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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헤집어보기

헌책방 헤집어보기
[한겨레]

먼지때 쌓인 책의 바다
손내밀면 보물이 ‘방긋’

“이거 참 보기 힘든 책이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헌책방 대양서점. 1981년 출판된, 연민 이가원의 글씨가 담긴 <장금생 화집>을 집어든 70대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는다.

헌책방에선 아는 만큼 ‘숨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다보면 자신의 관심 분야를 넘어 책에 대한 애정도 생긴다. 인터넷 헌책방 동호회에서 소개하는 서울의 헌책방만 줄잡아 80여 곳. 한 달에 한 번 쯤 시간을 내어 ‘헌책방 가는 버릇’을 들여 보면 어떨까?

어떤 곳을 갈까?=정태영(33) 대양서점 사장은 “헌책방은 버리는 책을 주워 담는 곳이 아니라 팔릴 만한 책을 모으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헌책방마다 주인의 안목과 관심 분야에 따라 소장한 책들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신촌의 ‘숨어있는 책’ 은 양질의 도서가 많은 헌책방으로 유명한 곳이다. 미술 관련 출판사 편집장을 그만 두고 헌책방을 차린 사장의 안목이 읽힌다. 주변의 신촌·홍익대 근처의 헌책방들은 미술 관련 책들이 많다. 서울대 녹두거리의 헌책방들은 인문사회과학 서적과 5년 안팎의 ‘신간’이 많고, 용산의 뿌리서점은 옛날 헌책방 분위기와 후덕한 주인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

미술책 신촌·홍대쪽…인문책은 서울대앞 녹두거리
인터넷동호회 사전정보 풍성…에누리도 하기나름

조희봉(33) 책 칼럼니스트는 “초보자는 원하는 작가나 분야를 정하고 여러 헌책방을 둘러보는 게 좋다”며 “그러다 보면 다른 분야로 가지를 치게 되고 앎의 폭도 커진다”고 말했다.

어떻게 살까=책의 바다에서 ‘진주’를 고르는 일은 독서 이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많이 읽고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좋은 책을 알아본다.

인터넷 헌책방 동호회원인 김경희(30·교사)씨는 “일단 눈에 띄면 바로 사라”고 충고한다. 헌책방의 ‘고수’들은 웬만한 양질의 책을 놓치지 않아, 나중에 오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동호회가 헌책방을 순례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 보이면 여러 사람 손이 한꺼번에 가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1970년대에 출판된 어문각 클로버 문고, 동서추리문고 등은 소장가치가 높아 나오면 바로 나가는 품목이다.

책값은 보통 정가의 30~50% 선에서 거래된다. 정 사장은 “수만원이 되면 에누리를 해줄 수도 있지만 2천~3천원 짜리 한두 권을 사고 깎아달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헌책을 산 뒤 정성스레 닦는 것도 재밌다. 정 사장은 책갈피 위에 써진 이름을 가는 사포로 문지르면 잘 지워진다고 귀띔했다. 책 표지에는 래커시너나 주방용 세척제가 좋다.


숨어있는 책(home.freechal.com/booklover)이나 함께살기(hbooks.cyworld.com)와 같은 동호회를 들어가면 유용한 정보가 많다. 헌책방을 가기 전에 전화로 위치와 문 여는 시간을 확인하도록 한다. 헌책에 관한 책 <전작주의자의 꿈>(함께읽는책 펴냄)이나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펴냄)를 읽고 가면 헌책방이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