노선의 활용증대 ▲간선도로의 입체교차화 ▲공공교통수단의 이용추진으로 교통량 경감이 떠오르는 점이 주목된다. 천성산과 사패산 터널의 대안으로 단순히 우회 노선이 제시됐던 것과 엄연히 다르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해 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