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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믿음…머리에서 느낀다?

[과학]사랑 믿음…머리에서 느낀다?
‘사랑과 믿음은 머리에 쌓아 가는 것.’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실연의 아픔이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곳은 가슴이다. 음유시인들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 애착, 믿음의 감정을 노래로 토해냈다. 그 감정은 오감만큼이나 구체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은 실제 가슴에서 느껴지는 걸까. 가슴이 아니라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기에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가. 이 질문에 대한 최종 모범답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신뢰에 기반을 둔 믿음 사랑 등의 감정은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과학잡지 사이언스 3월31일자 최신호에 게재된 한 심리학·뇌과학적 연구는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관심을 끈다. 이 논문에서 결론 내린 ‘신뢰와 믿음의 발전소’는 대뇌 아래쪽에서 본능을 주관하는 ‘미상핵(caudate nucleus)’ 부분. 미국 베일러 의대 리드 몬태규 교수 연구팀은 이 부분 두뇌 혈류량을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측정, 두뇌 활동과 믿음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인간 감정 실체에 한걸음 다가갔다.



◆믿음은 쌓는 것=‘사랑을 가슴으로 느낀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틀린 표현이지만, ‘신뢰를 쌓는다’는 상투적 표현은 과학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단 신뢰를 쌓는 장소는 머릿속이다. 이 같은 사실은 게임을 이용한 인간행동 분석실험을 통해 규명됐다.

연구팀은 ‘투자게임’을 실험 도구로 활용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 48명을 2명씩 짝 지은 뒤 둘 가운데 한 사람에게 투자금 20달러를 줬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를 상대에게 투자하게 했다. 그러면 결정된 투자금은 3배로 부풀려져 상대에게 전달됐고, 이어 돈을 받은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돈을 되돌려줬다. 돈은 같은 방식으로 3배 부풀려져 돌아간다. 피실험자들은 이런 식으로 투자금을 10번 교환했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가 상대에게 많이 투자할수록 전체 금액은 늘어나게 된다. 서로에게 점차 투자를 많이 할수록 돌아오는 돈의 양은 늘게 되는 것. 즉 상대방을 신뢰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피실험자들의 두뇌 혈류량을 fMRI로 관찰했다. 그 결과 대뇌 특정 부위 혈류량이 늘어나는 순간 피실험자는 상대에게 보다 많은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말미에는 교환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혈류량이 미리 늘고 있음이 관찰됐다. 이는 신뢰가 점차 쌓이는 증거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몬태규 교수는 “뇌 속 혈류량 변화를 관찰하면 서로 간에 싹트는 믿음 혹은 배신의 강도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믿음과 사랑을 주관하는 미상핵=믿음이 쌓이면서 활동이 왕성해진 곳은 대뇌 아랫부분의 미상핵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상핵은 사랑을 주관하는 곳으로도 알려진 부분. 영국 런던대 세미르 제키 교수는 5년 전 ‘사랑’을 주제로 두뇌 작용을 연구한 결과 미상핵의 활동이 사랑하는 감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믿음이나 사랑은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감정 상태”라며 “아이가 엄마에게, 연인들이 서로 느끼는 그런 감정”이라고 말했다. 미상핵은 두뇌 피질에서 수집된 많은 정보가 집적돼 처리되는 중요한 곳이며,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작동된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조화로운 움직임 등에 필요한 종합적 정보처리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파킨슨씨 병을 앓게 되기도 한다.

연구팀은 또 미상핵 부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신뢰와 믿음의 감정에 장애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 몬태규 교수는 “다른 사람과 신뢰를 쌓는 것은 문명사회의 기초”라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서 가장 먼저 금 가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등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우한울 기자 erasm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