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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

50만원으로 치른 결혼식

50만원으로 치른 결혼식
[오마이뉴스 윤새라 기자]유학 초반에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영민하고,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왕성하고, 남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더 들자면 가식이나 꾸밈이 없다는 것이다.

내 친구의 결혼식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 친구는 유학오자마자 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연애를 했다. 그 남자는 그야말로 순정파에 일편단심, 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는 친구에게 "당신은 꽃처럼 예뻐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귀기를 몇 년, 남자가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에 직장을 잡아 이주를 하게 됐다. 내 친구는 막 학위를 마치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내 친구는 당시 한 1년 동안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단지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결의로 그냥 밀어붙어야 하나… 그러던 중 애인이 직장을 구해 이주를 하게 된 것이다. 내 친구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사랑을 택하기로 했다.

햇볕이 뜨겁게 작열하던 어느 여름날, 둘이 작은 차에 세간을 가득 싣고 떠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둘은 캘리포니아에 가서 부모님들을 모시고 조촐한 가족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 두 사람은 수중에 돈이 거의 없었다. 남자는 막 일을 시작한 때라 직장에서 받는 돈은 이주하며 쓴 카드 빚이며 학자금 융자 갚는 데 들어가고 내 친구도 그 전에 학교 강사로 일하며 다달이 받던 쥐꼬리만한 봉급에서 저축한 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두 사람이 결혼식 비용으로 쓸 수 있는 자금은 단 돈 500달러(우리 돈으로 50만원 가량)이었다.

관청에서 혼인 신고하는 거야 돈이 안 들지만 문제는 손님을 초대하는 가족 결혼식이었다. 남자의 부모는 전형적인 미중서부 중산층 방식대로, 대학교 입학부터는 자식이 제가 알아서 제 앞가림을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내 친구 역시 자립심이 확고해서 유학 중에도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했지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았다.

50만원으로 치른 결혼식은?

장소)
다행이 남자 쪽으로 먼 친척뻘 되는 한 가족이 그 근처에 살았다. 이주하면서 연락을 트게 된 친척인데 사람들이 착하고 인심이 후하다. 그 집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피로연)
아무래도 손님들을 접대하는 피로연이 결혼식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내 친구도 알아보니 그 중에서도 피로연에 부르는 연주 밴드가 특히 비싸다고 한다. 50만원 예산에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내 친구, 음식은 집 근처 가게에서 케이터링으로 주문하고 음악은, 자기 오디오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선곡도 직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골랐다.

예복)
신랑은 알아서 양복을 입고 내 친구는 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실 때 한복을 갖다 달라고 해서 한복을 입었다.

주례)
결혼식이니 누가 주례를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딱히 마땅한 사람이 없다. 이주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 동네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주례를 부탁할 만큼 괜찮은 이는 더 더욱 없다.

다시 친척 아저씨에게 부탁한다. 착한 아저씨, 오케이 한다. 그런데 이 착한 아저씨는 장소도 제공하고 주례도 서겠지만 자기가 힘들이는 건 질색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남의 주례사를 찾아 베끼든 자기가 머리를 굴리든 여하한 어떤 품도 들이기 싫어하는 눈치다.

그래서 내 친구가 직접 아저씨를 위해 주례사를 쓰기로 했다. 결혼하는 신부가 직접 자기를 위한 주례사를 쓰니 어떤 내용이 되었을지는 불보듯 뻔한 일. 당연 자기가 듣고 싶은 말 위주로 썼을 것이다.

과장을 좀 섞자면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싶다.

"신랑은 신부를 맞아 앞으로 평생 신부를 섬기고 공경하며 살며 신부가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신부는 신랑을 맞아 늘 어여삐 여기고 잘 선도하시오" 등등.

신부가 직접 작성한 주례사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보통 미국 결혼식은 끝에 주례가 두 사람의 결혼을 선포하고 키스를 하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내 친구,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미국 남자와 결혼한다고는 하나 보수적인 친부모님 앞에서 어떻게 벌건 대낮에 입 맞추는 광경을 연출한다 말인가?

결국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 넣었다.

"이로써 이제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가 되었습니다. 자, 신랑, 신부와 포옹하세요."

이렇게 해서 자립심 강하고 소탈한 내 친구는 예산에 맞춰 결혼식을 올리고 이후 다른 전공을 공부해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내 친구의 경우를 보면 결혼'식'과 이후 결혼 생활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화려한 결혼식을 해야만 결혼 생활이 그처럼 번지르르해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역시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윤새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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