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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 ‘천연 마리화나’가 있다

뇌 속에 ‘천연 마리화나’가 있다
[한겨레]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마리화나의 주성분 ‘카나비노이드’는 어떤 과정을 통해 효능을 발휘하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류가 1만여년 전부터 재배한 대마의 잎을 말린 가루 ‘마리화나’만큼 사연이 많은 약물도 드물다. 마리화나 하면 과학적인 측면보다는 도덕적 혹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국내에서는 대마초라도 한번 빨면 마약중독자 취급을 받는 게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마초의 합법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76%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마리화나는 영혼의 샘물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구역질이나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마리화나를 구세주라고 말할 것이다.

부작용 없는 약물 개발 가능한가
사실 대마는 삼과의 인피섬유 작물로 의류의 원료이며 대마씨는 고단백 영양식품이다. 요즘은 친환경적 건축자재나 바이오디젤유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마리화나가 인체에서 다양한 증세를 일으키는 것은 핵심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이나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 등이 뇌에서 광범위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리화나는 통증이나 구토, 근육경련, 불면증 등에 관련된 60여종의 생리활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대뇌피질에는 눈과 귀, 피부 등의 감각기관에서 정보를 받아들여 운동 명령을 내리는 데 관여하는 신경세포가 폭넓게 존재한다. 여기에 마리화나가 개입해 세포의 과도한 활성을 진정시킨다.



마리화나가 인체에서 다양한 작용을 하는 것은 뇌에 생리활성 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수용체들은 신경세포를 비롯한 모든 세포막에 끼워져 있는 작은 단백질로 특정 물질과 퍼즐 조각 맞추듯 결합하면서 세포 내의 변화를 주도한다. 카나비노이드 수용체인 CB1은 대뇌피질이나 해마, 시상하부, 소뇌, 기저핵, 뇌간, 척수 등에서 고농도로 발견된다. 마리화나가 향정신성 작용을 하는 것은 대뇌피질의 활성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리화나로 인한 기억력 손상은 해마, 운동능력 저하는 소뇌, 통증 감소는 뇌간과 척수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자체적으로 내성 카나비노이드라는 천연 화학물질을 합성한다. 뇌 속에 마리화나가 존재하는 셈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웨이드 레게르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소뇌의 흥분성 신경 말단에 있는 내성 카나비노이드들이 운동조절과 감각통합에 관련된 방대한 수의 시냅스를 조절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운동 기능 이상과 이상적인 감각 인지의 원인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실제로 설치류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 내성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외부의 충격에 대한 학습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아직까지 뇌 속의 마리화나인 내성 카나비노이드의 실체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내성 카나비노이드가 과거 경험에 의한 나쁜 감정이나 고통을 없애는 데 주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예컨대 체내에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너무 적게 있거나 내성 카나비노이드의 분비에 이상이 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공포증, 만성 통증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런 증상을 치료하는 데는 의학용 마리화나를 이용했다. ‘나빌론’(nabilone)이나 ‘드로나비놀’(dronabinol) 같은 합성 THC 유사체들을 이용한 것이다. 이들은 효과가 탁월하지만 목표 부위가 일정하지 않아 졸림, 집중력 저하, 나른함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만일 인체에서 내성 카나비노이드의 이로운 작용만 나타내는 약물을 개발한다면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물질은 내성 카나비노이드에 속하는 천연 화합물 ‘아난다마이드’(anandamide)였다. 문제는 아난다마이드를 체내에 주사하더라도 마리화나와 같은 진통 효과가 유도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아난다마이드의 경우 마리화나의 활성 성분인 THC와 달리 체내에 축적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아난다마이드가 마리화나와 같은 효능을 발휘하기 전에 지방산 아미드 가수분해효소에 의해 빠르게 분해되는 탓이다.

이에 따라 지방산 아미드 가수분해효소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천연 마리화나 화합물을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단 PTSD를 천연 마리화나로 치료하려고 한다. 한동안 PTSD로 인한 기억의 고통을 완화하는 망각의 알약에 관심이 쏠렸다. 여기에는 협심증이나 부정맥 등의 치료에 쓰이는 프로프라놀롤이라는 약물을 주로 사용하며 마리화나 성분을 첨가하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작용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망각의 약물로 기억을 제거한다는 데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기억의 소멸은 개인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뇌와 마리화나의 맞대결?
이에 비해 뇌 속의 천연 화합물인 내성 카나비노이드는 기억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트레스를 약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성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너무 적거나 내성 카나비노이드가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만성 흥분에 빠지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이때 아난다마이드의 붕괴를 막으면 수용체에 작용하는 내성 카나비노이드나 수용체의 양이 많아져 PTSD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 내성 카나비노이드의 활성을 조절하면 파킨슨씨병이나 약물중독 도파민 관련 질환, 통증 등이 줄어든다.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이 느끼는 구토 증세도 내성 카나비노이드 효과를 촉진하거나 막는 약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내성 카나비노이드가 마리화나 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뇌 부위에 가장 많은 내성 카나비노이드로 꼽히는 아난다마이드가 세포 밖에서 붕괴되는 것을 막는 약물을 개발하는 게 시급하다. 지방산 아미드 가수분해효소가 작용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가설일 뿐이다. 내성 카나비노이드를 합성하는 화학 기전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성 카나비노이드가 자극에 부분별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내성 카나비노이드를 직접 공략하기보다는 기존의 신경전달물질을 제어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밝히기도 한다.

모든 척추동물의 뇌에는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있다. 이 물질은 두려움을 잊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만일 내성 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뇌의 신경물질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밝혀진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현상이 내성 카나비노이드의 구실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마리화나를 약으로 공인하는 데 대한 논란도 종식될 수밖에 없다. 통증을 줄이려 마리화나를 피우며 공복감이나 환각에 빠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식물체의 마리화나와 뇌의 마리화나가 의학적 효능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임신에도 개입하는 마리화나
[숨은 1mm의 과학]
섹스의 생물학적 의미는 수정(fertilization)에 있다. 아무리 신비롭게 느껴지는 로맨스도 섹스의 부산물일 뿐이다. 섹스의 궁극적 목표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다. 하지만 섹스에 관련된 화학반응은 아직 전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성교를 통해 여성의 질 내에 들어온 정자가 꼬리를 흔들면서 자궁구, 자궁경관, 자궁강을 통해 난관으로 헤엄쳐 들어가 배란된 난자를 만난다. 이때 난자 표면의 특정 단백질에 결합하면 효소 분비가 촉진돼 난자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수정에 이른다.

그런데 효소가 분비되면서 일어나는 ‘아크로솜’(acrosome) 반응에 천연 마리화나가 개입하게 된다. 내성 카나비노이드인 아난다마이드는 물론 마리화나 활성물질인 THC에 반응하는 세포 신호 시스템이 사람의 정자가 난자와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액 원형질이나 중기 난관액, 난포액에 아난다마이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일 이런 메커니즘을 제대로 밝혀내면 원인을 알지 못하는 불임의 원인을 설명하고 생식약을 개발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카나비노이드 수용체는 고환에서도 발현되며 아난다마이드는 고환과 자궁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자궁에 있는 아난다마이드는 수정된 수정란의 초기 발달을 조절하며, 배(embryo)가 어디에 착상될지를 결정한다. 카나비노이드도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 인체의 내성 카나비노이드만 수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산화질소는 난자에 직접 작용해 30초 정도 지난 뒤부터 난자 내의 칼슘 농도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칼슘은 난자와 정자 핵의 융합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어쨌든 인체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아난다마이드는 수정에 나름의 구실을 한다.

물론 마리화나에서 나오는 THC도 아난다마이드처럼 작용한다. 마리화나가 사람의 정자 활성과 생식 능력을 조절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마리화나를 남용하는 남성과 여성의 경우 정자의 구조와 활력, 생식력을 조절하는 자연적 카나비노이드 신호 시스템에 지나치게 부담을 줘 생식이 위태로워진다고 한다.

실제로 장기간 마리화나를 피운 남성들은 정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