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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예술인’ 기생 재조명하는 전시회 열려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문재로 꼽히며 서경덕과 철학적 담론을 교류했던 개성 기생 황진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적장을 안고 진주 남강으로 뛰어내려 산화했던 논개, 사회구호 활동을 펼쳤던 제주기생 만덕…’

널리 알려진 기생(또는 妓女) 이야기는 야사의 한편을 장식하면서 영웅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기생은 양반 사회의 주변에 머물며 문장과 음악에 능했던 여성집단이었다.
고려시대부터 기원한 기생제도는 국가에 소속된 노비였기때문에 장악원이라는 관청에서 노래, 춤, 악기를 배우는 한편 시조, 가무, 한문, 시, 서 등 5과목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이 때문에 황진이 논개 같은 절세의 기녀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종합예술인이었지만 양반들의 성적노리개였던 만큼 평생을 사회적 편견과 비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예술인의 기능은 사라지고 단순한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 더욱 슬픈 계층으로 전락했다.

'종합예술인’으로서의 기생을 재조명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은다.‘기생’만을 단독 주제로 삼은 첫 전시회다.

2월 13일까지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에서 열리는 ‘기생전’은 원판 사진엽서와 고미술품, 현대미술품, 규방용품, 여성장신구, 고증한복, 관련 영상 등을 통해 기생들의 지난 족적을 다각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기생의 미와 예를 천천히 다시 보기 위한 친절한 장치다. 특히 1900년대 초반 일제 조선총독부 등에서 식민지 홍보로 삼은 수단이면서 근대 회화적 표현으로 주목 받았던 500여장의 사진엽서도 함께 공개된다.

전시장에서는 현대미술이 고전 기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좀더 엿볼 수 있다. 사진작가 배준성씨의 독특한 '기생옷 입히기' 작품과 윤석남씨의 설치조각들이 그것.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효선 차장은 “여성이 억눌려 있던 전통사회에서 기생은 당대 상류층 남성과 교류를 위해서라도 지적능력을 갖추고 자기표현이 가능했던 유일한 존재였다”라며 “그들의 예술적 성과에 주목한 전시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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