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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바람둥이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람둥이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오마이뉴스 변지혜 기자] 항상 그래왔다. 연애를 처음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름대로 철들었다고(?) 느끼는 지금까지 나는 비슷한 유형의 남자들에게 반했고, 연애했고, 이별했고, 그리워했고, 자책했다. 나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바람둥이를 사랑했던 것이다.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미숙해서일까 혹은 나의 연애 성향일까?

아무튼 나는 성실하고, 재미없고, 단정하고, 책냄새 나는 사람보다는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힘든 유머러스하고 패션 감각 있는, 향수 냄새 나는 남자에게 한없이 빠져 들어갔다(지금도 이성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감정은 항상 이성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몇 명의 바람둥이들과 신나고 가슴뛰는, 때로는 눈물나고 가슴 터지는 연애를 하면서 내가 결론내린 것은 바람둥이들은 그다지 나쁜 종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순수하고, 솔직하며(순간일지라도),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여린 종족이며 그렇기에 뭇 여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바람둥이들에게 '데인'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나를 손가락하지 말지어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여겨주시기를) 때론 여자들을 눈물짓게 만들며, 사람 인내심 테스트를 하고, 도통 어떤 꿍꿍이인지 모를 듯한 그들이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일단,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넘치지 않을 만큼의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그들은 대인 관계에서의 '예의'를 알고, 숙녀 앞에서의 '매너'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의 값어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알기에 그들은 결코 싸구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특히' 여자들에게 비하조의 농담을 늘어놓거나 하는 일이 없다.

그들의 말투는 부드럽고 표현에는 군더더기가 없으며 단어 선별도 적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그들과의 데이트는 더더욱 즐겁다. 그들과 있으면 마치 '공주'가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녀처럼 행동하던 여자들도 그들 앞에서는 공주로 변신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지만,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멋을 낼 줄 안다. 자신을 꾸밀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애정도가 높음을 뜻한다. 그들은 어떤 색깔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지 알고 있으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은 살짝 피해 주는 '센스'도 지니고 있다. 굳이 명품으로 도배하지 않아도 그들은 폼난다. 그들 자신이 명품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여유가 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말을 내뱉는 일이 없다. 충분히 듣고 적절한 타이밍에 피드백한다. 여자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 주는 여유가 있고, 작은 일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넉넉함도 지녔다. 항상 뭔가 '있어 보이는' 그들이기에 많은 여자들은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그'의 'only one' 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바람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구속을 싫어하며 많은 여자들의 장점을 쉽게 찾는 관찰력을 지녔기 때문에, 한 여자에게만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다.

교복 입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바람둥이의 싹(?)을 보이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지혜야, 어린아이들이랑 어른이랑 차이점이 뭔 줄 알아?" 내가 대답했다. "글쎄, 많지 않나? 잘 모르겠는데?" 어린아이에게 눈웃음을 보내던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른들은,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이랑 눈을 마주치면 서로 고개돌리기 바쁘거든? 근데 어린애들은 안그래. 뚫어져라 쳐다 보고, 웃기도 하거든."

나는 그의 섬세한 관찰력에 흠칫 놀랐다. 그뿐만 아니라 바람둥이의 피를 지닌 종족들은, 여자들의 특성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서 한 명 한 명에 맞는 행동 지침을 선보인다. 관찰력뿐인가? 기억력, 순발력, 이해력 등등 진정한 바람둥이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며, 그렇기에 눈치없고 머리나쁜 남자는 바람둥이 노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바람둥이들을 나름대로 장점 많은 우수한 종족(!)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들이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바람둥이들은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남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매너 있는 남자이며, 행복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파트너이며, 많은 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명품 그 이상의 존재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여자에게 함께 하는 그 순간만의 행복을 준다. 안정된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할 줄 모르며, 자신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을 사랑하면 위험해진다.

그들과의 사랑은 달콤하지만 피해야 할 도박이다. 사랑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 아닌 '오직 한'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이 바람둥이를 후자와 착각하고는 그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지만, 남는 것은 기분좋은 꿈을 꾸다 깬 것 같은 찌뿌둥한 기분과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뿐이다.

그러므로 주의하라. 지금 당신의 곁에 바람기 많은 '그' 가 살며시 당신을 예의주시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행복한 사랑을 하는 현명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every' 와 'only'를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뜬구름 잡는 사랑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바람둥이를 좋아하되 사랑하지는 않도록 유의하라."

/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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