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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끈으로 묶고 다니는 英 부모들

아기 끈으로 묶고 다니는 英 부모들
아동 보호에 관한 한 영국은 유난스러울 만큼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는 나라다.

교육부 산하에는 아동 및 가정을 담당하는 부장관이 별도로 있다. 영국에서는 교육기관이나 공공장소는 물론 가정에서도 아이를 가볍게 때리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아동 폭력에 민감한 영국이지만 외국인의 눈에 보기에 무척 당황스러운 풍경이 하나 있다. 바로 ‘아기끈’(baby harness)으로 불리는 도구가 그렇다.

요즘 이 아기끈은 영국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어깨나 손목에 연결하여 부모나 보모 혹은 유치원 교사가 잡고 다닌다.

‘harness’(마구, 馬具)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기끈은 언뜻 보기에 동물에 다는 끈과 유사하게 생겼다. 하지만 아기끈에는 아이 안전에 대한 영국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담겨있다.

영국의 영유아보호법에는 보호자의 과오로 인한 영유아의 부상, 사망, 실종에 대해 매우 강력한 처벌 규정이 명시돼 있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미아가 되거나 부상을 입으면 보호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와 외출할 때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아기끈을 휴대하거나 아이에게 착용시키고 있다.


최근 에이미(좌)와 엄마 루시(우)가 함께 외출하고 있다. 아기끈을 착용한 에이미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올해 10월 초 둘째 아이를 출산한 루시는 두 살 반 된 첫째 아이 에이미와 외출할 때 아기끈을 사용한다고 한다.

루시는 “에이미가 걸음마를 뗄 무렵 아기끈을 샀지만 주로 유모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며 “하지만 둘째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복잡한 쇼핑몰 등에 다닐 때 꼭 아기끈을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루시는 “아이 엄마라면 아기용품이 든 가방과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와 함께 쇼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라며 “아이에게 아기끈을 착용시키면 아이를 잃어버릴 일 없이 안심하고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이에게 아기끈을 채워 행동에 제한을 두는 것이 합법적인 일이다. 물론 아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간단히 ‘연결’만 해서 이탈을 방지하는 정도로 묶어야 한다.

영국 유치원에서는 아이들 손목에만 고리로 가볍게 연결한 아기끈을 들고 다니는 유치원 교사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살다 지난해 여름 귀국한 박순석 씨의 남편 조진환 씨와 아들 승우. 한국에서 아기끈을 사용하면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곤 한다.
지난해 여름까지 영국에서 지냈던 박순석 씨는 “아이들은 처음 걸음을 배울 때는 앞만 보고 걷는 경향이 있다”며 “주변 소개로 아기끈을 쓴 다음부터는 사고 걱정을 덜 수 있어 외출할 때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찻길인지 인도인지 구분도 못하고 무작정 한 방향으로 걷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한 적이 많았다”며 “부모 손도 뿌리치고 혼자 걷겠다고 떼쓰는 아이와 함께 다닐 때는 아기끈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는 한국에 온 이후로는 아기끈을 사용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서상 아이에게 끈을 묶는다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나 역시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아기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얼마 전 아기끈을 달고 아이와 공원에 갔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박 씨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쳐다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며 “아이를 강아지 취급한다는 수군거림도 들리고 깔깔거리며 따라하는 여고생도 있고 해서 한동안 아기끈 쓰기가 꺼려졌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일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미아방지용 끈’이라는 이름으로 수입 아기끈을 팔고 있지만 판매량은 미흡하다. 아기에게 끈을 묶어 데리고 다니는 영국 엄마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낯선 문화로 보인다.

정숙진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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