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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의 삶을 살짝 들춰보니...

<기녀들의 삶을 살짝 들춰보니>
서울옥션서 13일부터 기생전

(서울=연합뉴스) 류창석 기자
"내 가슴 흐르는 피로 님의 얼굴 그려내어/ 내 자는 방안에 족자 삼아 걸어두고/ 살뜰히 님 생각날 제면 족자나 볼까 하노라" 조선시대 여류문인 매창은 사랑하는 촌은(村隱) 유희경의 재회를 기다리며 이처럼 빼어난 시를 노래했다.

눈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고결하고 품위있게 자기를 찾아올 님을 기다리겠다는 절개가 돋보이는 이 시에도 불구하고 매창은 님과 재회하는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황진이와 쌍벽을 이뤘던 조선의 여류문인으로 두 사람 모두 옛 사람들이 '해어화(解語花)'라고 불렀던 기녀였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옛 기생들은 문학을 비롯해 음악과 춤 등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널리 알려진 황진이나 조선조의 강릉기생 홍장, 경성기생 홍랑, 매창, 평안도 성천의 기생 부용 등이 그러했고 기생의 신분으로 사재를 털어 기아에 허덕이던 제주 도민들을 살린 김만덕, 나라를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강에 투신한 진주 논개도 기생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장녹수 역시 연산군의 후궁에 오르기 전에 기생일을 해야 했다.

이들은 양반을 상대하기 위해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킬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신분은 비록 천인이었지만 당대의 전문직 여성으로 상당한 대우와 생활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이들의 삶이 왜곡, 폄하되면서 현재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현실.

평창동의 서울옥션센터 1층 전시장에서 13일부터 열리는 `기생'전은 가무와 시.서.화의 재능과 지조를 갖춘 덕목있는 교양인으로 이들과 관련된 문학과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는 풍부하지만 시각예술 차원에서 해석이 거의 전무한 기생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전시다.

출품작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엽서와 원판 사진 500여 장과 평양 명기로 이름을 날린 소교여사(아호 죽교)의 `묵죽도', 난초가 그려진 기생의 치마폭, 동강 권오창의 기생 초상들, 기녀들의 장신구로 성행위를 묘사한 동경과 향갑노리개, 비녀, 뒤꽂이 등 장신구와 화장구들로 이뤄졌다.

엽서와 시진들 속에는 담배를 피며 바둑을 두는 기녀의 모습이나 기생들이 가야금을 타거나 수업을 받는 모습 등이 담겨 당대 풍속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세계박물관 총회 개막식과 폐막식 패션쇼를 장식했던 김혜순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제작한 기생의복이 소개되고 기생들이 사용하던 규방의 모습, 논개의 충혼을 달래주는 진주검무 관련 영상과 도구 등도 소개된다.

또 운보 김기창이 신윤복의 그림을 패러디한 `청록산수'와 사진작가 배준성이 기생에게 한복 이미지를 입힌 작품과 윤석남의 설치조각 등도 선보인다.

시인 문정희 씨는 2000년 황진이를 비롯한 기생들의 시들을 모아 소개한 `기생시편'을 출간하면서 후기를 통해 "남성은 풍류라는 이름으로 장난 삼아 기생과 희롱하였지만 기생은 삶, 그 자체로 슬퍼했고 시를 지어 만남과 이별의 절창을 남겼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02-395-0331.

kerbero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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