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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오마이뉴스 최종규 기자]
<1> 우리는 우리 말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민중자서전, 뿌리깊은 나무>이나 <구비문학대계, 정신문화연구원> 같은 '입으로 들려준 이야기' 책을 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말에 토씨 '-의'가 거의 안 나옵니다. 어설프거나 어려운 말도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 참 부드럽고 쉬운 한편 듣기에도 좋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요즘 분들이 쓰는 글이나 하는 말을 살피면 토씨 '-의' 없이는 아무 말도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참말로 그럴까요? 토씨 '-의'가 없으면 벙어리가 될까요?

아닙니다. 토씨 '-의'를 써야 할 자리에는 써야 합니다. 하지만 쓰지 말아야 할 자리에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맞고 바르게 맞춰서 쓰는 글쓰기나 말하기를 어느 누구도 가르치지 않아요. 우리들 스스로도 따로 배울 생각도 안 합니다.

교과서에도 잘못 쓰는 토씨 '-의'가 많고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도 토씨 '-의'를 아주 엉뚱하게 씁니다. '내 가방'이라고 말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나의 가방'이라 하고 '우리 아버지'라고 쓰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나의 아버지'로 가르칩니다.

우리 말을 가장 우리 말다우면서 알맞고 깨끗하고 바르고 훌륭하게 쓰자면 우리 말을 제대로 익혀야 합니다. 영어도 배우고 다른 외국말도 배우면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라면 그 어느 말보다도 우리 말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대충 살다 보면, 대충 학교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도 꾸준하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말 한 마디, 글 한 줄 제대로 쓸 줄 모르면서 영어나 일본말이나 프랑스말만 잘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요즘 번역문학이나 번역사상 책들이 참 어렵고 알아듣기 힘들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은 외국말 공부는 부지런히 하면서 우리 말 공부에는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2> '-의' 바르게 쓰기 첫째 이야기

오늘은 토씨 '-의' 문제를 말하는 첫 글이라서 조금 길게 씁니다만, 앞으로는 짤막하게 사례를 한두 가지를 들면서 이야기를 펼치겠습니다. <오마이뉴스>를 즐겨 보는 분들과 이곳에 기사를 쓰는 모든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 다음 보기글을 봅시다.

… 삶의 가장 떨리는 순간은?… <한겨레> 2005.3.29.33쪽

이 글은 퍽 멋을 부려서 썼습니다. 이렇게 멋부리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멋만 부린다면 나쁠 수 있습니다. 멋부리기에 빠져 겉치레에만 눈길이 간다면 나쁘다고 말해야 합니다. 멋이란 억지로 꾸민다고 해서 차릴 수 있지 않습니다. 착하고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이 멋입니다.

┌ 삶의 가장 떨리는 순간은?

│=> 삶에서 가장 떨리는 때는?
│=> 살면서 가장 떨리는 때는?
└ ......


문화방송에서 새로운 연속극으로 <떨리는 가슴>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보니 기사이름을 "삶의 가장 떨리는 순간은?"이라고 뽑았습니다. 꽤 멋들어진 말입니다. 이 기사이름을 뽑은 기자나 편집부 사람들은 '잘했다!'고 말했겠다 싶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참 형편없는 이름입니다. 얼빠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따위로 토씨 '-의'를 잘못 쓸 수 있는가 싶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의 가장 떨리는 순간은?", "누나의 가장 떨리는 순간은?" 하고 써 보세요. 어떻습니까? 말이 참 얄궂지요? '삶'이란 말은 참 좋습니다. 하지만 뒤에 토씨 '-의'를 붙여서 '삶의'라 하면 말하기도 힘들고 문장에서도 이상하게 됩니다. 이때는 '삶'보다 '살다'란 움직씨를 써서 '살면서'라고 해야 가장 매끄럽습니다.

억지로 꾸미는 말멋 또한 껍데기일 뿐입니다. 아니 껍데기로만 끝나지 않는 말멋입니다. 말멋은 우리 생각까지 사로잡아서 엉뚱하고 엉터리인 말이 마치 훌륭하고 예쁘고 고운 말이라도 되는듯 잘못 생각하게 이끕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아니 조심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수수하게 말하고 글을 쓰면 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척하니, 있는 것을 없는 듯 가리려고 하니 엉터리가 나오고 겉치레가 나옵니다. 토씨 '-의'를 잘못 쓰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있는 그대로 쓰기보다는 지나친 멋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멋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도록 하면 좋습니다. 괜히 꾸며서 문장도 망치고 우리 말도 망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최종규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우리 말과 책과 헌책방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기자소개 : 최종규 기자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우리 말-헌책방-책 문화운동을 합니다. 지금은 국어사전 엮는 일을 준비하며, 이오덕 선생님 원고를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가장 어린 나이로 한글학회가 주는 한글공로상을 받았고 <모든 책은 헌책이다>란 책을 냈습니다. 개인 누리집 =>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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