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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거리

홍채 안에 내 몸 있다

"홍채를 보면 건강이 보인다"
홍채진단법, 미·러·독 이어 한국 상륙… 박철수 대한홍채의학회 부회장… “사람 눈은 인체의 축소판”


서울대 교수 S씨는 몇 해 전 봉천동의 한 한의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의 정기 건강검진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S 교수는 보약이나 지어먹으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한의원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한의원 원장은 S 교수를 진단하고는 “심장 영역에 밝은 갈색의 급성 증후가 나타났다. 협심증인지 심근경색인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이상이 생긴 것 같다.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대학병원에서조차 ‘건강 OK’ 사인을 받았는데 뜻밖에도 동네 한의원에서 “이상 증후가 있다”라고 말했으니 S 교수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S 교수는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한의사에게 인사도 안하고 나갔다. 2개월쯤 지나 S 교수는 한의원을 다시 찾았다. S 교수는 자신이 두 달 전 찾아왔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의원을 다녀간 2주 뒤 S 교수는 한밤중에 극심한 심장 통증을 느꼈고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심장판막증이었다.

숭실대 교수 K씨도 같은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K 교수를 진단하고는 “머리쪽에 이상이 있다”고 말했다. K 교수 역시 몹시 기분이 상했다. K 교수는 동료 교수들에게 이 한의원이 엉터리라는 험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후 K 교수는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고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서울 관악구 봉천5동 삼성동아아파트 주상가 214호에 있는 박시한의원. 박철수 원장실에들어가면 여느 한의원에서 보기 힘든 장비가 눈길을 끈다. 안과에서 시력 검사하는 기계 같은 이 장비는 홍채촬영진단기. 홍채는 안구(眼球)의 각막과 수정체의 사이에 있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원반 모양의 얇은 막이다. 우리가 보통 검은자라고 말하는 부분이 홍채(虹彩)다.
수지침(手指針)과 같은 원리
박철수 원장은 대한홍채의학회 부회장. 박시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은 진맥 대신 홍채 진단을 받는다. 박 원장은 “사람의 홍채를 보면 질병의 증후와 그 사람의 체질이 보인다”고 말한다.
“홍채에는 인체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천지의 축소판이라는 인신소천지(人身小天地)의 개념을 알면 홍채 진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오른쪽 홍채는 신체의 오른쪽 장기, 왼쪽 홍채는 인체의 왼쪽 장기가 나타납니다. 피부는 보통 가장 바깥쪽에 나타납니다. 상부에 위치하는 장기는 홍채의 윗부분에 나타나지요. 따라서 12시 방향에는 머리나 정신과 관련된 반응이, 6시 방향에는 허리 부분이나 그 아랫부분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박 원장에 따르면 홍채 진단은 수지침(手指針)과 같은 원리다. 체세포 복제원리와 같다는 것이다.
“세포 하나가 분화(分化)해 인체의 모든 기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세포 하나 하나에 인체의 모든 유전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과 눈은 인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
즉 홍채 진단이란 홍채에 나타난 각종 이상신호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질병 유무와 유전적인 체질을 알아내는 것. 한의사들은 체질에 따른 처방을 달리하기 때문에 체질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홍채의학의 역사는 오래됐다. 홍채의학이 꽃을 피운 곳은 16세기 유럽. 처음에는 돋보기를 이용, 육안으로 관찰하는 초보적인 방법이었다. 현재와 같은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한 홍채 진단은 1950년대 미국에서 버너드 젠슨이라는 학자가 개발했다.
홍채지도는 원형(圓形)의 홍채에서 각 인체 부위의 연관성을 찾아내 이를 지도형태로 영역별로 표시한 것. 홍채지도는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정확도가 높아져 현재와 같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홍채 진단은 미국, 러시아, 독일 3개국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홍채의학이 도입된 것은 1990년. 대한홍채의학회(www.iridology. or.kr)가 창립된 것은 1996년. 현재 대한홍채의학회 정회원은 200여명으로 의사, 한의사, 과학자가 주축이다. 이 중 홍채 촬영을 주진단 방법으로 사용하는 한의사들은 50여명 수준. 한의원에서는 기능을 중시하는 미국 홍채학을, 가정의학에서는 구조를 중시하는 러시아와 독일의 홍채학을 채택하고 있다.

“질병 아니라 질병의 증후 보는 것”

박 원장이 홍채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 그는 “진맥에 도통하기는 정말 힘들다”고 고백한다. 진맥에 비교하면 홍채 진단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양쪽 눈의 홍채를 촬영해 이를 확대한 다음 이상 유무를 관찰하는 것이다. 박시한의원의 홍채 진단비는 2만원. 박 원장은 간을 예로 설명했다.
“간은 인체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간은 오른쪽 홍채의 7시40분 방향에 나타납니다.
그 영역에 나타나는 색깔의 변화, 자국 변화, 부풀기의 정도 등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박 원장은 “홍채 진단은 질병을 보는 게 아니라 질병의 증후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율신경선의 변화, 바퀴살을 통해 육체적 변화, 신경 링(ring)을 통해 정신적 변화를 관찰해 실증(實症) 상태와 허증(虛症) 상태를 구분한다. 실증 상태란 현재의 상황이든가 머지않은 미래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박 원장은 “홍채 진단은 정밀검사 전(前) 단계인 보조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홍채 진단법을 MRI나 CT와 비교하면서 폄훼하려는 분위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애초부터 비교 선상에 오를 수 없는 장비”라고 주장한다.
부랑자나 노숙자들의 홍채는 탁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박 원장은 어떤 사람의 홍채가 탁해져 있는 상태는 자율신경계의 이상 증후라고 설명한다.
홍채 진단법은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홍채를 촬영할 때 아이들은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0대 아이들의 경우 홍채 촬영을 하면 주로 유전적 요인이 나타난다고 한다. 만일 아이가 어머니의 홍채를 닮아 있으면 아이의 홍채에는 모계(母系)의 유전적 요인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박 원장은 “홍채에는 내부 혈관이 14가닥이 있어 지문보다도 더 정확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문(指紋)은 위조가 가능하지만 홍채는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부 분야에서 홍채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홍채의 세계를 증명한다.
홍채 진단법은 눈은 마음의 창일 뿐만 아니라 육체의 거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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